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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덕한 밀덕이 쓰는 첩보전 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268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카초코
추천 : 145
조회수 : 14959회
댓글수 : 39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6/09/15 20:26:41
원본글 작성시간 : 2016/09/15 1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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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무릇 치고자 하는 곳이나 공격하고자 하는 성, 죽이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수장과 측근, 문지기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아군의 첩자를 시켜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전쟁 자체가 종합예술이니 딱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굳이 하나를 말하라면 "정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보급, 훈련, 전술, 화기 등도 중요하긴 하지만요.
 
적은 나를 모르는데 나는 적을 알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니까요.
 
때문에 평시에도 많은 나라들이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수많은 정보기관을 국가가 직접 운영하면서 첩보전을 전개하죠.
 
CIA, FBI, NSA, DIA, ONI, KGB, MI-5, MI-6, DGSE, 모사드, 국가정보원, 내각정보조사실 등등
 
온갖 알파뱃들의 향연이 벌어지죠. 평시에도 이런데 과연 전시에는 어떨까요?
 
 
정보기관.png
 
뭐 말 다 했죠. 2차대전 당시 각 국가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해 첩보전에 임했습니다.
 
나치 독일 역시 마찬가지로 첩보전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당시 나치의 정보기관은 아브베어(Abwehr)입니다.
 
해군 제독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전후 유대인 구출 공로로 전후 이스라엘로부터 "정의로운 이방인"의 칭호를 받은 반나치 신념을 가진 인물인
 
빌헬름 카나리스가 수장이었죠.
 
2f0a176664a4f878ecd03e2b849c78a7.jpg
<나치가 아닌 독일의 군인이었다고 평가되는 빌헬름 카나리스>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아브베어는 영국에 상당한 첩보망을 구축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은 대대적인 외국인 감시 작전, 체포작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나치의 첩보망은 완전히 와해됬죠.
 
그렇지만 당장 나치는 영국에 신경을 쓸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나치의 첫 침략은 폴란드였고 이후로도 몇개월은 인접국가를 상대로 싸웠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자연히 영국은 관심밖으로 밀려났고 나치는 프랑스를 공략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또 사실 히틀러는 영국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히틀러의 영국에 대한 언급 중 가장 유명한 말인 "영국과 카톨릭은 세계 평화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거나
 
영국침공을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나치 해군의 전력 등을 볼때 굳이 애를 써가며 영국에 정보망을 구축할 필요가 없었죠.
 
 
ㅁㅇㄴㄹ.jpg
<나치국방군의 개선문 통과>
 
 
그러나 1940년즈음..나치가 프랑스를 강점하고도 영국은 나치의 의도대로 굴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에 히틀러는
 
대영 첩보망의 재건을 지시합니다.
 
이에 따라 아브베어는 다수의 스파이를 영국으로 파견하게 되는데 다행이 이들은 대체로 영국에 무사히 침투하여
 
정보를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나치는 영국의 사정을 훤히 꿰뚫어 볼수 있었죠."
 
 
 
 
 
 
 
 
 
 
 
 
 
 
 
 
 
는 아브베어의 착각입니다-_-;;
 
 
 
사실 아브베어가 영국 MI-5의 손바닥 아래서 농락당하고 있었죠.
 
여기서 그 유명한 이중첩자 아서 오웬스가 나옵니다.
 
welsh-double-agent-arthur-owens-snow.jpg
<이중첩자>
 
이 웨일스 출신의 영국인 발명가는 자신의 사업상 독일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때문에 외국인을 통한 정보공작 위해 적임자를 찾고 있던 아브베어 역시 이 사람을 알고 있었을겁니다.
 
마침 아서 오웬스는 자신의 발명에 전 재산을 몽땅 털어넣어 빈털털이인 상황이었죠.
 
당연히 아브베어는 이를 약점으로 오웬스에게 접근했고 적국 한가운데에 있던 오웬스는 이를 수락합니다.
 
아브베어로부터 "Johnny O’Brien"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은 오웬스는 임무를 부여받고 영국으로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MI-5로 직행해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털어놓습니다.
 
그러자 이 영국의 음흉한 능구렁이들은 오웬스를 처벌하는 대신 역으로 그에게 "Snow"라는 암호명을 부여하고 써먹기 시작합니다.
 
오웬스를 통해 나치에게 역정보를 흘리기 시작한거죠.
 
5.jpg
<MI-5 정식명칭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 군 정보국 5과>
 
 
나치가 오웬스에게 지령을 내리면 오웬스는 MI-5에 알리고 MI-5는 다시 오웬스에게 지령에 맞는 가짜 정보를 주면 오웬스는 그걸 나치에게 넘기는
 
선순환 구조의 정보생산 프로세스가 확립된거죠.
 
아브베어는 지령을 보내는 족족 정보를 보내오는 오웬스의 활약에 크게 기뻐하며 그를 믿기 시작했고
 
급기야 오웬스 고정간첩으로 활용하며 영국에 파견하는 스파이들의 신원을 알려주며 그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물론 그 "불행한" 나치의 스파이들은 영국 땅을 밟자마자 붙잡혀 오웬스랑 똑같은 이중첩자가 되었죠.
 
아브베어는 본의아니게 영국에게 MI-5 입사지원자들을 보낸 꼴이 되고 말았지만 대전이 끝나기까지 이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심지어 1942년 이후로는 더 이상 영국에 스파이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정도였죠.
 
자기네들이 보낸 스파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잡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겁니다.
 
이는 아브베어가 꽤 멍청했다는 점도 있는데요.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첩보원들에게 파견국의 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잡히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나치의 한 스파이는 아침 9시에 술집에 들어가 한잔을 주문했다가 잡히고 말았죠.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술집의 영업시간을 몰랐던거죠.
 
