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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26살 아줌마 얘기좀 들어주세요.. 제발..
게시물ID : bestofbest_2775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를잊지마요
추천 : 129/104
조회수 : 35482회
댓글수 : 186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6/10/31 13:20:35
원본글 작성시간 : 2016/10/31 08: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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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쓰는 재주가 없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디 터놓고 얘기할곳없어 너무 답답한 마음에 눈팅만하고 간간히 댓글달던 오유에 처음으로 글을 씁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때문에 많이불편하시겠지만 양해부탁드립니다. 많이 길것 같습니다.




익명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듣고싶어 익명으로 쓰지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쓴소리도좋고 위로도 좋습니다. 그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저는 24살 어린나이에 지금 저의남편을 만났습니다.
서로 부모님께는 타지에 숙식으로 돈을 벌러가겠다 말을하고
동거를 시작한것은 그해 여름이였습니다.
남편은 그당시 조선소 용접공이였고 회사근처에 남편의 부모님께서 잡아주신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철없고 돈없었지만 행복했던날들이였고 그러다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굶으면 굶은대로 위액을 토해냈고 쥬스라도 마시면 얼마지나지못해 토하기 일쑤였던 저는 일을 하지못했고 게임을 좋아하던 남편은 조선소 특성상 빠른 출근시간 때문에 지각을 하기 일쑤였고 그로인해 퇴사하게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지못하는 저와 실직당한 남편은 전단지를 돌리러 다녔고 고층아파트를 계단으로 내려오며 A4 용지크기의 전단지를 하루에 수백장씩 돌리기란 임산부에겐 너무 힘든 일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란과 밥, 간장, 참기름을 넣고 비벼 단무지만 놓고 먹으면서도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각자 본가에 갈때 저는 저희 부모님께 임신사실을 숨기려 복대를 하고 펑퍼짐한옷을 입고갔기에 저희 부모님은 제가 출산을 하고 몇일이 지날때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셨습니다.


돈이없어서 7개월이 될때까지 병원한번 가보지 못하였고 생리가 늦어지기에 해본 임신테스트기 3개에서 임신이라고 뜬것만보고 임신임을 알았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사람도 들을 곳고 없었던 저희는 고운맘카드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쓸수가없었습니다. 출산할때 병원비로 써야하니까요. 하지만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겁이났던 어렸던
저희 부부는 시댁에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부모님을 처음 뵈었고 무보증 원룸에서 살던 저희 부부는 시부모님과의 상의끝에 시댁으로 들어갔습니다.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고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은 많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저를 받아주셨다는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여전히 남편은 백수였지만 시부모님의 부족함 없는 지원으로 난생 처음 임부복을 한벌 가지게 되었고 병원도 가서 초음파도 할 수있었기에 이정도면 좋다고 만족했습니다. 
잠들기전 남편의 총각시절쓰던 작은 방에 똑바로 누워 잠들기도 비좁아 옆으로 돌아누워자야했던 좁은 침대에서 우리 나중에 이렇게살자 저렇게 살자 미래를 꿈꾸면서 잠드는 시간이있었기에 기쁜마음으로 버틸수 있었습니다.


10개월은 너무빨리 지나갔고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재대로 드니 너무 서러웠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요. 하지만 전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는 너무 컷고 특히 엄마는 반평생을 저만보고 살아왔는데... 실망시켜드린다는 게 너무 무서웠고 엄마아빠가 저에게 등을 돌릴까, 저의 책임감 없는 행동에 저를 부끄러워 하실까 등등 많은 생각이 오가며 결국 그때까지 말한마디 하지 못하였습니다.
8개월째 접어들면서 부터는 배가 나온게 많이 보였고 복대를 해도 티가나서 집에 갈수 없었고 그저 전화통화나 문자로만 일이 너무 바빠서 갈수가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산을 하고 한달도 되지않아 저와 동거중에 남편이 대출을 했었다는 사실을 시부모님께 들켰습니다. 대출을 할 당시 저와 남편은 소득도 없는 상태에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게임은 반드시 해야했던 철이 없던 남편은 전단지를 돌려 받은 일당을 게임에 쏟아부웠지만 멍청한 저는 그걸 방관하였습니다. 월세도 못내고 밀려서 보증금을 다 까먹은 상황에 집주인분께서는 나가라고 말씀하셨고 남편은 작업대출을 하였습니다. 
그돈으로 저희는 무보증 원룸을 들어갔고 돈이 생긴 남편은 게임에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돈 역시 금방 동이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부모님께 혼이날까 대출사실을 숨겼던 남편과 저에게 숨겨달라 사정하는 남편을 거절 할수 없었던 저는 시부모님이 주시는 용돈과 시삼촌이나 시할머니, 시고모께서 주시는 출산축하금 같은 돈으로 밀린 대출 이자를 냈지만 계속 밀려온게 있던 탓에 시댁으로 독촉 전화가 온 것을 받고 시부모님께서 아시게되었습니다.


