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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없어진 후 내 인생
게시물ID : bestofbest_358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엇이무엇이
추천 : 233
조회수 : 20510회
댓글수 : 6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08/24 03:06:21
원본글 작성시간 : 2017/08/23 21:18:56


그냥.. 한번쯤은 어디엔가 얘기해보고 싶어서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을 씁니다.


지난 3월, 1년 3개월여의 투병생활 끝에 췌장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요.

장례식 때도 어떻게 울고 어떻게 멈춰야될지 몰라서 찾아준 지인분들께 인사 드리면서 안부 주고받고, 웃고, 그랬어요.

엄마의 새 배우자는 아빠친척들에게 비밀이었기에 새벽에 잠깐 왔다가시게 하고..

엄마를 연애감정으로 좋아하던 동성친구분은 저를 부여잡고 저 영정사진이 내가 찍어준거다, 하고 우시고.. (저만 아는 엄마의 비밀)

다른 친구분들은 당신들끼리 반주하시다 싸워서 경찰차까지 오고..

남동생은 본인 친구들과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취기가 올라서 큰소리로 떠들고, 엄마 친구분들과 얼굴 붉히고..

저라도 웃고 정신 차리고 있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죠.

엄마는 절대로 아빠한테 장례식을 맡기지 말라고, 본인의 인생을 망친 주범이고 나를 병들게한 장본인인데 절대로 가는 길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저는 차마 그러지를 못했어요. 새아빠랑은 사이가 정말 안 좋았고, 장례식 비용은 아빠와 친척들이 해결해줬지

새아빠는 전혀 금전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거든요..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장례식 걱정을 했어요. 친척들이랑 아빠가 오면 안된다구요.

제가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하니까 화를 내셨죠.. 넌 그렇게 혼자 이겨낼 자신이 없냐고, 아빠한테 의지할 생각하지 말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알겠다고 했어요. 꼭 그렇게 한다고 굳게 약속 드렸어요.

그리고 간성혼수로 점점 의식이 사라지던 엄마는, 중간중간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아빠를 속여서, 이 호스피스에 있다는 걸 비밀로 해야 되니까, 얼른 작전을 짜자고..

쉿.. 아빠 온다, 얼른 숨어.. 하고 연극배우처럼 제 앞에서 연기를 했어요. 저는 그걸 맞춰주다가 엄마가 의식을 잃으면 혼자 울었어요.

엄마가 암진단을 받은 즉시 회사를 관두고 계속 곁에서 간병을 했지만

하도 곱게 키워주셔서 요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사실상 그건 간병이 아니라.. 뭐랄까, 제가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돼있어서 붙어 지낸 거예요.

대신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병원을 같이 다니고, 그냥 엄마랑 같이.. 그렇게 지냈어요.

사실 그러기 전에도 저는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한테도 저밖에 없었으니까..

월급을 받으면 고대로 엄마 통장에 이체해주고, 엄마가 부르면 항상 거기 있는.. 그런 존재요.

저는 콧대가 높아서(ㅋ) 남자친구도 잘 없었고, 학교도 엄마사정에 따라 자퇴,이사를 반복하며 언제나 엄마 일을 도왔어요.

그러다 모든 게 다 잘 안돼서.. 따로 사회에 나와 회사라는 걸 다닌지도 얼마 되지 않았었죠.

하여간 그랬어요. 제 인생은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저희 남매는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할 수 있었어요.

엄마가 없으면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는 아직도 잘 살아 있어요.

놀랍도록 멀쩡하게, 회사도 잘 다니고.. 제가 엄마 간병하는 동안 제 곁을 지켜준 남자친구와 결혼도 준비하고 있고..

엄마가 남겨준 보험금으로 세상에, 제 통장에 처음으로 백만원 단위가 넘는 돈을 다 만져보고 있죠.


하지만.. 자꾸만 더 화가 나요. 상실에 대한 슬픔..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요.

저는 너무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엄마가 그렇게 빌었는데 아빠를 장례식에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마지막 호스피스에서 열흘 정도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1~2시간 간신히 눈붙이며 몸을 닦아주고,

칼륨수치 때문에 하루에 두세번씩 관장을 해주고, 계속 손을 잡고 옆에 있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던 바로 그날, 저녁 7시부터인가 호스피스 안에서도 정말 임종이 임박한 환자만 들어가는 햇살방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새벽 4시까지 엄마는 힘겨운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때..

한번이라도 의식이 돌아올까 해서 쉼없이 손잡고 말을 걸고, 동생과 아빠가 다 자리를 비우고 새우잠을 청해도..

