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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이 '여성혐오'의 뜻부터 분명히 해줬으면
게시물ID : comics_87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뉴스룸
추천 : 2
조회수 : 7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7/21 18:00:36

'여성혐오'만큼 오독되는 단어가 지금 한국에 또 있을까. 넥슨에서 메갈리안 관련 티셔츠를 입은 여성성우의 음성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을 두고 여성혐오 논란이 불붙었는데, 남성대 여성의 성차별적 구도 하에서 싸움만 커지고 소득은 없는 이전 여성혐오 논란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이는 상당부분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한 쌍방의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여성혐오를 한 쪽에서는 성차별,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 비하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단어로 사용한다. 대체로 이들은 한국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고 차별받고 있음을 민감히 지각한다. 


성차별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갖지 않은 다수의 경우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라는 혐오의 사전적 의미와 여성의 결합어로 좁게 사용한다.


여성혐오의 뜻을 가장 넓게 사용하고, 이와 관련된 이슈에 적극성을 보이는 이들은 여성혐오의 의미를 한정하는 이들의 무신경, 인식없음을 성차별 옹호, 체제 수호에의 가담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비판, 공격한다.


인식 없음의 상태에서 불의의 습격을 받은 이들은 분노하고 맞받아친다. 이들은 반발심은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싫어하고 미워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부당함을 느끼는 데서 시작, 자신을 공격해 온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느끼고 공격성을 띄는 형태로 발전한다.


쌍방은 비난, 조롱, 융단폭격을 주고받으면서 전선을 확대해 나간다. 결국 여성혐오 논란은 전쟁이 된다. 싸움이 피곤한, 사안에 깊이 개입하기 싫은 '일반인'들은 여기서 떨어져 나간다. 메갈리안, 일베(이번 사안에서 일베는 이상하리만큼 존재감이 없는데, 일베는 이제 명실상부한 사회악으로, 논의할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다)를 비롯한 열의 가득한 키보드 워리어들은 점차 목소리를 높여간다. 전쟁이 커지면 내부의 다양한 견해는 '여성 vs 남성' 구조로 단순화, 확대된다.


이 구도가 형성되는 순간 이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 된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상대방 입장에서는 단지 가해자가 될 뿐이다. 알량한 동지의식과 정신승리에서 오는 자기위안이 손에 쥔 전부다.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이 사회의 다수로부터 비난받으며 싸우는 이들의 목적은 무언가. 그들이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종착점이 적어도 양성평등이라면, 이는 남녀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상대방인 남성들을 적(벌레)으로 규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모두 그들의 페미니즘적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불평등 구조 하에서 달콤한 과실을 따먹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남성중심적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할 뿐 아니라 체제 수호에 가장 적극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과거 가부장제 질서 아래 며느리에 대한 가장 강한 억압은 시어머니들로부터 자행됐다. 


메갈리안들이 '한남충'이라고 규정짓는 한국의 젊은 남성들중 다수는 여성이 우리나라에서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성의 지위 향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여성 vs 남성의 구도가 형성되는 순간 이들은 쉽게 남성적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많은 남성들이 성차별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남성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해 온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세로줄무늬만을 보고 자란 고양이는 가로줄무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모두 정신의 일정부분에 있어 불구다. 이 부분에 대한 교정은 남성 여성을 가릴 것 없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가령, 나는 여성문제에 열을 올리는 여자 후배와 '프로듀스101'이라는 프로그램을 두고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미성년 여성에 대한 상품화라는 생각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꺼리는 입장이었던 반면, 그 여자 후배는 "매 1분마다 새로운 매력을 볼 수 있다"며 자신이 해당 프로그램의 애청자라고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입장이나 해석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여성의 차별, 성상품화에 대한 인식이 남자라고 해서 더 관대하고, 여성이라고 해서 더 엄격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토론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될 용어의 뜻에 대한 이해가 다른 데서부터 출발해서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언어로 토론이 아닌 싸움만 하고, 결국 성 대결로 치닫다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단 한 걸음의 발전도 이뤄내지 못하고 에너지만 소모하는 일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 낭비다.


사태가 이쯤되면 여성학계가 나서서 여성혐오와 성차별, 성평등에 대한 개념부터 명확히 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혐오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다수의 키보드워리어들은 자신이 여성혐오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상대방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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