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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상-나의 송곳
게시물ID : bestofbest_223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닥호
추천 : 273
조회수 : 27568회
댓글수 : 29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5/11/16 09:52: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5/11/14 16:05:10
‘더는 연기를 안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구고신에 빠져 있다는 배우 안내상씨가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email protected]">

-예전에 웹툰으로도 봤는데 화면 앵글이나 구도까지 싱크로율이 원작과 거의 흡사하더라.

“대사도 거의 똑같다. 8회까지는 원작이랑 다른 게 거의 없다. 극중 역할인 문소진(김가은) 부분이랑 마트 아줌마들 이야기가 첨가된 정도다.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살리고 싶어했다.”

-드라마 찍기 전에 최규석 작가의 원작을 봤나?

“드라마 찍기 전에 김 감독님이 ‘한번 읽어봐라’ 그래서 봤다. 난 이런 내용인지 몰랐다. ‘송곳’ 그러길래 뭐지? 원래 웹툰을 드라마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다. 판타지가 많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이러니까. 근데 웹툰을 봤는데 ‘이거 뭐야, 그래서 어떡하자는 거야?’ 눈이 휘둥그레졌어. 이런 만화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웹툰에 푹 빠져들었다. 경이로운 웹툰이었다. 상당히 놀랐다. 이 작가가 누구지? 작가에 대해 너무 궁금하더라고. 이 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보통의 경지가 아니란 생각도 들고. ‘이런 웹툰을 몰랐다니’ 아, 정말 반성 많이 했다.”

-캐릭터 분석을 위해 작가나 구고신의 실제 인물로 거론되는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등을 사전에 접촉했나?

“구고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작가나 실제 모델을 접촉해보고 싶기도 했다. 만나볼까?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 난 이 웹툰 <송곳>을 읽고 구고신에게 빠져 있는데 혹여 ‘실제 인물을 만나서 비슷한 느낌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것이 생겨버리는 거다. 구고신에게 빠져든 내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민 끝에 다 안 만났다. 원작과 감독만 믿고 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구고신 역할로 처음부터 제안받았나?

“그렇다. 제이티비시에서 2013년에 <시트콩 로얄빌라>를 함께한 김 감독이 구고신을 제안했다. 난 처음에는 비중있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거야. 너무 부담스러우면서도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 부담과 함께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의심했어. 이런 내용으로 드라마가 가능한가? 당시에는 확정된 거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감독이 찍기로 했다고 해서 그제야 안도했다.”

-노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는 처음인데.

“어디까지 세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디까지 표현을 해야 되지? 강한 메시지도 많고 센 장면도 많아서 세게 치고 흥분해서 연기하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자 싸우자!’ 이렇게 되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대사는 그대로 가더라도 연기는 유하게 바꿨다. 친근하고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그 정도 선에서 연기했다. 선동자의 느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근데 배우 입장에서 그게 좋아. 막 소리 지르고 카리스마 있게 쫙 가면 앵글도 잘 잡히고 뭔가 그림이 탁 나오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할 거 같다. 예전 생각도 나고.

“‘옛날 생각 많이 나겠다’는 그런 소리 많이 듣는데 전혀 안 난다.(웃음) 물론 나긴 나지만 할 때마다 죄스럽다. ‘아 이거였는데, 그때 내가 진짜 철이 없었구나. 난 그때 왜 그렇게 싸웠지?’ 그래서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학생운동을 해서 이런 거를 한다’ 이런 식으로 드러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다. 현장에서 할 말이야 많지. 누가 ‘노동가요 아는 거 있냐?’고 물으면 아는 거야 많은데 입도 벙긋 안 한다. 나의 과거가 여기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엄연히 다른 거다. 내가 경험했던 거랑 구고신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나와 구고신을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이 작품에 대한 죄다 죄.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완전히 실패했던 거고. 구고신은 열심히 이 시대를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성공하는 삶이다. 내 이력과 결합되면 이해가 되겠다? 오우,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구고신, 우리 시대의 이상형

그는 자신의 이력과 드라마 <송곳>의 출연을 별개의 일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송곳>을 통해 지난 시절을 아프게 되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송곳>을 보면서 예전 자신이 너무 철이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지만 노동자에 대한 이해보다 술과 여자만 밝히는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절망한 것이나, 농사에 대한 자신도 없이 농민운동에 뛰어든 일 등이 아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변소를 치우려면 자신의 손에 똥을 묻혀야 한다”는 구고신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노동자들과 하나가 되려 하기보다 고고한 싸움만 하려고 한 극중 이수인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진다고도 했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그들이 되어보진 않고서 섞이지도 않으면서 당위성만 얘기하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하고 현장에 들어갔던 거야. 어쩌면 그렇게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네(노동자)들은 그네들대로 다른 식으로 푸는 모습이었던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네들이 후진 게 아니라 그네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 무엇이 있었던 거야. 그게 그 사람들의 낙이었고 즐거움이었던 거야.”

