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더위 - 매미는 지랄 맞게 울었다. 매앰- 매앰- 찢어지는 매미울음 소리에 섞여 아부지 - 아부지 - 라며 동철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어어 왔냐!"

 먼 발치 새참을 머리에 이고 갓 돌이 된 막내 아들을 업은 미자와 화자가 손을 휘저었다. 올해로 열 둘이 된 미자, 그리고 열 살이 된 화자는 꼭 지어미만 빼 닮았다.

 새참을 땅에 두고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지랄맞은 칠월의 꿀 같은 만찬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철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간다.

 이제 열 둘 된 미자에게 시집 갈 생각 없냐는 둥, 막내인 동훈의 고추는 얼마나 자랐는지 이번엔 웬일로 동철이를 쏙 빼다박은 아이를 낳게 되었는지 막걸리가 입속을 타고 가며 껄껄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철이는 동훈이가 퍽 예뻤다. 십년을 넘게 걸려 얻은 아들이니 구태여 말을 보탤 필요가 있는가. 그는 술 냄새 풍기는 입술로 동훈의 양 볼따구를 쪽쪽 빨아재꼈다.  

 "이 치는 참말로 팔불출이라!"

 동네 당산옹이 핀잔을 줬다. 그러더니 껄껄- 하고 너털 웃음을 지었다. 당산옹도 동훈이가 마냥 예뻤기에 그의 이름을 지어주고 언제부턴지 제 손주마냥 예뻐했다.

 그 옆의 미자와 화자 또한 열 살 차이나는 막둥이 동생의 꼬물거림이 귀여웠기에 언제나 끼고 살았다. 그렇다. 동철이네 아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그들의 '마스코트'였다. 미운짓을 해도 밉지 않도 누구든지 그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랑했다.
 
 그것은 노근리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였고 동훈은 사랑 받는 아이였다.

 "여보."
 "왜 불러?"
 "어제 꿈자리가 사나워서요."
 "왜?"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 누운 저녁, 동훈이 잠든 틈을 타 영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엊저녁보다 얼굴이 수척하다. 동훈은 자리를 고쳐잡고 영미의 앞에 앉았다.

 "그게, 참말로 요상한 꿈이여서요."
 
 빼빼마른 영미가 눈을 떨궜다. 그러더니 미자와 화자의 머리를 한번 쓸었다. 동철은 영미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 턱을 당겨 눈을 맞췄다.

 "왜 그래, 말해봐."

 영미가 뻐끔뻐끔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동훈이가 죽는 꿈을 꿨어요. 미자랑 화자도 꿈 속에서 다쳤었구요. 집은 무너졌었어요."
 "예끼!!"

 동철이 기함을 쳤다. 영미는 죄진 사람마냥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말어, 개꿈이야."

 '그렇지요?'라며 반문하며 영미는 눈물 한방울을 떨어트렸다. 그런 영미를 동철을 끌어 안았다. '개꿈이야'라며 동철은 영미를 달랬다.
 그러곤, 곤히 잠든 동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그의 눈이 닿는 곳엔 동훈의 배가 아래서 위로 반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럼, 암, 개꿈이고말고, 죽긴 누가 죽어.' 라고 동철은 속으로 되내었다.
 
 영미는 동철의 낮은 음성에 진정이 되었는지 코를 한 번 팽 - 하고 풀고는 동철의 옆에 달라붙어 누웠다. 그런 영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동철은 눈을 감았다.

 "도망가!!!"

 쾅- 쾅- 거리는 굉음과 함께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동철은 눈을 떳다. 영미는 벌써부터 딸꾹질을 했다. 동훈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었고 미자와 화자는 동훈을 끌어안아 달랬다.
 
 동철은 방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떼로 모여 앞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섬광들이 하늘을 메꾸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반복되는 섬광 난생 처음 보는 하늘 위의 고철을 보며, 동철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동철! 빨리 나오게나!"

 당산옹이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굉음이 두두두두- 하며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그는 곧바로 미자와 화자를 일으켜세웠다.
 
 "아부지, 아부지"

 동철의 배에 매달려 미자와 화자가 울었다. 미자가 껴안고 있던 동훈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응애응애'하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패물 챙겨."

