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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얼어터지고 내 복창도 터지고 그와중에 진상은 아닌데 손님썰
게시물ID : bestofbest_4362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현장노동자(가입:2015-07-11 방문:1601)
추천 : 97
조회수 : 29437회
댓글수 : 4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21/01/13 09:47:58
원본글 작성시간 : 2021/01/11 08:27:20

 

 

 

 

새벽 네시 반에 눈이 떠진건 다행이였다. 친칠라 새끼 표범보고 도망가는 마냥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려는데 아 물이안나와. 맞다 동파때문에 단수였지.

문득 이영도 작가님의 소설 중 한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아냐 너는 단수 맞아 ㅇㅇ 삼일째 물이 안나오니까.

 

 

사실 물이 안나온 첫날 좀 당황하긴 했다. 동파라느니 단수라느니 이런건

뉴스에서밖에 볼 수 없었던 이야기였는데 내 이야기가 되니까 빡친다기보다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ㅈ같음이 가슴속에서부터 차고 올라왔다.

 

 

 

집주인은 3층에 산다.

그리고 집주인은 나와 같은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정확히는 그의 아들이다. 물이 안나온 첫날 아침 여덟시 쾅쾅쾅 나는 집주인집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이 형은 화가나면 목소리를 중저음 톤으로 올리는데 평소에는 뱁새새끼마냥

앵앵거리다가 화만나면 꼭 중저음 톤으로 올린다. 처음엔 좀 쫄았는데 이젠 씨알도

안먹힌다.

 

 

"세입자올시다. 문좀 열어보슈."

 

 

"야. 아침부터 뭐야. 어머니도 주무시는데."

 

 

"어머님 포천가신거 다 알고 왔수다. 물이 안나오는데 어떻게 된거요?"

 

 

"아 그거?" 가오잡고 뭔가 이야기 하려던 집주인의 아들이자 같은가게 직원인 형은

근엄한 얼굴이였다가 순식간에 빵돌이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진정해라. 우리집도 안나온다."

 

 

"뭔! 그럼 어떻게 씻어요?!"

 

 

"출근하기전에 목욕탕갈래?"

 

 

"됐그등요."

 

 

집에 내려오자마자 가만히 생각을 했다. 1층은 물이 나온단다.

그런데 2층과 3층에는 물이 안나온다? 아하. 문제는...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일단 업자를 불렀다니 그렇게 알고 집에 내려왔는데

이젠 정말로 출근전까지 이 까치머리와 입에서 나는 단내 그리고 전날

마셨던 음료수 담긴 텀블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한꺼번에 그 번뇌들이

밀려왔다. 중생아 네 어찌 텀블러에 사이다를 따라 마셨느냐.

 

 

 

 

그러다 문득, 입주선물로 받은 2L x 48병 생수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뭐라더라 어떤 부자들은 생수로만 씻는다는데 1리터는 요 머리 감고

남은 1리터는 요 세수하고, 2리터짜리 세통 더 따서 물안내려가는 요 변기통에 넣고

와-예 또 물 쳐 쓸데 있으예?(주 : 영화 내부자들 드립)

 

 

 

일단 머리감고 세수하고 이닦고 물안내려가던 변기통도 해결은 했다.

역시 암쏘 지니어스 와타시가 한국의 마리앙투아네트다 상수도가 막히면 생수를

쓰면 될것을 우매한 놈들.

 

 

그리고 밀려드는 후회. 생수 단가와 내가 생수를 나르기 위해 썼던 시간들. 그냥 성저공원

화장실 가서 씻을걸 그랬나...? 그렇지만 아침부터 떡진머리와 부스스한 얼굴로 버스를

타긴 싫었다. 씻는다고 딱히 정상으로 보이는 얼굴은 아니긴 한! 데! 

 

 

가게 도착하자마자 까치머리로 웨이브를 넣은 집주인의 아들이 부스스한 얼굴로 주방에서

재료준비를 하고 있을때 난 생수라도 씻고 나와야겠다는 다짐을 더 하게 되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상수도를 고치러 사람이 오지 않았다.

빡침이 단전에서 머리 끝까지 오르는건 진정한 빡침이 아니다. 그건 만화적 표현일 뿐이다.

진짜 빡친다는건 단전에서 계속 머무르는 화다. 마치 손오공이 셀을 상대하기전에 힘을 응축해

놓은 것 처럼, 내 화는 단전에서 계속 머물러 있었다. 집주인의 아들이 헛기침을 하며

어제 퇴근하는 나를 밖으로 부르더니 뜬금없이 양갈비를 사주길래 일단은 먹고, 술김에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안불렀으면 안불렀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쇼. 내돈주고 내가 부를라니까."

 

 

"야. 불렀다니까? 근데 일이 많다고 안와. 내일은 꼭 올거야."

 

 

"올거야? 라고요? 내일은 꼭 온다. 가 아니라 내일은 꼭 올거야 라는 말은 꼭 온다는 겁니까

꼭 오길 희망한다는 겁니까?"