어린 저와 저보다 어렸던 남편...
남편은 부모님께 혼이 날까 너무 무서워했고 시어머니의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신경질적으로 점점변해갔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인데 혼은 나더라도 너의편이 되주실거다. 절대 너를 버리시진 않으실거다.' 라고 말하며 남편을 안심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온 시어머니의 어떻게 된 거냐 란 물음에 제가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게 된거라고 남편은 말했고 혹여나 남편이 화를 낼까 아니라고 말 할수 없었던 저는 그때부터 시댁 식구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잘난 아들 인생 망친년.
시댁살이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였습니다.
서러웠지만 잘 웃어주는 아기와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그래도 버텼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이정도면 행복한걸꺼라고 생각했습니다.


2~3시간마다 깨서 우는 아기에게 밤새도록 선잠 자며 수유를 하였고 아침에는 시어머니를 도와 가족들의 아침준비를 하였으며 시어머니가 출근하시면 아기옷과 손수건 기저귀 등등을 손빨레하고 삶고 저녁이면 방에 쥐죽은듯 있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남편은 의료기기영업을 하는 회사에 들어갔고 회식이 참 많고 늦은 새벽까지 회식을 하던 회사였습니다.
우리아들은 고생하는데 너혼자 편하게 밥이넘어가냐고 저녁은 우리아들오면 같이먹어라는 시어머니 말씀에 서러움 폭발하던 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남편은 한참을 전화를 받지않았고 그렇게 저는 우는 아기를 달래며 안고 배고픔을 참고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6시가 다 되어서야 술에 떡이된 남편이 귀가하였고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 서럽고 화가난 저는 아기를 눕혀놓고 바람이라도 쐬려 집근처 카페에 나갔다가 3~4시간 정도 뒤에 들어갔습니다.
시댁식구들은 저에게 나가라고 하며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소리치고 밀쳤고 저에게 아기버리고간 못된년이라고 욕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기를 버리고 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그 상황이 너무 무섭고 싫어서 그저 죄송하다고 빌었습니다.


그뒤로도 남편의 회식은 매우 잦았고 일찍 들어오는 날도 새벽 3시를 무조건 넘겼습니다. 혹여나 회사에서 강요해 어쩔 수 없는게 아닐까 얼마나 힘들까 걱정하며 남편에게 물었던 적도 있었지만 '내가 마시고싶어. 사람들이랑 노는게 집에 가는거보다 좋아.' 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저는 너무 상처받았습니다. 


하루는 시누이덕에 아기를 맡기고 외출을 해서 동네 아기엄마들 모임에 갔던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대리러 온다는 말에 기다렸던 저와 사이좋아보여 부럽다 좋겠다는둥 말을 들은 저는 기분이 넘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대리러온건 회식을 하다말고 술이 반쯤 떡이되어 온 남편.. 얼른 가자고 남편을 대리고 나오고싶었지만 그자리에 남편이 앉아버렸고 뻘쭘해하던 다른 애기엄마들 때문에 남편을 억지로 끌고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저의 행동에 화가 난건지 술김이였는지 남편은 저의 휴대폰을 뺏어 저희 친정부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그 시간이 저녁 11시를 넘은 시간이였습니다. 휴대폰을 빼앗으려 하는 저를 때리며 저희 부모님에게 '당신네들 딸이 애새끼를 낳아서 우리 엄마가 병원비랑 생활비 대느라 등골이 휘는데 돈좀 보내시지? 내 애새끼맞는지아닌지도 확실히 모르겠는데 내가 거둬준거 고마워해요' 라고 일방적으로 말하고 끊었습니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이모를 통해 저와는 연을 끊고 살겠다 통보를 하였고 저는 남편이 술을 먹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말에 또 한번 속아 넘어가고 용서했습니다.

몇일지나지 않아 술을 먹고온 남편과 또 싸웠고 그 모습을 시부모님께 의도치않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시부모님은 어디 남편한테 대드냐고 니가 우리아들 인생망쳤으면 잘하고 살아야할게 아니냐고 하는 시부모님께 대출 제가받으라고 한거아니예요 @@이가 거짓말한거예요 라고 울며 소리치던 저는 뺨을 맞고 밟히다 머리채를 잡혀 문밖으로 끌어 내쳐졌습니다. 
당시 입고있던 옷 그대로 휴대폰하나만 달랑 가지고 쫓겨난 저는 수유시간이 한참지나 옷밖으로 젖이 새어나왔고 너무나 더웠던 그해 여름 물한모금 마시지못하고 뜬눈으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밤을 새었습니다.

