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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기고 바보같은 고슴도치 쪼그리
게시물ID : bestofbest_3680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람드리움
추천 : 332
조회수 : 14041회
댓글수 : 4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10/14 10:47:47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0/13 22: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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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약 1년 6개월 전, 저희집 도치를 소개하면서 새로 태어난 녀석들 사진을 오유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꼬물이들 중 가장 못나고 바보같은 한 녀석을 소개하려고 글을 씁니다.

제게 가장 찬란한 빛이 되어주었던 아이 쪼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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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리는 오그리, 뽀그리, 쪼그리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세 녀석 중 누가 가장 막내인지는 모르겠지만 체형도 작고 얌전해서 막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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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이 오그리, 제일 오른쪽이 뽀그리 그리고 가운데가 쪼그리입니다.
같은 날 태어난 녀석들인데 이렇게 크기 차이가 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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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생후 40일이 넘어가면서 어미에게서 독립하고 오그리와 뽀그리는 다른 집으로 떠났습니다.
쪼그리도 떠나보내려 할까 하다가 워낙에 귀엽기도 하고 크기가 왜소해서 여자친구가 도맡아 키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시면, 쪼그리의 얼굴이 비대칭인 걸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처음엔 그저 귀여웠어요.
작고 이쁘고 얼굴까지 찌그러진게 매력포인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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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수컷입니다.
그런데 수컷도치 특유의 날쌤과 활동량이 부족하더라구요.
매일 사진처럼 누워있기만 하고 잘 걷지를 않았습니다.








3개월이 조금 넘은 무렵, 쪼그리의 도치답지 않은 행동이 이상해서 꺼내서 살펴봤습니다. 
이때서야 쪼그리에게 마비증상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오른쪽 뒷발을 거의 걷지 못하고, 잘 보시면 왼쪽 앞발도 발등으로 땅을 디디기도 합니다.


고슴도치에게는 WHS라는 불치병이 있는데, 그 증상이 위와 비슷합니다.
저런식으로 마비가 오는거죠.
그런데 생후 3개월 어린도치에게 저런 증상이 있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저때,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쪼그리는 현대 수의학으로 절대 못 고치는 병이라는 걸요...


나중에 알았지만, 증상은 일종의 척수염 또는 뇌염이라고 합니다.
WHS와 비슷하나 멀쩡한 도치가 갑자기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저렇다는게 그 차이점입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뇌성마비, 지체장애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여튼 재활치료차원에서 걷기 연습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여주면서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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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리는 점점 걷는 걸 힘들어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거나 하면 쪼그리가 저렇게 밥통에 엎어져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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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약 이틀 정도 집을 비워야했던 적이 있었는데, 밥과 물을 넉넉히 넣어주고 다녀왔더니 아이가 저 몰골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듯이 숨이 얕고 몸은 끈적했으며 몸 여기저기가 곪아있었습니다.


아이가 물을 마시다가 물통에 미끄러졌는데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해 똥도 싸고, 오줌도 싸면서 온몸에 똥독이 올라버린 겁니다. 거기다 며칠을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으니 체온도 떨어지고... 저때 여자친구가 엄청 울었습니다. 저도 쪼그리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정말 당황했었습니다.








병원에 급히 데려갔습니다.
다행히 집 근처에 고슴도치를 봐주는 병원이 있었거든요.


수의사 선생님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보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소독도 해주시고 케어해주는 법도 알려주셨습니다. 한동안 몸에서 똥독이 빠지지 않아 냄새도 심하고 몸도 덜덜 떨어댔습니다.


수의사 쌤이 그러더라구요.
혹시라도 숨이 끊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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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정말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습니다.
24시간 옆에 붙어서 계속해서 두어시간에 한번씩 소독해주고, 밥도 먹여주면서 보살폈습니다.


이 사진은 그 일이 있고나서 약 1주 뒤의 사진입니다.
많이 회복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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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히도 쪼그리도 삶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아파하면 안락사 시킬까 생각도 했지만 얘도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밥 주면 다 받아먹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정말 못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진은 사고 발생 이후 2~3주 뒤의 모습입니다.


쪼그리는 저보다도 더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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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은 흘러...
쪼그리의 상처는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예전의 마비증세는 더 심해지고 말았어요.


눈은 녹내장이 왔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건 슬퍼서 그런 게 아니라 안약을 넣어서 그런거예요 ㅎㅎ
완치는 불가능하고 증상의 경과만 좀 더디게 하는 효과밖에 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시야를 잃지 않았으면 해서 꾸준히 잘 넣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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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더 얻은 증세...
이때부터 쪼그리는 사실상 제 힘으로 서있지 못했습니다.
몸을 무조건 어딘가에 기대야만이 일어날 수 있었어요.