이를 수상히 여긴 술집 사장은 바로 신고 -> 체포가 되었죠. 지금도 영국의 펍은 대체로 오전 11시부터 술판매를 한다고 하네요.
 
영국_펍_문화_(6).jpg
<주인장 여기 맥주 한잔~, 네~ 너 님 체포!>
 
이런 식이 한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침투 후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살려다 잡힌 경우도 있었죠.
 
직원이 표값은 10에 6입니다 라고 말하자 10파운드 6실링을 내줬는데
 
사실 표값은 10실링 6펜스였다는거죠. 전쟁통에 1파운드도 꽤 큰 금액이었는데 10파운드라니..
 
당연히 이 친구는 기차에 오르기도 전에 바로 체포되어 감옥으로 직행했습니다.
 
표값으로 1600원만 주면되는데 16000원을 줬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아무튼 이런식으로 잡혀오는 스파이들은 모두 영국에 의해 재활용됬습니다.
 
일명 "배신위원회" 공식명칭 The Double Cross System or XX System에 의해서 말이지요.
 
영국은 무척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이 시스템을 운영했는데
 
예를 들어 군항에 전함이 언제 도착하는지 알려달라는 나치의 지령을 받으면 영국은 즉시 별도의 정보망을 통해 위협을 평가한 후
 
실제 정보를 넘겨주곤 했습니다.
 
즉 그 군항 주위에 독의 U보트나 별도의 공작이 없는지 먼저 확인을 하고 실제 정보를 넘긴겁니다.
 
나치는 당연히 그 정보를 접하고 확인한 뒤에 자국의 첩보원에 무한 신뢰를 보냈죠.
 
 
그리고 이 이중첩자 시스템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 나옵니다.
 
"Juan Pujol Garcia" 후안 파욜 가르시아.
 
e15a414321.jpg
<스파이계의 전설>
 
 
 
191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가르시아는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며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상당한 증오와 혐오를 갖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2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바로 영국의 대사관에 뛰어들어가 스파이를 자원했죠.
 
하지만 이용가치가 없는 그를 영국이 써줄리는 없었고 당연히 일거에 거절당합니다.
 
뭔가 있어야 스파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가르시아는 제발로 나치에 찾아가 자신은 영국에 대해서 아는게 많으니
 
스파이로 써달라고 지원합니다.
 
이에 아브베어는 스페인의 독일대사관에서 그를 만나 활동자금과 위조여권을 쥐어주고 "Alaric"라는 코드명을 부여한 다음 영국으로 보냈죠.
 
하지만 가르시아는 영국으로 가기는커녕 바로 옆나라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갑니다.
 
그런 다음 일명 "첩보활동"을 시작하죠.
 
엄청난 창의력을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영화나 관광가이드북, 열차시간표, 상선시간표 등으로 "첩보"를 만들어서 나치에 공급하기 시작한겁니다.
 
그것도 마치 런던에서 발송하는것처럼 사기를 쳐서요.(심지어 가르시아는 영국에 가본적이 없습니다-_-;;)
 
이 과정에서 공작비를 두둑히 받아 챙기기고 하고 자신의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도 만들어내고 하면서 독일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합니다.
 
나치는 가르시아의 "뇌내 정보망"을 무척 높이 평가했고 가르시아는 나치의 지원아래 3명의 영국 고정간첩을 거느린 거물 첩보원이 됩니다.
 
 
Garbo-the-spy.jpg
<가르시아의 활약을 그린 영화 Garbo the Spy>
 
자 이제 자신만만해진 가르시아는 이 사기극을 들고 영국으로 갑니다.
 
처음에 가르시아를 거절했던 영국은 곧 가르시아가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고 급히 런던으로 데리고 옵니다.
 
영국의 지원아래 가르시아의 "머릿속 첩보망"은 점점 커지기 시작해 급기야 14명의 스파이와 11명의 영국인 정보원을 보유한 수준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정보를 어느 정도로 나치가 믿었느냐면
 
한번은 가르시아가 자신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 중에 하나가 죽었다고 보고하면서 그 미망인의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통신을 나치에 보냅니다.
 
그러자 나치는 죽은 요원의 미망인을 위로하는 메세지와 함께 위로금을 보내왔다고 하네요-_-;;
 
어쩃든 가르시아의 소설과 영국의 첩보노하우가 만나면서 독일측에 무려 400여통의 편지와 2000여건의 무선통신이 독일측으로 넘어갑니다.
 
이에 독일은 자신들의 영국 첩보원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가르시아에게 훈장을 수여합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구요.
 
아 물론 영국의 훈장은 그의 진짜 업적을 치하하는 것이었지만요.
 
 
철십자.png
<그대의 공로에>
 
영국.png
<감사드립니다.>
 
 
 
하여튼 가르시아 역시 자신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쇼를 하는데요.
 
(영국의 검토를 거친) 실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넘기기 민감한 정보를 요구받으면
 
영국과 짜고 실제로 자신을 체포하게 만들어 잠깐 감옥에서 쉬다가(?)나옴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등
 
상당히 영리하게 대첩보전을 수행해 나갑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가정을 꾸리며 잘 살다가 1988년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죠.

갑자기 다른 주제의 글을 썻네요.ㅎㅎ 나폴레옹 시대 글은 상대적으로 자료 찾기도 힘들고 해서
 
당분간 접어둘까 합니다.
 
아 그리고 글을 쓰는 도중에 먼저 글을 올려서 혼선을 드린 점 죄송합니다.
 
그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른 주제로 글 올리겠습니다.
 
항상 그렇듯 오탈자, 자료에 관련된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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