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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3804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라라J(가입:2016-01-31 방문:995)
추천 : 217
조회수 : 24653회
댓글수 : 17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7/12/12 13:32:13
원본글 작성시간 : 2017/12/12 09: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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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다.

아니 있었다고 한다.


내 누나는 사람은 아니었다.

개였다.

종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외래종과 백구가 섞인 잡종 대형견 암컷이었다. 


연년생인 나와 형이 어렸을 적 정도가 아니라 두살, 세살배기 아기였을 때, 

울 아버지 회사 지인 분이 개를 키울 수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어 곤란해하는 걸 보다 못해 집에 데려왔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직 걸음마 뗀 지 얼마 되지도 못하는 아기가 있는, 

그것도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저런 대형견을 어떻게 키우냐고 엄청 화를 내셨고, 

아버지는 계속 사과하며 개를 맡아줄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개를 맡고 일주일 만에 어머니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얘는 백만금을 줘도 남한테 못 준다고.

그 이유인 즉슨, 얘가 너무 똑똑한데다 애기를 너무 잘 보는 개였던 것이다. 


하루 만에 변을 가리고 절대 함부로 짖지도 않았다. 

우리 형제가 꼬집고 때려도 절대 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고 

우리가 기저귀에 싸면 냄새를 맡고 울 어머니를 부르러 갔으며 

특히 부모님이 아닌 다른 어른이 우리를 안으려고 하면 짓지도 않던 애가 으르렁거리면서 막아섰고, 

오로지 우리 부모님을 통해 건네받는 걸 봐야 얌전히 있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그 개가 애를 너무 잘 본다고 이름을 '누나'라고 지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났다.


유치원에 들어가게 된 형은 유치원에 다니며 친구랑 노는 맛을 알게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어머니는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 앞 놀이터에서 누나와 함께 지냈다.

누나는 내가 놀이터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면 내 소매를 물고 질질 끌어 나를 놀이터에서 못 벗어나게 했고, 

밥 때가 되면 귀신같이 나를 엄마 앞으로 대령해 놓았다. 

낯선 사람이 내 옆으로 오면 으르렁대는 것은 기본이고 잠자리마저 자기 개집이 아닌 내 이부자리 옆에서 꼭 붙어서 잤다.

그 때가 되어서 누나는 이름만 누나가 아니라 나에게 진짜 누나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친척들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좁디 좁은 차 안에 친척들이 전부 타고 가는 2박 3일의 여행. 당연히 개를 태울 자리는 없었다.

다행히 아는 동네 아주머니께서 잠시 누나를 돌봐준다고 하셨고, 

누나와 떨어져서 울며 발악하는 나에게 두 밤만 자면 볼 수 있으니까 울지 말라고 겨우 달래고, 

우리 가족은 통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누나가 없었다. 


마당에 묶어놓았는데 개장수, 아니 개도둑이 몰래 훔쳐간 거 같다고 아주머니는 미안해하셨다.

두 밤만 자면 만날 줄 알았던 누나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 때 네살배기 아이가 상실이라는 경험을 접할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셨다고 하더라.


이틀 동안 밥도 물도 다 집어던지고 누나의 개집 앞에서 하루 종일, 아니 날이 새도록 울었다고 한다.

달래보고 얼러보고 혼을 내봐도 내 입에서는 오로지 '누나'라는 말과 서러운 울음밖에 안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나 때문에 부모님도 뜬 눈으로 밤을 새셨고, 나는 다음날 점심 때가 되어서야 울다 지쳐 퀭한 눈으로 지쳐서 잠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여름에 갑자기 내 몸이 불덩이마냥 펄펄 끓었다. 

해열제를 먹여도 소용없었고 결국 경기까지 일으켰다.

혹시나 내가 잘못될까 하는 생각에 어머니는 눈물바다가 된 얼굴로 나를 들쳐 매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셨고, 

담당 의사는 얼음주머니 속에 내 몸을 파묻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열이 내려가지 않는 내 몸을 보며 의사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물으셨고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얘기하셨다. 

그 말을 다 들은 의사의 딱 두 마디.


 "XX야 누나 찾았대. 지금 집에 있대"


이 두마디 말로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열이 거짓말같이 내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나는 병원에 이틀간 입원하며 각종 검사를 받았고, 

아마 그 사이 아버지는 누나를, 아니면 누나와 닮은 개라도 찾으려고 휴가를 내고 발이 빠지게 돌아다니셨으리라.

짧은 입원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집에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 이전까지 내용은 부모님께 들은 내용이지만 이 부분 만큼은 내 뇌리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픈 기억이다.

2년 동안 계속 함께했기에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누나가

아니었다.



결국 누나는 찾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날 누나를 닮은 듯 하면서도 결코 닮지 않은 그 낯선 개를 끌어안고 한 시간이 넘도록 끅끅대며 울었다.

다음날, 당연하게도 나는 누나가 아닌 그 개를 철저하게 외면했고, 

누나가 아니었던 그 개 또한 당연하게도 내가 아닌 자기 밥 챙겨주는 우리 엄마만 찾아다녔다.

결국 아버지는 그 개를 또다시 어디론가 보내버리셨고, 엄마는 조금 이르지만 나를 형과 함께 유치원에 보내셨다. 


내가 누나 사진만 보면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또르르 눈물만 흘리는 바람에 누나가 찍힌 사진은 다 없애버리셨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사진기만 갖다대면 울어재끼는 귀찮은 꼬맹이였던 탓에 사진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이후 나는 누나를 찾지도 않았고 딱히 울지도 않았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다만 초등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놈이 자기 애완견과 너무 잘 노는 모습을 보고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던 것이 기억난다.


가끔 웃대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 반려견 관련한 글이 올라오면

오랜 세월이 지나 언젠가 내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날

누나가 다시금 내 옆에 붙어서 나를 지켜봐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모든 개와 그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누나 훔쳐간 개도둑놈아 20년이 훌쩍 지났어도 넌 아직도 도저히 용서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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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대 ... 아윽나온다나와

http://huv.kr/pds67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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