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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언죄) popipopi님 글에 대해 댓글 대신 새로 글을 하나 씁니다
게시물ID : comics_215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18
추천 : 17
조회수 : 105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24 23:48:45
집에 와서 베오베까지 간 그 글을 봤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comics&no=21562#memoWrapper85640910)
많은 분들이 의견 주셨더군요.
여러 번 의문이 제기된 항목에 대해 똑같은 소리를 할 필요는 없으니 제일 중요한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번은 제가 popipopi님이 주장하신 방식대로 제작한 만화를 보지 않는 이상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현재 웹툰 시장에서 요구되는 미니멈이 주 1회 60컷 풀컬러라는 건 웹툰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테니, 제 입장에서는 그걸 기준점으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본인이 그린 만화를 들고 오시는 게 제일 빠를 듯 합니다.

2번. 이건 본문의 댓글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자기 얼굴에 침뱉기입니다.
결국 지망생 및 가혹한 시스템과 좁은 스펙트럼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발을 뺀 동지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이죠.
그렇게 허들이 낮은데도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옳겠습니까?
물론 popipopi님께서 흥행가도를 달리는 고참 웹툰 작가라고 하시면 할 말 없습니다. 약간 아니꼬울지언정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미 자기 실력으로 증명해보인 사람이 그렇다는데요.

솔직히 웹툰 좀 본다는 사람 중에 공감툰 좋게 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만화는 엄연히 파괘왕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고, 그 보상이 정식 연재였을 뿐입니다.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제기할 수 있지만, 그 사례를 '허들이 낮아졌다.'의 증거로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부터 막 나가자고 시작한 공모전이니까요. 공감툰의 예시를 들려면 허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네이버라는 플랫폼의 근시안적인 태도와 공정성을 해치는 독단적 결정에 대해 비판해야 할 겁니다.

3번입니다.
업체가 특정 플랫폼을 이야기하시는 건지 업계를 이야기하시는 건지,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 단어의 함축적인 의미와 행간에 숨은 맥락을 읽을 수 없기에, 이 역시 함구하겠습니다.
다만 그 '업체'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좀 궁금하네요. 그리고 그 '업체'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신지도요.


4번.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4번 때문입니다.
1번은 직접 증명하시면 되고, 2번 역시 커리어를 증명하시는 걸로 해결되며, 3번은 업체와 개인 간의 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다만 4번은 좀 다릅니다.
이건 작가로서 정말 위험한 발언입니다.
popipopi님께서 쓰신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4. 소비자의 문제
 
눈에 보이는 이미지 퀄리티엔 민감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스토리와 텍스트 퀄리티엔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스토리 개판이어도
그림이 좀 상품성 있다 치면 구입해준다.
 
그래서 업체가 1번의 문제를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한다.

일단 이 항목에 대해 제시하실 근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천 명 단위의 설문조사도 좋고, 업체의 KPI도 좋습니다.

사실 검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말 큰 문제는 위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본인께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거니까요.

저는 popipopi님이 제 댓글과 다른 분의 댓글에서 '부패한 정치가'를 두 번이나 언급하신 걸 보고 좀 놀랐습니다.

첫째로 놀란 것은 '이 안에 숨은 논리적 비약을 감지하지 못하는 건가?'였고,
둘째로 놀란 것은 '진심으로 시장의 편향성이 독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건가?' 하는 거였습니다.

독자들의 니즈에 따라 플랫폼이 어떤 공통적인 성향을 가지는 웹툰을 주로 서비스하는 것은
'다수의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소수의 현명한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부채를 떠안는 것'에 견줄 수 없습니다.

웹툰이라는 미디어에 대해 굉장히 심도있는 생각을 하시는 데다 애정이 있으신 것은 알겠습니다만 이렇게 비약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웹툰 시장의 상황은 이런 겁니다.

찻집이 있습니다.
커피도 팔고 쌍화차도 팔지요.
커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쌍화차 찾는 사람들이 적으니 가게 주인은 쌍화차 메뉴를 없애고 커피 메뉴를 조금 늘립니다.
쌍화차를 먹으러 오던 사람들은 항의하겠죠. 왜 쌍화차가 없냐고요.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잘 팔리는 걸 늘리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요.

언뜻 보면 쌍화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가게 주인에게는 쌍화차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으니까요.
가게 주인이 본인의 이윤을 위해서 쌍화차를 없애고 커피 메뉴를 늘리는 게 불의에 해당하나요?
어차피 커피든 쌍화차든 기호품이고 그 존재 유무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웹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커피를 좋아하고 쌍화차를 싫어하는 게 부패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어리석음과 동등한 무게를 가질까요?
쌍화차를 안 팔아서 아쉬워한다면 모를까, 쌍화차를 팔지 않는 걸 불의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도 서브컬쳐에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작가는 독자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내 만화, 내 소설이 잘 안 되는 것은 독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거나 나와 같은 기호를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틀린 게 아닙니다. 다른 것뿐이죠.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대중의 보편적 성향이 다른 것뿐입니다.
언젠가는 내 만화, 내 소설의 가치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명예와 물질이 필요하다면 그걸 취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면 됩니다.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 명예와 물질을 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면에 동기를 두고 적지만 내 작품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과 힘든 길을 헤쳐 나갈 것이냐,
아니면 잠시 고집을 꺾고 현실적인 가치와 타협할 것이냐.
내 고집대로 전부 하면서 현실적으로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가치들을 탐한다는 것은 덧없는 욕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창작자들은 독자의 수준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장선우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찍은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관객이 영화를 평가했다면, <성소재림>은 사상 최초로 관객의 삶에 대한 경험수준과 이해력을 평가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지존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수라면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수라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게임을 다시 접속하고 싶어지겠지. 하수라면 아예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가져올 파장이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원문보기: 
http://news.maxmovie.com/2256#csidx37df1b8ef8f06bd878712be7a9b2e65 

장선우 감독은 이후 재기하지 못하고 영화계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2012년 영화판이라는 다큐 영화에 출연해 당시의 발언이 자신의 오만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했습니다.

http://osen.mt.co.kr/article/G1109503658

시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례는 류승룡 씨입니다.
류승룡 씨는 영화 '손님'이 퇴장을 앞둔 시점에 아래와 같은 인터뷰를 해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특히 그는 "관객이 영화의 행간을 읽지 못하고, 미덕을 못 찾아낸 것 같다"고 짚었다. 특히 관객의 쥐에 대한 혐오를 꼬집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자기 자신은 깨끗하고 거룩하다고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혐오스러운 게 있어도 안 그런 척 숨기고 있다. 거짓과 이기심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그렇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도 살려고 지은 죄를 합리화하고 쉬쉬하지 않나. 그렇게 또 사람을 죽이는 등 악순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행간을 보면,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관객이 이런 의미를 읽어낼 줄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차적인 쥐에 대한 혐오라니…." 

http://star.mk.co.kr/new/view.php?mc=ST&no=703932&year=2015

소비자 집단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언뜻 그들의 행동패턴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지만,
앞선 두 사례를 바탕으로 봤을 때 그러한 믿음은 순전히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 불러온 오판일 확률이 더 높을 것입니다.

이 글로 popipopi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시장이나 독자들을 '틀렸다.'고 보는 시각은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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