전 끝까지 엄마랑 한번만 더, 한 마디만 더 나누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정말, 사람이 한계에 다다르면 잠이 너무 쏟아지니까..

간호사들은 오고가지도 않고.. 정말.. 미칠 거 같더라구요.

왜 이렇게 일찍 이 방에 보낸거지? 아직 우리 엄마 죽지 않을 거 같은데, 나 정말 10분만 눈 좀 붙이고 싶은데..

도대체 엄마가 오늘 돌아가시긴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해버렸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엄마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차갑게.. 퍼렇게.. 그렇게 떠나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소중한 마지막 시간에 대체 왜.. 그전까지 정말 단 한순간도 엄마를 걱정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데, 너무나 두렵고 간절했는데..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노래를 틀어주고, 계속 귓가에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그 말을 7시부터 4시까지 끊임없이 속삭였는데..

마지막 그 순간, 다들 자고 있을 때.. 전 원래 잠이 없기도 하고, 엄마를 두고 잘 사람도 아니란 걸 알아서

가족 모두 그냥 당연히 저한테 엄마를 맡기고 자고 있을 때.. 차라리 나도 조금 잔다고 말이나 해볼걸,

왜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버렸을까요. 그 순간 동생도 놀라서 달려와 양쪽에서 엄마 손 붙들고 우리 품에서 엄만 잘 가셨지만..

저는 알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요.

엄마가 들은 건 아닐까.. 그래서 그토록 힘겹게 붙잡고 있던 호흡을.. 어떻게든 우릴 더 보려고 버텼던 약한 생명을, 그 순간에 놔버리신 거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귀신으로도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엄만 정말 알아주는 자식바보 였고, 병적으로 저희한테 집착하는 분이었거든요.

저 역시 병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하는 트라우마 덩어리였고..

아빠의 놀음과 바람 때문에 이혼한 후, 엄마에겐 우리가 전부였어요. 새아빠가 있긴 하지만 그건 돈 때문이었고,

엄만 항상 우릴 위해 모든 걸 바쳤어요. 제발 엄마 인생을 살라고 해도, 이게 엄마 행복이라고..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와 우릴 키웠어요.

전 엄마가 우리 때문에 남자를 만나는 게 너무 싫었고.. 사실 그래서 오래도록 남자친구가 없었어요.

남자는 여자를 성적으로만 바라보고, 돈이나 쓰면 되는 줄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남자친구 아니었음 평생 그랬을 거예요.

엄마는 버림 받은 자식이었어서, 그 상처를 우리에게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거죠.

본인은 끝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을 건사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동생은 엄마 때문에 여자를 못 믿는다는둥.. 남자를 잘 꼬신다는둥.. 농담으로라도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줬어요.

전 그게 너무 싫었고, 제가 버는 돈은 엄마 수중으로 들어가 결국 남동생이 저지른 과소비와 사고 뒤치다꺼리에 쓰이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상관 없었어요. 엄마가 단돈 만원이라도 다른 남자한테 덜 웃고, 덜 비참해도 된다면요.

하지만 엄마가 없는 지금.. 동생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물론 동생은 저지른 과오가 있으니까 저보다 더 죄책감을 느끼고, 삶에 의욕이 없는 듯 보여요.

그게 너무 걱정이고.. 전 엄마도 없는데 남동생과 떨어져 지내면 정말 무너져버릴 것 같아 같이 살자고 매달렸습니다.

처음엔 제가 남자친구와 동거중이니까 낑겨 살고 싶지 않다고,

더구나 누나가 있으면 더 정신 못 차리고 독립심 잃을 거 같다고 거절했었는데.. 사정상 결국 같이 살게 됐어요.

지금 집행유예 중이라 사회봉사도 다니고 해야 해서 생활비는 제가 전담하고 있는데, 그것도 참.. 버거워져요.

엄마의 보험을 절반으로 나눠가졌는데 동생은 이미 다 써서 수중에 돈이 없거든요.

알고 보니 사회봉사도 나가지 않아서 보호감찰관이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도 있다며, 본인이랑 연락이 안 되니까

등본상 동거인인 저와, 제 남자친구에게까지 전화를 하더라구요. 매일매일 어디를 나갔던 걸까요..

친구랑 동업을 한다고, 당분간 사회봉사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 투자금을 빌려달라고 해서 줬는데.. 그것도 거짓말이겠죠.

알아요. 처음부터 알았지만, 안 줄 수가 없어서 도와줬어요.