 

 

나는 사실 말을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닌데(주댕이는 못털어도 손가락만 잘턴다. 전형적인

키보드워리어다.) 빡침이 극에 달해 단전에 머무는 상태가 되면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온다. 그리고 이날이 그랬다.

 

 

"그게, 꼭 올거야."

 

 

"말 끝을 흐리지 마시고요. 솔리드도 이 밤의 끝은 잘 잡고 은퇴했수다. 거 뭐냐

천문학적으로도 어떻게 못하는 밤도 잘 잡고 은퇴한 가수도 있는데 말 끝 잘 붙잡는게

뭐 대수라고. 안그래요? 그니까네, 가는날까지 안전하고 쾌적하게 집주인 아들 대우 

받고싶으시면 상수도부터 터트려주세요. 안그러면 내가 터질라니까."

 

 

 

 

일단 목욕탕 회원권 다섯장과 24시 빨래방 5회에 준하는 금액을 준다고 약속했는데,

나는 사실 그 말에 더 빡이 돌았다.

 

 

"아니이이이이이이----! 목욕탕 회원권이랑 빨래방 당분간 다니라는거잖아요오---!

물 안나오냐고오오오---!!!"

 

 

결국 참지못한 나는 삐져가지고 남부끄러운것도 모른채 넓은 양갈비집 쇼파의자에서

버둥거렸다. "아 내일까지 상수도 고쳐달라오고오오오오----!" "미1친놈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그리고 오늘은 분명히 상수도 수리업자가 올테니, 쉬는김에 오면 잘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말까지 듣고 지금 이 글을 쓰고있다.

 

 

만약 오늘 상수도 업자가 오지 않는다면,

이번달 월세도 오지 않을거란 이야기를 해놓긴 했는데 진짜 오늘 오지

않더라도 월세를 안줄 생각은 없지만, 아마 당분간 집주인의 아들은 그냥 나와 맨날

싸우는 직원A쯤으로 한동안 기억될 것이다. 물론 그는 사태의 종식을 위해 수많은 회유와

협박 그리고 짬으로 누르려 하겠지만 어쩌라고. 떠받들어지고 싶으면 상수도부터 고쳐놔요.

 

 

 

 

 

 

 

 

 

 

 

# E02 짤막하게 쓰는 기억에 남는 현재진행형 손님.

 

 

사실 1달 24일 쉬는날빼고는 하루종일 가게에 붙어있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온갖 인간군상들을 만나게 되는건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우리 가게에는 왜인지 모르지만

노인들이 많이 오곤 하는데, 이건 어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특별케이스에 해당되는

에피소드다.

 

 

노부부는 이틀? 삼일? 에 한번씩 방문하곤 한다. 패턴은 항상 똑같다.

 

"어서오세요. 어머님 아버님 여기 전화번호로 전화하셔서 등록해주세요. 코로나 명부대신에

이거 쓰는거에요."

 

 

그럼 할아버지는 온갖 쌍욕을 하며 난 코로나 안걸렸으니까 안한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말리며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할게요."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매번 똑같은 패턴이다. 처음엔 "할아버지 말씀이 너무 심하세요!" 라고 말했는데 뭐 한 세달쯤

겪으니까 지금은 "어허허. 이건 병 안걸린 사람들이 하는 전화에요" 하고 말한다.

 

그래도 처음엔 썅놈이 어쩌고 호로새끼 어쩌고 했는데 요샌 안면좀 텄다고 에이 개1새끼

정도로 끝난다. 거 할배 욕 되게 잘하신다.

 

 

이들은 시키는 메뉴도 똑같고 패턴도 똑같다. 국밥 두그릇 시키고, 막걸리 한병 시키고

중간에 할아버지가 그릇을 탕탕 치며 "야! 김치 줘!" 하는데 처음에는 "저희는 직접 가져다 드셔야

합니다." 했고 매번 그 문제로 싸우고 할머니는 "아이고 여긴 그런데 아니에요" 하면서 가져다

드시곤 했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가면서 "어허헣 아버님 김치 더 드려요?" 하고 그냥 갖다준다.

할배는 의외로 "응 응" 하면서 얌전하게 식사만 하신다.

 

진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뭐 욕하는거보니까 아직은 정정하시구만 게다가 딱히 바쁜시간에

와서 그러는것도 아니고 한가한 시간에 와서 그러는거니까 에지간하면 다 해준다.

 

사실 계산도 쉽지는 않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는 자식이 하나 있는 모양인데, 매번

올때마다 포장을 해가곤 한다. 자식에게 먹인다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봉투에

담아달라 하고, 할아버지는 항상 내 면상에 갈비탕 포장을 집어던진다.

 

처음에 맞았을 땐 경찰출동까지도 고려했는데 지금은 그냥 손으로 받는다.

 

"에이 썅 내가 안쳐먹이겠다는데 왜 줘! 저새끼(할머니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가 달라해도

주지 말라고!"

 

 

"아니 뭐 그래놓고 또 사가실거잖아요."

 

 

"안사!"

 

 

"그럼 포장 다시 넣어요?"

 

 

"아니야 줘!"

 

 

"네네. 여기요."

 

 

요샌 안오는 날은 좀 서운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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