-본인의 말처럼 이력을 떠나서라도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안내상이 아니면 안 됐을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 거 같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겠다.(웃음) 사실 이 부분은 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첫 회에서 중국집 배달원의 체불 임금을 받으러 중국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난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는 명령조로 대사를 쳤다. 그러니까 김 감독이 와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그렇게 까칠하게 몇 명이냐고 물으면 누가 대답을 해줄까’라고 하더라. 노동자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장면에서도 ‘우린 인간 아니오. 인간이면 이렇게 할 수 없소. 당신들은 인간이 아니오’라고 흥분해서 대사를 하니까 ‘노조 처음 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한테 막 선동을 해버리면 사기’라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톤으로 가자고 하더라.

순간 ‘아, 이렇게 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감을 잡았다. 그때 김 감독에게 신뢰가 확 생겨버렸다. <송곳>에서 제일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김석윤 감독을 만난 거다.”

-<송곳>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완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거다. 세트 분량 다 찍고 야외촬영 몇 번 남았는데 그래서 우울한 기분이 든다.(웃음) <송곳>은 상당히 퀄리티 있게 그 시대를 반성해가면서 지금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제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작품을 하는 것이 상당히 보람찰 거다. 결론적으로 잘 살자는 얘기다. 사람 곁에 있어주자는 얘기고.”

-구고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캐릭터인가?

“솔직히 말하면 구고신은 이상형인 거 같아. 우리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상형. 다 갖고 있는 거야. 너무 힘든 시절을 살고 있고 아픈 경험을 했고 수많은 좌절을 이미 겪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잖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대부분 포기를 하는데 그 길을 꾸준히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간다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면서 길 가다 쓰러져 잠든 노숙자를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구고신은 어찌 보면 꿈같은 사람이야.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존재지.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한.”

살벌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80년대

-어찌 보면 구고신은 ‘민중이 변혁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이른바 ‘민중 메시아주의’로부터 벗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구고신은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는 기존의 운동권 캐릭터와 다른 것 같다.

“그네들(운동권)이 민중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걸 지탱시키는 내적인 힘은 달렸던 것 같다. 그게 없으니까 뜨겁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구고신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찌 보면 깨달은 사람 같다. 노동조합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이런 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선각자의 느낌이 든다. 달라이 라마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 결국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송곳>은 노동을 소재로 한 전무후무한 드라마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드라마가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삼성과 무관하지 않은 제이티비시에서 방영된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이런 선택을 한 제이티비시에 대해서 정말 박수쳐주고 싶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종편에 한겨레가 들어왔다면 할 수 있는 작업을 제이티비시가 하는 거잖아. 그래서 감사하다.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받는 현실에 대해서 방송이 좀 이바지해줘야 한다고 본다. 노조에는 무시무시한 세력이 있는 거 같고 노조 만들면 큰일이나 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처한 현실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계기를 <송곳>이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송곳>에는 ‘뭉쳐서 싸웠는데 너무 힘들다. 심지어 안 하니만 못하다’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다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 제이티비시에서 허락한 게 아닌가 싶다.(웃음) 아무튼 한국 드라마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그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수많은 작품 활동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한원수’ 역할로 국민 밉상으로 등극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빚을 갚게 해준 <조강지처클럽>인가?

“(단호하게) <송곳>이다. 하하하. 난 이걸로 끝내도 상관없다. 그만큼 여한이 없다. <송곳>이면 된다. 이런 작품은 더 이상 못 만날 거라고 본다.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거 하려고 연기했구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 작품만큼 날 휘어잡을 작품이 있을까. 난 지금 이 속에 살고 있지 다른 건 신경도 안 쓰고 있다.”

-<송곳>의 뭐가 그리 좋은가?

“구고신의 대사나 내용 모두 너무 훌륭하다. 구고신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 노조 10년 하다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밖에 안 하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비난하자 구고신이 말한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 같아?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말한다. 캬~ 멋있잖아. 또 이수인이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자들이 나온 술집에서 접대를 같이 받은 황주임도 문제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구고신이 말한다. ‘당신과 같이 양심적이고 깨끗한 사람만 보호받아야 되는 거냐? 우린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다’라고 말한다. 이런 배역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날 한번 땅 하고 친 작품인데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송곳>을 통해서 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뀔 거 같다. 사람이 어떤 때 ‘요걸 끝으로 멋지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나. 송곳이면 된다. 근데 벌어놓은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하하하. 하여튼 마음은 그렇다. 이게 끝이다. 더 이상 나한테 이런 작품 안 온다. 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줬다. 어떻게 이런 역할을 만날 수가 있겠어. ‘다음에 어떤 역할 해보고 싶으세요?’ ‘구고신. 이미 했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역할이 없습니다’가 내 답이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7174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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