이번달에도 카드값을 내달라고 하는데.. 글쎄, 거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거 때문에 남자친구랑도 좀 삐그덕거렸어요. 남자친구는 모든 걸 다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인데

다른 건 다 참아도.. 제가 정말 무식할 정도로 알뜰해서 점심도 굶어가며 돈을 모으거든요. 하루 세끼는 사치니까!ㅎㅎ

저한테 필요한 모든 부분을 절약해요. 데이트비용, 의복비용, 식대, 생활용품까지.. 무조건 싼거. 아낄 수 있는 건 다 아껴요.

근 1년 넘게 엄마랑만 지내서 지인도 많이 없어졌고.. 옷도 필요없고.. 남자친구도 월급이 저보다 적으니까 일단 무조건 아껴요.

왜냐하면 남자친구는 만성b형간염이라 만약을 위해 돈을 많이 모아놔야 나중에 아파도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으니까,

빨리 돈 모아서 집 사고 저축해서 노후 준비 하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언젠가 다 내려놔야할 때, 남자친구랑 원없이 놀다가 죽고 싶어요.

쌈마이웨이 설희 보면서 저 같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제가 딱 그래요. 남친한테만 돈을 쓰거든요.

근데 남친은 가뜩이나 그것도 미안한데, 그렇게 미친듯이 아껴서 아낀 돈을 남동생한테 홀랑 줘버리니까..

그럴수록 저는 남동생 때문에 빵꾸난 주머니 메우려고 더 필사적으로 아끼니까.. 그게 보기 싫은 거죠. 이해해요.

근데 괜히 센척 한다고 내 돈으로 준 거야! 니가 벌어다준 돈은 전부 모아놨고, 내 돈에서만 주는 거니까 상관마! 해버려요.

그럼 또 남친은 그런 뜻이 아니야 미안해.. 하고 둘이 부둥켜안고 더 열심히 살자! 아프지 말고..~하며 으쌰으쌰 하는데.

그래도 전 알아요. 제가 동생에게 쓰는 돈을 저 스스로도 아까워하고, 억울해 한다는 거.

엄마는 살아생전, 동생과 따로 살라고 했었죠.

저는 반드시 같이 살거다, 동생 없이 못 산다, 그리고 나는 보험금 필요없으니까 그걸로 동생 가게를 차려주자 했었는데, 엄마가 반대하더라구요.

이도저도 안된다고.. 아니, 동생은 배운 것도 없고 성실하지도 못해서 가게라도 차려줘야 사는 게 맞거든요?

저는 남자친구랑 둘이서 진짜 평범하게 일한 만큼만 쓰고 일한 만큼만 모아서 잘 살 수 있는 순둥이들이라.. 진짜 괜찮은데,

엄마는 둘이 반씩 정확하게 나눠가지고 따로따로 살라고 했어요.

저는 그 약속도 어긴 셈이죠.. 정말 청개구리 같은 딸년이에요.. 원래 엄마는 사고치는 동생보다 옆에 붙어서 스트레스 주는 저를 더 못마땅해했어요.

동생이랑 엄마는 씀씀이가 통이 커서, 저 혼자 안달복달 절약하고 걱정하는 걸 싫어했거든요.

물론 저도 두 사람의 그 허세(?)와 저에 대한 평가절하(?)에 늘 예민하게 굴고, 비난을 주고받고.. 그랬어요.

엄마는 저한테 인정받고 싶어했는데, 저는 엄마를 사랑만 한다고 하고.. 인정은 안 했던 거 같아요.

난 두 사람과 다르다.. 내 식대로 살 거다. 하지만 너무 사랑하니까, 내가 사랑하는 마음만은 알아줘라. 이런 마인드..

하지만 두 사람은 다 필요없고, 진짜 사랑하면 토달지 말고 따라와달라.. 는 거였죠.

근데 전 따라갈 수 없었어요. 저는 제 도덕적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을 죽어도 못 하는 정신적 결벽증을 갖고 있어서..

항상 위로보다 옳은말, 맞는말에 집착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에 천착하는 성격이라서;;

돌이켜보니.. 엄마가 참 외로웠겠어요. 딸은 딸대로 잘났다고 떠들고, 아들은 아들대로 밑빠진 독처럼 사고치고 돌아다니고..


그래서 싫었나봐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나봐요.

저는 사실 우리엄마 기쎄고, 특이(?)할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거든요.

진짜 우리 엄마는 알아주는 미인이고, 신기도 있고, 진짜 뭐 막 그랬거든요.

귀신이라도 돼서.. 어떻게든 나 쫓아다닐 줄 알았어요.

