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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털이 좋았다.
게시물ID : bestofbest_3675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웅웅우웅
추천 : 133
조회수 : 30596회
댓글수 : 29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10/11 14:02:15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0/10 0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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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나는 네 털이 좋았다.
몸을 겹칠 때면 너는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많이 했고
그때마다 나는 온전히 너를
느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종아리는
마치 잔디를 쓰담는 듯 했고,
키스를 할 때면 섬세한 붓질
같은 너의 코밑과 턱이 좋았다.

 끝끝내 너는 겨드랑이를
허릭하진 않았지만
네가 나에게 부끄러워 하는 모든 것이
내겐 사랑이고 헤어진 뒤 
흘린 눈물의 이유였다.

 잘 꾸민 너도 좋지만
좀 더 자연스러운 네 모습을 사랑했고
일부러 부리는 애교도 좋았지만
무심히 창 밖을 보는 네 표정에
가슴이 떨려왔다.

 그 모든 추억과 증거들은
이제는 긴 시간에 무르익었는데,
그렇게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와버렸다.
같이 지은 이 논에 서로의 눈물을
먹고 자란 벼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각자의 몫을 양보없이 가져 가자
어쩌면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걸까
사랑앞에 소작농인 두 사람은
그 앞에 충실했던 만큼의 소작료를 지불한다.

 작별 인사나 안부를 물을 필요는 없다.
너와 함께한 나날들이 눈부신 작별이고
남은 생을 묻는 안부 였다.
이제야 남겨진 벼를 모두어 
나락을 사방팔방 날리며
타작을 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너를 생각한다.
밥 한 그릇 눈물에 말아 먹는다.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네 미소 속에 
한 술 뜨며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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