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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흑부자 만난 사연
게시물ID : bestofbest_553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여자친구
추천 : 219
조회수 : 48109회
댓글수 : 6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08/30 22:34:07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8/18 15:19:41
평소에 샤워로만 썩은 몸뚱이 냄새를 숨겨오다 아스팔트 위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내 때님들을

천당으로 보내주고자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급습했다.

빨간색의 여탕이란 글자가 내 발길을 문득 멈추게 했다. 

어렸을때 엄마 손잡고 여탕을 갔다가 같은 반 여자친구를 마주쳤을 때 창피함에 울고불고

집에 가자고 철없이 굴었던 날 반성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500원짜리 명품 때수건을 사들고 후다닥 옷을 벗은 후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이며 역삼각따위를 거부한 내 삼각몸뚱이와 달렸는지 말았는지 0.3 시력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내 이쑤시개를 훑어보았다.

분홍색 타올을 들어 어깨에 휘감으며 뿌옇게 서린 문을 밀고 케이미니님과 쮸링님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왔다.

집에서는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태어나지도 않은 여자친구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됬었는데

그럴 필요없이 바로 내 몸을 녹여줬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따뜻한 물로 적셔주며 서리에 낀 거울을 뽀독뽀독 닦고 머리를 넘겨본다.

어두운 배경에 촌스러운 주황 조명발은 늘 내 자신감을 복돋아 주는 엄마같은 존재다.

대충 씻고 때제비탕에 들어가 벽에 몸을 뉘인다.

이쑤시개도 기분이 좋은지 축 늘어져 허벅지에 기대어 잠이 든다.

머릿속에는 온통 시원한 맥주 생각뿐이다.

'아 맥주 먹고싶다...맥주...시원한 맥주..... 근데 안주는 뭘로 먹지?'

오른쪽 평상에는 연신 용트름하는 아저씨가 다리를 쩍 벌린 상태로 자고 있다.

왼쪽에는 신이 모든 것을 주고 어둠을 내렸다는 흑횽이!! 아니 흑부자가!!!

10살쯤 보이는 어린아이는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아버지가 열심히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흑인들도 때를 미는구나..근데 때를 밀면 보이나?' 바보같은 생각과 동시에 시선이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인터넷의 무수한 목격담과 끈적끈적한 동영상으로만 보던 전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역 앞 분식집 솥뚜껑 안에서만 볼 수 있던 순대와 같았다.

나도 울고 자다 깬 이수씨개도 울었다.

등에 물을 끼얹어 주며 순대가.. 아니.. 아버지가 뭐라고 하니 앉아있던 아이가 등을 돌려 앉았다.

'그래도 앤데 내가 좀 더 뿌-우~~ 하겠지' 라는 생각은 정확히 0.0235468321초만에 접었다.

작년 여름 친구들과 갯벌에서 쪼그리고 호미로 열심히 캤던 진흙 묻은 개불이 생각났다. 

손끝은 쪼그라질때로 쪼그라지고 몸은 뿔때로 뿔었지만 차마 나갈 수가 없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흑부자가 나간 후에 탕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러우면 지는거랬어..부러우면 지는거랬어' 연신 생각해보지만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다 씻고 목욕탕을 나와 근처 슈퍼에 들러 캔 맥주 하나를 사고 분식집에 들러 순대한봉지를 포장했다.

집으로 터벅터벅 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쓸데없이 목욕탕은 왜 가 가지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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