우리 엄마는.. 죽어도.. 죽는다고 해도.. 그래도 나를 잊지 못해서, 딸 옆에 찾아올 줄 알았어요.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영혼이라는 게 정말 있어서.. 엄만 내 옆에 있다는 걸,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사실 전 종교도 없고(앞으로도 믿을 생각 추호도 없고) 무속적인 것도 안 믿는 타입인데..

그래도 엄마는 하나님을 믿었고, 신을 믿으니까 귀신도 믿었고(ㅋ) 그런 짬뽕적인.. 영적인 걸 따르진 않아도 내심 있겠거니 하는, 그런 사람이니까..

저도 혹시나.. 했나봐요. 근데요. 없어요.. 죽으면 끝이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엄마 없어도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가구요. 엄마 친구들도, 가족들도, 하물며 자식인 우리도.. 다 그냥, 잘 살아요.

내가 죽어도 그럴 거예요. 이 세상은, 당연히 멀쩡할 거예요.

나 죽으면 세상도 망하라고 내가 태어난 건 아닐 거니까. 이건희가 죽어도, 미국 대통령이 죽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죠. 원래가 그런 거죠.

너무 잘 알고, 이해하니까.. 그래서 더 허무해요.

하루하루 얼마나 더 소중하게, 행복하게, 누구 눈치 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겠는지를 알겠는 만큼.. 꼭 그만큼.. 못 살겠어요.

난 여기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면, 죽기 싫을 거 같아요. 죽기 싫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어야 될까봐 무서워요.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건데.


전 요즘 자꾸.. 어딘가 아파요. 잔병치레일 뿐이지만..

난포가 터져서 수술을 하고, 가슴 통증이 생기고, 턱근처 임파선염에 걸리고, 겨드랑이에 몽울이 잡히고..

근데도 다시 담배를 피워요. 엄마 돌아가시기 2년 부터 남자친구가 비흡여자기 때문에 아무 고민없이 바로 뚝 끊었는데, 이젠 다시 피워요.

피우면 아프고, 두려우면서도.. 2년 전처럼 뚝, 안 끊어져요.


남자친구랑 저는 사실, 너무 잘 맞고.. 사랑하고.. 그래요. 정말 좋아요.

이렇게 행복한 게 진짜.. 미안하고, 짜증나고, 죽기 싫을 정도로 나는 다 괜찮아요.

근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딱 한번만.. 다시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나는 내 인생을 다해 엄마만을 사랑했다고.. 잊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죽기 싫었을까봐.. 항상 괜찮은 척하고, 강한 척했던 우리엄마.. 사실은 죽기 싫었을까봐..

한번도 그런 말 못하고.. 아빠한테 들키지 않는다고 연기하고, 저한테 곱게 키워 간병도 제대로 못하는 애기라고.. 바보라고.. 그런 말만 했거든요.

그게 너무 슬프고 미안해요.. 엄마가 의식 있을 때 마지막으로 한 얘기가,

돈 빌린 친구한테 전화해서 "언니 나 이제 죽어. ㅇㅇ(제이름)한테 130만원 맡겨놨으니까 찾아가. 그동안 고마웠어." 라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나서 저한테 70만원을 주면서.. 이게 너한테 줄 수 있는 마지막 돈이라고..

죽기 전에 너 결혼시켜주고 싶어서 더 모아보려고 했는데 ㅇㅇ(동생이름)때문에 이거밖에 안 남았다고.. 너 다 가지라고..

근데 제가 "뭐야. 이런 거 안줘도 돼. 엄마 써." 그랬어요. "으유.. ㅇㅇ(동생이름)는 좋다고 쓸 텐데 내 딸은 저래." 하고 졸리다고 주무시곤..

그리곤 다시 의식을 못 차렸어요. 그때는 그게 마지막인지도 모르고.. 너무 후회돼요.

고맙다고 할껄. 엄마, 진짜 고마워.. 그럴껄.

나는 엄마가 돈 안줘도, 남자한테 돈 못 구해와도.. 그래도 엄마가 좋다는, 그런 뜻이었는데..

엄만 항상 돈 싫어하는 나를 걱정했어요. 자기가 곱게 키워서.. 돈 귀한 줄 모른다고.. 남자친구도 돈 없는 애 만난다고..

근데 남자친구 욕할 때마다 엄마랑 그렇게 싸웠어요. 나 진짜 사랑해주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특별한 줄 아는 애라고, 난 그거면 된다고..

엄마는 저한테, 너 잘난 거 인정해주는 애 만나서 좋겠다고 엄마는 니 엄마라서 너 고생할 게 더 눈에 훤하다고..

무슨 뜻인지 이젠 좀 알겠어요.

