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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오늘을 기억하라, 지식e2-34....~(BGM,스압)
게시물ID : bestofbest_36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Guri
추천 : 153
조회수 : 6807회
댓글수 : 5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0/05/18 21:00:38
원본글 작성시간 : 2010/05/18 10:20:29
. 5.18 민주화운동(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남 및 광주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운동.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등의 신군부가 최규하 과도 정부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면서 군부의 권력을 장악한 12·12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군사독재를 연장하려하자, 학생을 중심으로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해산하게 된다. 이에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하고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휴교령 등의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과 투석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보고 합세한 시민들과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되었다. 5월 19일 시위대가 5,000여명으로 불어나자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5월 20일 20만명의 시민이 군경 저지선을 뚫고 시청건물을 장악하였으며, 계엄군에 의해 모든 시외 전화가 두절되어 광주는 고립되었고, 밤 11시경 계엄군은 시민에게 발포를 하기에 이르렀다. 5월 21일 계엄군의 발포로 수십여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였다. 5월 22일 시민들은 계엄군을 몰아내고 도청을 차지 '5.18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태 수습에 들어갔으나, 계엄군의 협상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고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70년대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들의 대미인식 변화와 함께 사회운동의 목표로 민족해방·사회주의 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기점이 되었다. 이 후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준거가 된 이 사건은 발발 당시에는 불순분자와 폭도들에 의한 난동으로 규정되었다가, 1988년 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되었고, 1988년 11월 사건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다. 1995년에 '5.18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1997년엔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당시 신군부세력이였던 전두환, 노태우는 95년 구속되었으나 97년 사면되었고 98년 복권되었다. 상황일지 (꽤 많은 장면이 '화려한 휴가'에 나왔던 것을 알 수 있다.) 5월 17일 (토요일, 맑음) ·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 24시 00분 :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및 학생 연행 5월 18일 (일요일, 맑음) · 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 10시 00분 :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 10시 15분 :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 10시 20분 :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 15시 40분 : 유동 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진압작전 감행 ·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 3시 00분 : 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 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 10시 00분 :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 14시 40분 :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 15시 00분 :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 16시 30분 :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의해 부상 · 20시 00분 : 수만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 외침.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 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 10시 20분 : 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 18시 40분 :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 20시 10분 :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 21시 05분 : 노동청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 21시 50분 : 광주MBC건물 방화 · 23시 00분 :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 사망 <계엄군의 발포와 무장봉기> 5월 21일 (수요일, 맑음) · 0시 35분 :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 2시 18분 : 시외전화 두절 · 4시 00분 :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에 등장 · 4시 30분 : 광주KBS건물 방화 · 8시 00분 : 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 10시 15분 : 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 맨 앞으로 교체 · 10시 19분 : 광주세무서건물 전소 · 11시 10분 : 대형헬기, 도청광장에 도착 · 12시 59분 :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 13시 00분 :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 사격 시작 · 13시 20분 :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 14시 15분 : 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 14시 35분 :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 14시 40분 : 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 15시 48분 :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 16시 00분 :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 16시 43분 :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 17시 30분 :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해방 광주> 5월 22일 (목요일, 맑음) · 9시 00분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 10시 30분 :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 11시 25분 :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 12시 00분 :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 13시 30분 :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 15시 58분 :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 17시 18분 :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 17시 40분 :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 21시 30분 : 박충훈 신임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 8시 00분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 10시 00분 :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 10시 15분 :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 11시 45분 :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 13시 00분 :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 15시 00분 :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 · 19시 40분 :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14시 20분 :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14시 50분 :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비) · 11시 00분 :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 15시 00분 :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 00분 :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 21시 10분 :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등 논의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 5시 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 8시 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 10시 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4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 15시 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 17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 19시 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 조치 시킴. · 24시 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최후의 항쟁> 5월 27일 (화요일, 맑음) `````````````````````````````````````````````````````````````````````````````````````````` · 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 · 4시 00분 :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 4시 10분 :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 5시 10분 :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 6시 00분 :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 7시 00분 :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 8시 50분 : 시내전화 통화 재개 . 자신은 탱크를 이끌고 서울로 쳐들어간 주제에 이 부당함에 맞선 시민들에게 다시한번 탱크를 앞세우고 그들이 몇 안되는 무기를 들자 총든사람이 우산들고 덤비는 상대에게 "너 위험해 ㅅㅂ 그거 내려놔" 하는 꼴로 진압한 주제에 뭐가 무서워서 그들은 아직도 이들을 폭도라 몰아가고 있는 것 일까요? 영화 中 V의 연설 입니다 저들이 바라는건 굉장히 단순한 것 입니다 <돈과 권력> "어 내가 권력좀 잡아보겠다는데 네놈(들)이 까불어? ㄲㅈ" 이것입니다 일제시대때 친일파가 그랬고 해방이후 이승만이 그랬고 5.16 박정희가 그랬으며 12.12 전두환이 그랬고 지금 이 정부가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들은 두려워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있습니다 세상에 겨우 몇명이 청와대도 못내려오고 다 죽곤 했는데 2개 사단이 광주까지 내려가다니요 이건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믿습니다 http://todayhumor.co.kr/board/search_view.php?table=humorbest&no=272475&page=1&keyfield=subject&keyword=괴벨스&search_table_name=& (괴벨스의 입) http://ko.wikipedia.org/wiki/%EC%84%9C%EC%9A%B8%EC%97%AD_%ED%9A%8C%EA%B5%B0 서울에서는 서울역회군이 일어나고 있을때 (경우가 다른 일이긴 합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심재철(한나라당의원)한 사람에 선동에 시민들이 속았으니까요) 광주에서는 사람들이 불의를 참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이룬 민주화를 이 정부가 다시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바라는건 무관심 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는것 입니다. 그래야 계속 속여먹을 수 있으니까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마지막부분에서 여주인공은 외칩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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