밥을 먹이려면 항상 저런 형태로 세워줘야만 했죠.
매일 퇴근하고 나서 저 녀석을 먹이는 게 일이었습니다.
쪼그리 이 놈 덕분에 술도 못 먹고 칼같이 퇴근해서 매일 밥을 먹여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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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먹다가도 한 눈 팔면 금방 저렇게 풀썩 드러누워버립니다.
서있다가도 제풀에 지쳐 쓰러지더라구요.


점점 혀가 마비가 되는지 음식을 입으로 잘 가져가지 못해서 위에 사진처럼 그릇을 기울여주기도 했고
또 날이 갈수록 입도 벌리지 못해서 저 사료마저 물에 불려서 반으로 쪼개서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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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g 넘은 사진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네요... 어디갔는지...
쪼그리의 평균 몸무게는 200을 넘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200g을 넘기고 나서는 금새 또 190대로 추락하더라구요.


원래 다 자란 고슴도치의 평균 몸무게는 500g 입니다.
정상도치의 반도 안되는 몸무게였던 겁니다.


그래도 이때는 나름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던 무렵입니다.
매일매일 몸무게 재면서 살 찌우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참으로 안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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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다 자란 쪼그리의 이쁜 모습입니다.


보이시죠? 저 안면 비대칭.
등도 굽어서 등뼈가 툭 튀어나와있고 몸이 왼쪽으로 휘어서 저렇게 손에 올라와서도 버티는 걸 힘들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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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를 못하니까 작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누워있다보니 똥오줌을 제대로 못가려서 온 몸에 항상 찌린내가 가득했습니다. 
씻겨줘도 다음날이면 사진처럼 더러웠어요. 


점점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무엇보다 밥을 삼키지를 못하더라구요.
약간 제 직감상, 오래살지 못할거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며칠 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쪼그리는 시한부를 선고받았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씹지 못할 것고, 나중에는 삼키지도 못할 것이다. 그 전까지 사료는 손으로 입에 넣어줘야 하고, 잘 삼킬 수 있도록 찐득한 환으로 밥을 만들어서 먹여야 하며, 그마저도 잘못 먹이면 폐렴증상이 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수의사 쌤은 쪼그리가 참으로 대견하다며, 남아있는 사람이 후회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때문에 울어봤습니다. 
거의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울어봤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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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데려온 뒤,
화창한 날을 골라서 밖에 데리고 나갔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 워낙에 몸도 아프고 해서 밖에 데리고 나간 적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바깥에 공기는 한 번 쐬여줘야할 거 같아서, 날이 좋은 날을 골라 산책을 시켜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만져보면서 귀엽다고 해줘서, 그날만큼은 쪼그리가 동네 최고의 유명인사였습니다.






쪼그리 버킷리스트 (13).jpg

어때요?
우리 쪼그리?


한껏 웃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이 사진은 훗날 쪼그리 영정사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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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를 다녀온 다음날...
쪼그리의 증세는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겉으로 보기는 멀쩡해보이지만 이미 식사를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길래 꿀물을 먹여보았지만 그마저도 잘 못 먹더라구요.


이 사진은 쪼그리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하루 전날...
그러니까 마지막 밤에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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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쪼그리
참으로 잘 버텨주었습니다.


이 날은 회사를 빼고 하루종일 함께했습니다.
쪼그리는 이미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숨은 예전에 똥독 올라서 죽을뻔했던 그때마냥 얕았고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습니다.
저와 여자친구는 쪼그리를 위해서 사랑한다고 수백번 속삭여주고,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줬습니다.


근데도 부족하더라구요.
지금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고 한 번만 더 말하고 싶다고...







20170322_211219.jpg


2016.05.12. ~ 2017.03.21. (약 10개월)


쪼그리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 쪼그마한 쪼그리가 하루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갔습니다.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행복을 선물하고는 그렇게 훌쩍 떠났습니다.


정말 지금도 생각하는 거지만... 한 번만 더 손에 올려두고 싶어요.
그리고 한 번만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 녀석이 떠나고 나니까 더 이상 회사에서 일찍 돌아올 필요도 없고
매일 2~3시간씩 밥 먹인다고 고생할 필요도 없고
매일 몸을 씻겨줄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참 홀가분한 몸이 되었는데 기쁘기는 커녕 한동안 매일매일 울었습니다.
매일매일...


쪼그리는 화장하여 화분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 식물은 스투키라는 식물인데... 저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 같지 않나요?
한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길래 매월 21일 쪼그리가 하늘로 간 그날마다 물을 주고 있습니다.







KakaoTalk_20171013_222952634.png

쪼그리가 떠난 이후로 제 카톡 프로필 배경은 한 차례도 바뀐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바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사실 여기다가 사진을 올린 적도 없고 소개해드린 적도 없지만,
오랜만에 쪼그리 생각도 나고 해서 오유분들에게 늦게나마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는 
그냥 오유인이 키우는 고슴도치 중에 굉장히 못생기고 못나고 바보같은 도치가 하나 있다더라...
그 도치 이름이 쪼그리라더라...
라고 한 번만 생각해주시고 지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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