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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bestofbest_3041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컷수컷
추천 : 164
조회수 : 25843회
댓글수 : 1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02/12 01:39:43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2/09 21:56:57

제목 : 몬스터


내가 M을 만난 건, 밤늦게 야근을 마치고 간단하게 배나 채울 겸 들어간 술집에서였다. 술을 마시는 M을 본 것이 아니다. 소주 한 잔 딱 걸치려는 찰나에 내 뒤에서 누군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어" 그게 M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정도- 내 동년배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약간 굽어있는 등, 관리하지 못해 헝클어진 머리, 일그러지다시피 자잘한 이마의 주름, 연신 내 기분을 살피려 계속 움직이는 눈동자, 불안한 듯 가지런히 모은 두 손, 여기저기 구김이 간 정장에다 낡아서 광이 날 정도의 구두하며... 첫 인상의 M은, 내 나이보다 한참은 더 찌들어버린 사회인이었다.

"초면에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나는 돈이나 좀 꿔달라고 하겠거니, 했다. 별 생각없이 손을 휘두르며 거절하려는데 "화장실 좀 같이 가주실 수 없을까요?" 라는 게 뭔가. 초면에, 그것도 남자가, 혼자 화장실을 못 가겠다는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기도 하거니와 당초 내가 생각했던 구걸이 아니었기에 나는 대뜸 승낙하고 말았다. M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난 뒤에도 몇번이나 감사하다며, 감사하다며 허리숙여 인사하곤 가게를 나갔다. 손님이 아니었던가, 했는데 주인장 말을 듣고보니 가게와서 자동차 영업질이나 하는 찌질이라 그런다. 그러니까, 늦게까지 영업을 하러 왔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는 나더러 같이 화장실을 가주십사 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얼빠진 놈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겼더랜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그래봤자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터. 회사에서 일을 하다 잠시 한 대 태우러 나오는데 M과 마주쳤다. 나는 대번에 M을 알아보았지만 그는 나를 몰라봤다. 대신, 그는 빠른 속도로 내가 뭔가를 내미는 게 아닌가. 그건 자동차 팜플렛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제가 정말 좋은 가격으로 좋은 상품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나온 이 제품으로 말씀드리자면..." M은 몇백, 몇천 번이나 반복했음이 분명할 정도로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내심 '이번에도 거절하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에 내쫓기는 심정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체를 하니, 그제야 M은 그때는 실례까 많았다고 한다. 마침 점심 때이기도 했거니와, 조금 이르지만 나는 M을 데리고 회사 근처 식당으로 데려갔다. M은 아침도 굶었다고 한다.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데 숨쉬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M이 밥을 뚝딱 비우고 나서야, 나는 떠오른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 "노형, 근데 그때는 왜 화장실을 혼자 가기 무서워했던 거요?"

M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영업사원답지 않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괴물이 있습니다."

나는 웃어버렸지만 M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이빨 사이에는 고기조각이 끼어있고, 울음소리는 들개가 그르릉 거리는 것 같죠. 늘 핏발 서 있는 두 눈은 어떻고요. 저는 그 괴물이 언제 저를 죽일지 몰라 늘 불안하답니다. 그래서 밖에 있을 때는 혼자 화장실도 잘 못 가요."

그러더니 갑자기 M에서 전화가 왔다. M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마치 폭발물을 손대는 형사 같이 조심스레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집사람입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M은 식당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예의가 아님을 알지만, 나는 귀를 기울여 그와 아내의 대화를 살짝 엿들어볼 수 있었다. "어... 그래... 뭐? 아버님이 또...? 하아... 그래, 우리 통장에 돈 얼마 남았어?" 예상컨데, 그는 지금 영업사원으로써 달성해야 하는 실적과 가정에서의 노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압박이 여러모로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나도 별반 다를 거 없는 처지이거니와 거진 서민의 삶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괴물이라니, 영 실 없는 사람이었다는 첫 인상은 확신이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M이 죽었다고 한다.

M과 내가 만난 것을 누가 말해줬는지, 나는 경찰서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내 알리바이는 확실했기에, 형사는 형식적인 것만 물어볼 뿐이었고 나도 아주 짤막한 것들만 얘기해 줄 뿐이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금전을 주고 받은 적 있느냐, 주변에 원한 살만한 일이 있느냐...

"어떻게 죽었습니까?" 형사에게 물어보자, 그는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형사는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조금 목소리를 낮췄다. "끔직하게 죽었지요. 마치, 괴물한테 당한 것처럼." 나는 머리털이 쭈뻣 서는 것 같았다.

그리고 M의 장례식장. 생각했던 것처럼 그의 장례식은 매우 초졸했다. 내 맞은 편에는 그의 직장상사라는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그는 혼자서 수육 서너 접시를 먹어치운 상태였다. "그런데 혹시... 죽기 전에 무슨 말 없던가요?" 그가 기름이 번드르한 안경테를 고쳐 올리며 내게 물었다. "어디 뭐 차를 팔았다던가 하는... 암만 월급 도둑이었어도 말이야... 죽기 전에 계약 한 두건 정도를 따냈을 거 같은데..." 죽은 이 앞에서 그런 말을 태연히 하니, 영 불편하지만 애초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냥 그러려니 했다. 상사는 이쑤시개로 이빨에 끼인 수육 조각을 빼냈다. 그리고 그때, 내 머리에 M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분명히 그랬다.

'이빨 사이에는 고깃조각이 끼어있고...'

그리고 같은 때, 장례식장 입구가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백발 노인이 젊은이 등에 엎혀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연신 기침을 콜록거리고 있었다. M의 부인이 달려가 아버지라 부르며 노인을 부축했다. 노인은 갑자기 죽어버린 사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기침을 멈추질 못했다. "자네가 없으면 내 약값은 누가 대주나..." 말 그치기가 무섭게 노인이 기침을 해댔다. 그러면서 끓어오르는 가래소리에 나는 다시 귀가 뜨였다.

'울음소리는 들개가 그르릉 거리는 것 같죠'

이내 또 누군가 찾아왔다. 거칠어보이는 청년이었다. "형이 죽었다고?" 그는 M의 아내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주변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형 살아있을 때 내 사업자금 대준단 말, 형수 분명 그런 말 들었죠?" "도련님, 여기서는 좀 그러지 마세요!" 아내가 울부짖듯 청년에게 사정했다. 청년이 그런 형수에게 다시 따져들며 죽일듯 눈을 부바리는데 그의 동공 주변으로 벌건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이어져있었다.

'늘 핏발 서 있는 두 눈...'

그 뒤로 내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M을 죽인 건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봤자, 나 또한 그와 별다를 바 없는 처지인지라 내 사정이 급하지 도저히 거기에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이해해줄만한 건덕지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에게는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직장에서의 업무, 가정에서의 부담감, 사회의 기대감, 그 모든 것들 나를 억누르는 시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찬 공기를 마시며 퇴근하다, 습관처럼 술 한잔 걸치고 나오는 내게 그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당연히 내가 술에 취했거니 싶었다. 들개가 그르릉거리는 소리, 목 안쪽에서 가래끓는 탁한 소리. 내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잘못 들었다 생각하는 순간,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좀전보다 훨씬 분명하고 가까이서. 나는 정신없기 뛰기 시작했다. 괴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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