 영미는 패물을 보따리에 대강 쌌다. 패물이래봐야 족두리와 반지랑 잡다한 것이 였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철을 부엌으로가 옥수수 몇개와 쌀 몇줌을 보따리에 싸 동네 사람들을 따라 달렸다.

 위험을 알렸던 당산옹은 저 멀리 앞에서 허둥대는 것이 보였다. 동철은 동훈을 대신 업어 안고 미자와 화자는 왼편에 영미는 오른 편에 껴안아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의 대열이 흐트러지는 것이 보였다. 제일 앞 대열에서 대강 십미터 정도에 총을 든 코쟁이들이 보였다. 
 그러곤, 가장 앞 대열 사람들이 빛이 번쩍이는 타이밍에 맞게 쓰러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쾅쾅 거리던 굉음 속에 작게 두두두두 거리는 소리는 코쟁이들의 총소리였다.

 그는 영미의 눈을 가리고 옆으로 달렸다. 그가 옆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그 뒤로 동네 사람들이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동철 이보게! 동철! 나도 같이 가주오!'라는 당산옹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달렸다.
 오줌보가 근질거리고, 덩치에 안맞게 눈물이 날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뱀 하나에 기겁하는 겁쟁이 영미와 이제 열 해를 겨우 산 미자와 화자 그리고 내 소중한 자식 동훈 앞에서 울 수 없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뒤 따르던 동네 술친구 매식이가 엎어져 동철의 이름을 불러도 내달렸다.
 
 내달린 그곳에는 쌍굴다리가 있었다. 그는 쌍굴다리로 들어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동철이 숨으니 뒤따라 온 모든 동네 모든 이들이 동철을 따라 어둠에 몸을 숨겼다.

 '이런 씨부랄! 왜 따라오고 지랄이야!'

 쌍굴다리 밑엔 사람 눈깔들이 모여 반짝반짝했다. 옆의 미자는 동철의 가슴팍에 얼굴을 뭍고 부들부들 떨었다.

 '응애'

 동철이 업은 동훈이가 찡찡댔다. 화자가 안아서 달래려고 했지만 더 징징되기 시작했다.
 동철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동생 하나 제대로 못 달래고 뭐야!"

 단 한번도 소리친적 없는 딸들에게 고함을 쳤다. 화자는 입을 비죽비죽거리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멀리서 천둥소리 비스므레 한 소리가 들리고, 지나쳐 왔던 길목에서 이질감이 드는 빛들이 번쩍 거렸다.
 그 빛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낯익은 얼굴들이 어둠속으로 점점 더 들어오자 굴다리 밑은 동네 사람으로 꽉 차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요."
 "왜 군인들이 우릴 쏴?"

 마을 사람들이 어둠속에서 수근거렸다. 동훈은 싸늘한 공기를 감지했는지 울음을 그쳤다. 조금 지나지 않아 두두두 거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굴다리 앞에 검은 형체들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동철은 영미를 끌어안았다.

 '설마'
 '아닐거야.'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이질감 드는 빛이 동철을 향했다.

 꺄아아악!! 아낙네들의 찢어지는 고함소리, 노인네들의 우는 소리, 남정네들의 신음 굴다리 밑은 순식간에 아수라 장이 되었다. 
 두두두두- 거리는 소리가 굴다리에서 증폭이 되었고, 총알이 튀는 소리가 귀에 쳐박혔다. 물에 면상을 거의 처박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고 숨을 죽였다.

 그럼에도 굴다리의 제일 앞 대열의 사람들이 "억",과 같은 짧은 단말마와 함께 죽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동훈이 그들의 최전선이 되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틈새로 자리가 있는 것 같다.

 '자리를 옮겨야 돼'

 눈치를 보는 사이 빛이 멈췄다. 그리고 소리도 멈췄다. 굴다리 밑과 앞의 벌판은 고요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영미를 일으켜 세우고 미자와 화자를 먼저 뒤로 보냈다.

 그 순간

 "으애애애애앵!"

 동훈이 고요를 깨고 울어제꼈다. 울음소리는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사방으로 퍼졌고 그 소리는 엄청난 빛과 함께 총알탄을 불러왔다.