그러다 출근시간 아파트 앞을 서성이던 저에게 시어머니와 남편이 나와서 얼른 꺼지라고 했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던 저를 발로차고 제발 용서해달라는 저에게 가지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하여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갈 곳이 없었고 너무도 죄스럽지만 이모께 연락을 드렸고 상황설명을 들은 이모는 일단 올라오라며 돈을 보내주셨고 그마저도 지갑을 차마 챙길새도 없이 쫓겨나는 바람에 저는 아파트 단지안에있는 작은 슈퍼 사장님의 계좌로 전해받을 수 밖에없었습니다.
이모에게 돈을 받고도 한참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서 남편에게 전화해보았지만 남편은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고 문자나 카톡조차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한번만이라도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출산하고 2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모는 저에게 그런대접받고 어떻게 할머니될때까지 살겠냐고 차라리 잘된거라고 이제 잘 살면된다고 니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저역시 그러리라 다짐했습니다.
제가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시겠다하셨고 방을 보러다녔지만 마땅한 곳이없어 일단은 고시텔에 들어갔고 너무 우울해하던 저를 심리상담시료도 받게하시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생각이나고 어딜봐도 다 남편과 연관짓고 잠들면 꿈에서 아기울음 소리를 듣고 가슴뭉침에 고통스러워 재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술을 찾게 되었고 미친듯이 술을 몸에 쏟아부워 취해서 기절을 하고 일어나서 토하고 그러다보면 내 상황에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반복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그 여름 대천해수욕장 근처 조개구이집에서 숙식 아르바이트를 하게됬습니다.


출산한지 얼마되지않은 저에겐 힘들다면 힘들었지만 항상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그곳에서 저는 그나마 좀 더 버티기 쉬웠습니다. 물론 밤이되면 잠이들기전에 혼자 울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버틸만 했습니다. 그렇게 잊고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남편이 아직도 게임을 할까 어떻게 사는걸까 궁금하여 검색을 하던차에 남편이 다시 조선소가 있는 그곳으로 갔다고 써놓은 글을 보았고 바로 일을 그만두고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큰 동네는 아니지만 작은 동네역시 아니였던 터라 하루를 꼬박 혹여나 마주칠까 같이자주다니던 곳 근처를 서성이다 남편을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눈물이 나고 그동안 혼자 마음고생하던게 생각이나 남편앞에서 엉엉 울어버렸고 미안하다며 달래주던 남편과 그곳에서 다시 같이살게되었습니다. 다행이 아기는 시댁에서 잘 봐주시고 계신다는 말에 안심할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한참을 행복했습니다. 투닥거린적도 있었고 
많이울기도 울었지만 행복함이 너무크고 소중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느껴지더라구요. 남편이 변했습니다.
저를 때리고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저에게 본인 인생을 망친년이라는둥.. 시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했고 여전히 돈을 벌지 않아 생계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돈이없는것보다 저를 사람대접해주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더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헤어졌을때 그 아픔이 더 커서 저는 점점더 작아졌습니다. 또다시 같은상황이 반복될까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남편은 또다시 시어머니가 주신 돈을 까먹고 저희 부부는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숙식으로 부부모텔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일한 돈을 처음 손에쥔날 너무나도 뿌듯했고 이제 일이 잘풀리나 싶었습니다만 돈이생기니 또 게임을 하고싶은 남편은 일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악순환의 반복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위태위태하지만 죽지않고 살아졌습니다.


일주일에 로또를 천원씩 하며 우리이거되면 이거이거하자 하며 당첨을 기다리는 한주동안 힘을 낼수 있었고 잠든 남편 얼굴이 너무 예뻐서 쓰다듬고 싶었지만 혹시나 잠이 깰까 그저 쳐다보고만 있다가 잠들던 그 날들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헤어져있는동안 혼자 쓸쓸하게 생일을 보낸 저를 위해 돈을 모아 전주여행을 계획했고 신혼여행한번 재대로 가보지 못한 저희 부부는 그 전주여행을 신혼여행이다 생각하며 다녀왔고 그 전주에서의 1박2일이 제 인생 가장 행복했던 날이였습니다.


너무 많이 행복해서 너무 큰 불행이 갑자기 온걸까요..
평소랑 다르지 않은 아침이였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가던 남편이 미끄러져 옆에 있던 유리로 넘어져 팔이 찢어지는 사고가 생겼고 너무도 크게 난 상처에 무서웠고 병원비조차 없었던 저와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응급실로간 남편은 너무 깊게 베인 상처에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여 입원을 하였고 놀란 시부모님께선 급하게 올라오셨습니다.


그 일이있은 후로 처음 뵙는 시부모님이였는데 여전히 저를 보는 표정이 저는 많이 불편했고 그때 생각이 참 많이났습니다.

