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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희대의 행운아.jpg
게시물ID : bestofbest_4483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우가가
추천 : 106
조회수 : 22424회
댓글수 : 9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21/12/07 10:34:36
원본글 작성시간 : 2021/12/06 17: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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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괴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틀만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면서 미국에서도 대대적인 징집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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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이라는 게 으레 그렇 듯 정말 각양각지에서 온갖사람들이 끌려왔고 개중에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체 신문배달, 마트직원, 골프캐디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던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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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로부터 삼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소년은 몇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후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평생 쓸 운을 다 쓴건지 포트 오드의 수영장 안전요원이라는 미친 개꿀보직에 배치받게 됨. 그것도 전시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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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포트 오드에서 차타고 2~3시간 거리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었던 삼손에겐 이만한 행운도 없었음. 그렇게 평일에는 수영장 안전요원, 주말에는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지 1년쯤 되던 날, 주말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시애틀까지 날아간 삼손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꽁냥꽁냥하다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갈 비행기편을 찾아서 공항에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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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에선 버스보다도 더 자주타고다니는 게 비행기이지만 당시만 해도 비행기삯은 그냥 여자친구 얼굴 한번 보고 오자고 흔쾌히 낼만큼 싼가격이 아니었음. 그러면 애초에 시애틀까지 어떻게 왔냐? 전시상황이다보니 참전하러 가는 군인들, 귀향하는 군인들, 포상휴가등을 받아 잠시 귀국한 군인들을 전부 수송한다고 절차같은 걸 따질 시간도 없이 바쁘다보니 군복만 입고 있으면 이병나부랭이도 군수송기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널널했던 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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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녀석이 여자친구랑 꽁냥꽁냥하느라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마지막 군수송기를 놓쳐버린거임. 그렇다고 비싼돈내고 민간항공사를 이용하기도 싫고, 아무리 땡보라지만 전시상황에 쳐노느라 제시간에 부대복귀 못했다가는 좆될 거 같아서 똥줄이 타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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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삼손의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당시 미군에서 사용하던 폭격기인 A-1 스카이레이더였음. 마침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참이었던 해군소속의 이 폭격기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 1인승임. 하지만 우리의 삼손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지. 곧바로 파일럿에게 가서 내일까지 복귀못하면 진짜 큰일난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어서 결국 뒷편에 레이더등 전자장치가 실려있는 공간에 탑승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삼손은 그 좁디 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기어들어가 자리잡고 이륙을 기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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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비행기는 뜨고 몇 분, 아니 몇 초가 지났을까, 삼손이 타고있던 그 좁은 공간의 문이 바람의 영향으로 벌컥 열려버림. 사실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일반 항공기로도 2시간 남짓의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잘만 버티고 있으면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문제는 산소였음.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삼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고 안간 힘을 다해 문을 닫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산소부족으로 기절해버리고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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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콕핏에 있던 파일럿도 기체에서 여러가지 결함을 발견하기 시작함. 삼손의 사고와 연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료도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기엔 부족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손때문에) 산소또한 걷잡을 수 없을정도로 빠르게 손실되고 있는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라디오까지 고장나버림. 결국 이대로 가면 다 죽을 거라고 판단한 파일럿은 태평양을 향해 비상착륙을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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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가파르게 낮아지고 공기중 산소농도도 점점 높아지며 마침내 삼손은 깨어나게 됨. 눈을 뜬 삼손이 마주한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음. 어두컴컴한 밖, 희미하게 보이던 찰랑거리는 물결은 이내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삼손을 집어삼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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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빠져나온 삼손과 파일럿은 충격에 빠진 몸을 이끌고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 한 가운데에서 힘겹게 구명보트에 올랐음. 파일럿은 계산대로라면 해안에서 약 5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았으니 동쪽으로 조금만가면 육지에 다다를 것이라 삼손을 위로했고 둘은 열심히 육지를 향해 노를 저어 나아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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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재미없다고 생각한 태평양은 파도를 쳐 삼손을 구명보트에서 떨어트린 후 물살을 방향을 바꿔 보트를 저멀리 보내버림. 파일럿은 삼손을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혼자서 노를 저어 물살을 거슬러가긴 무리였고 결국 삼손은 혼자남게 됨. 방향감각마저 잃어버리고 올라가 버틸 구명보트조차 사라진 삼손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음. 그저 한 방향을 정해서 저체온증에 걸리거나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 헤엄치는 거였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저 멀리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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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샌프란시스코 북쪽, 레예스곶에 위치한 라디오타워에서 쏟아져 나오던 불빛. 전시에 수영장 안전요원 보직을 배치받는 천운을 겪고도 쓸 운이 더 남아있었던지, 그냥 무작정 고른 방향이 동쪽이었던 거지.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 해안가에 도착한 삼손은 라디오타워에 있던 직원의 도움으로 해안경비대 초소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2년 더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제대를 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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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삼손은 포드 오드에서 근무하던 중 생긴 인연으로 배우로 데뷔를 했는데, 배우가 뭐 쉽나, 변변찮은 단역이나 조연을 전전하다가 1960년대가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이 다 거절해서 오갈 데가 없었던 주연자리를 제안받음. 미국에 수출할 용으로 이탈리아에서 찍는 B급 영화에다가 촬영은 스페인까지가서 해야됐는데 운좋게도 영화가 성공하는 덕분에 아카데미상도 여러번 수상받고 아직까지도 헐리우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원로배우중 한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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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삼손의 본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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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 잘생김

 

출처 http://huv.kr/pds111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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