혼자 모든 공과금이니 생활비 충당하면서 살아보니까 그래요. 좀 막막할 때도 있어요.

딩크족으로 살 거라 아무 걱정 없는 거지.. 둘이 살기엔 딱 좋게 버는데, 그 이상 유흥을 즐길 순 없으니까..ㅎ

그래도 좋아요. 저한테 돈은 쓰는 맛이 아니라, 버는 맛으로 좋은 거라.. 땀흘려 돈 벌면 그렇게 뿌듯해요.

남친도 낭비벽 없고 제 경제관을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너무 좋다고, 자기랑 딱 맞다고 해주니까요.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남동생한테 돈 빌려주지 마라, 딱 자르고 너희 둘 인생 살아라.

그래서 나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된다, 못 하겠다. 걔가 죽어버릴까봐 걱정된다. 하니까

남자친구한테 저를 버리라고 하더라구욬ㅋㅋ 얘 못 고쳐쓰니까, 너라도 살려면 얘 버리고 가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왜! 얘는 손해 보는 게 없어! 내 돈으로 주는 건데! 라고 하니까 친구가 ㅉㅉ.. 하더라구요.

그래서 또 제가 그랬죠. 하긴.. 동생한테 안 쓰면 남친한테 쓸 돈이었는데.. 얘꺼나 다름없어.. 남친이 손해지.. 했더니

친구가, "그게 왜 남친한테 쓸 돈이야? 니 돈이지. 너한테 써." 라고 하는 거예요.

남친도 옆에서 맞다고.. 자기 치과부터 다니라고.. (제가 20살 때부터 이가 4개나 빠져서 없는데, 엄마가 이거까지 알면 너무 슬퍼하고

돈이 많이 들까봐 비밀로 하고 지금까지도 치과를 못 다니고 있거든요.. 돈 생기면 치과부터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리;

아마 나중에 다 뽑고 틀니하고 다니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근데 되게.. 그 말이 너무 놀라웠어요.

????? 내 돈이라니?????? 아.. 그래.. 내 돈이지.. 나한테 쓸 돈..

하지만 저는 저한테 쓰는 것보다 남친이나 동생한테 쓰는 게 저한테 행복감을 준다고 생각해서..

이게 바로 엄마한테 배운 나쁜 행복인 거 같아요. 행복인 척 하는.. 비겁하고.. 나쁜.. 만족감. 사실은 열등감.

오늘 죽어도 하나도 안 억울하고, 평정심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내 몫으로 뭘 쌓아놓는다는 게.. 아깝게 느껴져요 자꾸.

아냐, 이것도 다 거짓말 같아요.


엄마를 버거워했던 거, 지금도 남동생을 버거워하는 거..

사실은 누가 시킨 적도 없는 희생인데.. 혼자 죽어라고 기를 쓰면서.. 그러면서 원망하는 거. 그걸 알겠어요.

그게 정말.. 역겨워요. 나란 사람이.. 좀 그래요. 진짜 좀.. 별로예요.

엄마가 없어진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늘, 난 이렇게 문제였던 거 같아요.

어떻게든 또 살겠지만. 헿.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돈.. 그걸로 어떻게든 일어서 보고 싶어요.

엄마는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나 혼자 맘대로 죽을 순 없는 거 같아요. 벌도 안 받고 맘대로 편해지면 안 되잖아요.

아니, 그냥 살고 싶으면서 엄마 탓을 하는 거 같아요. 그냥 사는 건데.. 살고 싶으니까, 살아지니까 사는 건데.. 이 핑계 저 핑계 갖다붙이면서..


매일매일 엄마가 꿈에 나와요.

몇 번이고 내 눈앞에서 다시 죽거나, 그냥 평소처럼 같이 생활하는 그런 똑같은 꿈인데..

저는 꿈속에서도 보통, 꿈인 줄을 알고 꾸거든요.

근데 알아요. 이게 꿈이고, 이건 내 환영이지, 엄마가 아니라는 거.. 엄마가 내 꿈에 찾아온 게 아니라, 내가 엄마 생각을 하는 거라는 거..

꿈에라도 엄마가 찾아와서 나한테 뭐라도 한 마디 해줄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안 생기더라구요.

엄마가 하늘에서 절 지켜보신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그런 걸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산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관념 속에 반쯤 눈감고 살아갈 만큼 순진하지 않은 제 사상도 극혐이에요 정말.


뭔소릴 이렇게나 길게 씨부려놨는지. 끝까지 보신 분도 없겠지만 쓰면서 실컷 울고 나니까 속은 좀 편하네요.

잘 지내세요. 미리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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