 그리고 영원을 약속한 영미가 자신의 허리를 껴안고 끅-끅- 거렸다. 동훈의 손엔 뜨드미지근한 액체가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영미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이명이 들리고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동철은 영미의 허리를 끌어 안았지만, 영미는 자꾸만 축 처졌다.

 쌕 - 쌕 - 거리며 거친 숨소리가 끊기자, 동철은 머리가 새하애졌다.

 "정신차려!"

 동철은 뒤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동철의 바로 뒤에 있던 남자 하나가 억! 하며 쓰러졌다.

 "아부지!아부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동철은 뒤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곳엔 미자와 화자가 움크리고 있었다. 동철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다시 봐도 영미는 죽었다. 그럼에도 그는 영미의 팔을 끌고 제 자식이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벌판위의 그들은 또 다시 사격을 중지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틈을 타 '우리 양민입니다!', '무기 없다고요!' 라고 소리치자 다시 총을 쏴댔다.

 용기있게 목소리를 낸 사람은 몸이 벌집이 되었다.

 동철은 동훈의 입을 틀어막았다. 화자와 미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어무니, 어무니'하는 말은 자꾸만 새나갔다.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조용히해라며 화를 냈다. 자그마한 소리라도 새나가는 순간 벌집이 된다. 긴박한 와중에 동훈이 찡얼대는 것을 멈추지 않자

 "망할 것"
 "재수 없게 왜 칭얼거려?"
 "그런 멍청한 자식은 없는 게 나아, 애미도 모잘라 애비도 잡아 먹을려고 안달이 났구먼!"

 더 이상 동훈은 노근리의 마스코트가 아니였다. 

 "으아아..."

 동철은 사방에서 날 선 인광이 자신의 가족을 향하는 것을느꼈다. 그는 총탄이 날아다는 순간에 그 인광이 자기 가족을 잡아 먹을까 공포를 느꼈다. 피비린 내가 코를 찌르고, 자신의 옆엔 눈을 뜬 채 죽은 영미가 늘어져있다. 동철의 품에서 칭얼거리던 동훈이 입을 비죽거렸다. 

 "으애애애애애앵"

 동철은 동훈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동훈은 사력을 다해 울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거의 울다시피 미자와 화자가 달래보았지만 야속하게도 동훈은 더 거세게 울어대고 총탄들이 굴다리 사이사이로 튀어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벽 사이로 비껴 맞은 총알이 튀어 화자의 대가리를 깨부셨다.

 "화자야!!"

 한 시간 상간에 마누라와 딸을 잃었다.

 "애새끼 조용히 시키라고 씨발!!!!!"

 언제 왔는지 모를 당산옹이 욕지끼를 뱉었다. 당산옹은 다리에서도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씨발"
 
 당산옹은 동철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은혜도 모르는 놈' 이라며 욕을 뱉었다.
 그러곤, 벽으로 비껴맞고 튕겨온 총알에 맞아 죽었다. 

 당산옹이 죽자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다. 동네 사람들의 눈이 모두 동철을 향했다. 

 "아부지....아부지...."

 자신의 팔에 매달려 미자가 애원했다. 그럴수록 동훈은 더 크게 울었다.

 동철은 동훈은 한번 끌어안았다. 그러곤 입을 맞췄다. 입술을 떼고 그는 소중한 자식을 개천으로 밀어넣었다.

 미자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굴다리 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물속에서 동훈이 움직이면서 물이 튀는 소리만 굴다리를 채웠다. 동훈의 몸이 요동 쳤다. 철퍽철퍽- 물소리가 들리고, 동철은 '으흐'라며 신음을 한번 내뱉더니 더 깊은 곳으로 동훈을 집어 넣었다. 그의 표정에는 그 무엇도 남겨지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아이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것을 느끼자 그제서야 물속에서 꺼내 품에 끌어 안았다.

 동네 사람들은 아무말도 잇지 못했다. 굴다리 밑은 완벽한 적막이 찾아왔다.  




 



 그 날 이후, 살아남은 동철은 목을 매 자살 했고, 미자는 고모를 따라 마을을 떳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아무도 없는 쌍굴다리 밑에서 지독시리 울리는 아기울음 소리때문에 그 누구도 밤에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