시부모님께서는 남편에게 그이후로 여지껏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시고 시댁근처에 방을 구해줄테니 내려오라 하셨습니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저에게 그 동네는 너무나도 무섭고 아픈 기억밖에 없는 동네라 선뜻 마음이 정해지지않았지만 남편은 가서 일열심히하고 잘살자고 하며 더이상 가난하지않을수 있겠다며 너무좋아하는 모습에 그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를 집에들이기 싫다는 시부모님 말씀에 남편은 퇴원하고 바로 먼저 시댁으로 내려갔고 저는 짐을 정리해서 택배로 보내며 집을 구할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내려온지 3일째되던날.. 일어나자마자부터 게임을 하러간 남편.. 전날 조금 다툼이있었기에 남편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려고 준비하던차에 시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남편 어디갔냐 또 pc방 간거냐는 말에 저는 아무대답을 못했고 시어머니는 그자리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와라 고 말씀하시곤 나가셨습니다. 저는 시어머니가 간줄알았고 남편이 튀김류를 좋아해서 오는길에 튀김사오라고 떡볶이랑 같이먹자고 전화를 했는데 남편은 받지를 않았습니다..
한참뒤에 남편이 집에왔고 남편은 저에게 욕을하며 내가 너때문에 엄마한테 그런소리까지 들어야하냐는둥 이대론 못산다 헤어지자며 말하였고 제 휴대폰을 빼았아가 아기사진과 남편의사진,같이찍은 사진등을 삭제하려기에 뺏으려다가 실수로 남편의 등짝을 한대 때렸습니다.

화가난 남편은 저를 손이 가는대로 마구때렸고 배를 발로 수십번 밟고 몸 여기저기를 할퀴고 머리채를 잡으며 때렸고 휴대폰을 달라고 계속 빼았으려 하던 저역시 남편의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던중 남편은 갑자기 저를 때리건걸 싹 멈추고 본인의 휴대폰으로 제가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하는 걸 아 아 하며 소리를 내며 동영상을 찍었고 그 동영상 녹화를 끝내자마자 제 명치를 팔꿈치로 눌러 숨을 쉴수가 없게한 상태로 머리를 잡아 몇번이고 바닥에 찍었습니다. 너무 무서웠고 저는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소리를 칠 수밖에없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얼마뒤 경찰이 집에 도착했고 남편은 본인이 맞은사람이라고 본인은 저를 때린적이없다고 동영상도 있다며 주장했습니다.

맞느라 정신이 없었던 저는 동영상을 찍을 정신도 없었고 남편의 뻔뻔함에 그저 눈물만 났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경찰과 함께 집을 나섰고 저는 나중에 조사받으러 가기로 하고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시어머니가 전화와서 남편을 시댁에 대리고있겠다고 진정이 좀 되면 그때 얘기해보자고 하시는 말씀에 알았다고 하고 기다렸습니다. 마음이 많이 복잡했지만 좋게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바로 다음날 집에 찾아온 남편과 시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하며 남편의 짐과 가전들을 챙겨갔고 남편은 저와 단둘이는 절대 이야기하려하지않았고 제 전화를 피했습니다. 시어머니 앞에서도 여전히 제가 본인을 폭행했다고 주장했고 시어머니는 저에게 깔끔하게 이혼하던지 아니면 폭행으로해서 이혼소송을 걸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시어머니와남편이 휩쓸고간 집에 저혼자남아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오늘... 뜬눈으로 밤을 새고 한끼도 먹지않고 생각을 해봐도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지내고 있는 방의 명의는 시어머니이고 저는 오늘 이혼서류를 작성해서 법원에 제출하고 내일 중으로 이 집에서 나가야합니다.. 모든 돈은 남편이 가지고 있었고 저에게 단돈 천원도 못주겠다는 남편.. 하여 저는 당장 어딜 갈수있는 차비도 없는 상황에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요.. 제가 남편을 다시만나게 되던날 이모도 저에게 등을 돌려 이젠 정말 기댈곳 하나 갈곳하나 없습니다.. 제 나이 26.. 죽고싶습니다... 
세상에 제가 있었다는 흔적도 없이.. 그동안 아팠던 기억들 다 잊고 그만 편해지고싶어요... 너무 힘들고 막막해요...





P.S. 제 과거 댓글을 보고 주작이라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것 같아 추신을 답니다. 저는 제가 이런글을 쓰게될줄 모르고,또 이런 상황에 처해질줄 모르고 저의 희망사항같은 댓글을 단적이 있습니다.. 어차피 얼굴도 안보이는 온라인에서 잘 사는 잘난 남편둔 잘난 아줌마이고 싶어서요.. 그 부분에 대해선 혼동을 드린점 미리 죄송합니다.. 
출처 한많은인생마지막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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