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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티켓을 아빠가 대신...
게시물ID : boast_43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thanasius
추천 : 11
조회수 : 121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07 03:58:13

2000년 3월 7일 저녁, 난산 끝에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숨을 쉬지못했고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5분 넘게 계속된 응급조치와 인공호흡으로 숨을 쉬게 되었지만

아이는 바로 인큐베이터가 구비된 앰블런스를 타고 소화아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했기에 면회는 불가했고 저는 다음날 휴대전화로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짧지않은 기간동안 장애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지만 그 순간 충격으로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습니다.

복지관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데 그게 뭐지?"라고 할 정도로...

 

그뿐 아니라 탯줄이 얽힌 상태에서 태변까지 흡입한 아이는 산소공급을 못받아 심각한 뇌손상을 받았고,

심장에 2군데의 천공, 심장판막 기형, 갑상선 기능 저하, 백혈구 수치 저하 등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진단명이 10가지였는데 나머지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당시 아이의 체중은 2.1Kg...

 

코를 통해 호스를 삽입하여 수유를 하였고, 아이는 숨만 쉴 뿐 눈을 뜨거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담당의사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며 집으로 가 아이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편이 낫겠다 했습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서울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마주한 의사는 컵의 물을 바닥에 쏟은 뒤 얼마나 다시 주워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주변 사람 모두가 수술을 만류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도 중증장애인인데 앞 날을 생각하라고...

저 역시 쉽게 수술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이른아침 담당의사께서 찾아와 한 마디 하고 갔습니다.

"장애아란 이유로 수술을 포기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장애인은 죽어야 하는 것인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바로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생후 45일이 되던 날, 3.0Kg의 아이는 심장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성공보다 수술 중 사망의 확율이 더 높았고 수술 중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아이는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서 평생 걸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실제로 20개월이 넘도록 스스로 서지 못했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서는 한 쪽 눈이 실명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오늘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달리기 잘하고, 보조바퀴가 있지만 자전거도 잘 탑니다. 수술을 통해 일상생활에 지장없는 시력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정상 아이에 비해 많이 모자랍니다.

말도 어눌하고, 아직 한글을 다 익히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합니다. 수 계산도 못합니다.

 

그래도, 음악을 전공한 엄마를 닮아서인지 음악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어 학교 풍물부에서 꽹과리와 대북을 연주합니다.

어지간한 대표곡은 다 외워 부를 정도로 가수 김경호씨의 광팬이라 직접 유튜브에서 김경호를 검색하여 동영상을 감상합니다.

 

 

딸아이가 태어난지 만 13년이 되었지만 한 번도 수술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대다수의 장애자식을 둔 부모의 소원이 그러하듯 우리 부부 역시 이 아이보다 오래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비록 태어날 때는 '축하'를 받지 못했지만 이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온 '천사'임이 분명하니까요.

 

"생일 축하한다 우리 딸. 건강하고 밝게 커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그런데, 너 요즘 사춘기인 건 아는데 말 좀 잘 듣고 그만 개겨라. 동생하고 그만 싸우고. 제발 부탁이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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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 첨언하면, 소화아동병원에서 쉽게 생명을 포기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못 갔지만 소화아동병원 담당의사 선생님께 매년 인사를 갔었습니다.

초기에 조치를 잘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사 선생님 자리 뒷 편에 제 딸아이의 사진이 늘 걸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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