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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한 표" 라고요? (1boon 펌)
게시물ID : bestofbest_3273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저냥
추천 : 133
조회수 : 12164회
댓글수 : 17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05/02 10:05:51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5/02 07:53:19
지금은 투표권이 통치자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지만 불과 30년 전 까지만해도 권력을 심판하는 데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때는 대통령 직접 투표가 불가능했고요.

투표는 오히려 독재자를 형식적으로나마 승인해주는 요식행위에 그쳤습니다.

한 장의 종이일 뿐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인 한 표.

투표권을 어떻게 쟁취하게 됐는지 그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4.19혁명

이승만 정권은 독재와 탄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터졌을 때도 국민을 버리고 가장 먼저 서울을 빠져나왔습니다. 한강 다리는 폭파한 채로요.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부정투표를 행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입니다.

3.15 선거 후 서울 시내 자유당 중앙당부 앞에 고시된 선거 개표판을 지켜보는 시민들
출처 : 국가기록원
부정투표에 사용된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4할은 '답정(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후보에게 찍힌 표였고요.

한 기표소에 세 명이 들어가는 3인조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투표를 하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용마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이 되던 날,

마산 앞바다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그의 시신이 떠오른 겁니다.
부정투표에 항의하는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습니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4.19혁명 과정에서 18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르면 누를수록 국민들은 일어나고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국민적 저항을 이기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서를 발표하고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이승만의 당선은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직선제로 된 것이었지만 부정투표가 횡행했습니다.

국민은 부정투표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독재 정권

4.19혁명으로 이뤄낸 민주화를 만끽할 겨를도 없이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세력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여 탄압하고 조작과 고문을 서슴지 않았던 정권은 민주적인 투표로는 당선이 힘들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만듭니다.

이 기구는 선거인단 약 2500여 명으로 구성, 체육관에서 자기들끼리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현재 미국의 간접선거 제도와 비슷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구성원 대부분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친정부 인사들이었고요. 회의의 의장이 박정희 자신이었습니다.

투표 결과를 보면 투표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박정희 단독 출마에 100%의 찬성으로 당선됐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정권의 말로는 좋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5.18 광주와 6월 민주항쟁

결론적으론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올 줄 알았던 민주주의는 또 한번의 군사 쿠데타로 물거품이 됩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은 광주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거수기에 불과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전두환 정권에 항거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모든 통신 수단을 끊어 광주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다른 지역엔 폭동이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였습니다. 당시의 기록은 다큐로 만들어져 2003년 KBS에서 방영됐는데요.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제목의 다큐는 유튜브에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시민을 상대로 군사 진압을 했습니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남도청의 탄흔을 조사하고 헬기에서 기관총을 연달아 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시에나 이뤄지는 일을 국민을 상대로 자행했다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희생이 있었습니다. 주검을 보관할 관이 모자랐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광주에 진 빚이 너무나 큰 것이죠.

전두환은 광주를 침묵 속에 고립시켰고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합니다.

그러다 1987년,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숨집니다. 

후폭풍이 무서웠던 정권은 거짓말을 합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죠.

연세대 학생이었던 이한열도 시위 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게 됩니다.

더 이상 정권이 막는다고 막아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직선개헌 쟁취하여 민주정부 수립하자'
'대통령을 내손으로'
'고문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시민들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 등을 외쳤습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의 진상규명도 요구했습니다.

종교를 가리지 않고 투쟁한 결과
전두환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노태우 대표 시국수습안 전폭 수용. 전두환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다는 6.29 선언을 발표합니다.

드디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직선제가 무조건 좋고, 간선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소중한 한 표를 던진다는 데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한 표를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얻고자 했습니다. 왜 그렇게 절박했을까요? 잘못된 투표가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일 겁니다.


사전투표일은 5월 4~5일로 신분증만 있으면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 가능합니다.

본 투표일은 5월 9일입니다.

투표합시다.
제작/김서진
김서진대선대통령선거사전투표정치투표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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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포기는 권리가 아닙니다.
현 불합리한 체계와 기득권을 인정한다는 것 뿐입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꼭 투표해야합니다.
출처 http://1boon.daum.net/h21/59041edc6a8e5100015b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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