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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족끓이기
게시물ID : cook_2092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치즈빵사랑해
추천 : 18
조회수 : 84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7/08/16 15:14:24
며칠 전 엄마가 아팠다.
응급실에 실려가서 진통하듯 온몸을 꼬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얼마전에도 크게 아파서 응급실을 다녀왔었다.
이것저것 챙겨먹고 몸이 좀 괜찮아진다 싶었는데 그놈의 병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딸인 나는 육아한다는 핑계로 아픈 엄마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휴일인 어제, 아이랑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 문득 엄마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새벽에 갑자기 너무나 허기가 져 일어났는데 외할머니가 끓여준 뽀얀 뼈국물이 생각이 났다고 한다.
무슨 부위인지 모르겠어. 그땐 돈이 없었으니까... 둥둥 뜬 기름도 아까워 걸러내지 않고 먹던 하얀 국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우족이었던거 같아. 그 국물이 너무 먹고 싶은데... 이제 엄마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잘 떠오르지도 않네
새벽 조용한 부엌에서 맨밥에 깻잎과 김치로 허기짐을 달랬다는 엄마 말을 듣고 괜히 속상하다.
집 바로 앞이 24시간 곰탕집인데 아픈사람이 왜 풀로만 배를 채웠어!’
미안한 마음에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심난함에 아이랑 놀아줄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 근처 고기가 좋은 마트로 갔다.
... 우족 사러 왔는데요. 어떻게 사야하나요? 그람으로 파시나요?’
마트 고기아저씨가 커다란 다리 하나를 꺼내오신다.
기계로 숭덩숭덩 잘라주신 우족을 가지고 집에 왔다.
 

막상 집에 오니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켜 검색을 해본다.
두시간 찬물에 핏물을 뺀 후 한시간동안 팔팔 끓여 불순물을 없애고, 새로운 물을 받아 약불에 장시간 푹 끓인다.
...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외엔 생각보다 쉽다.
호기롭게 시작해본다.
아이랑 놀이를 하다 핏물을 몇 번 갈아준다.
아이 저녁을 먹이고 초벌로 한번 펄펄 끓인 뼈를 찬물에 깨끗이 씻는다.
본격적으로 큰 통에 물을 잔뜩 올려 끓여본다.
아이 목욕을 시키고 한번, 집안을 치우다 한번, 설거지를 하다 한번, 티비를 보다 한번...
뽀얗게 잘 우러나는지 계속 확인을 하고, 그때마다 엄마 얼굴도 한번씩 떠오른다.
 

우리 외할머니는 엄마가 중학교 때 스스로 세상을 등지셨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외할머니나, 우리 엄마나 이렇게 모진 팔자가 있을까 싶다.
글로 쓰면 책 몇권이 나오고도 남을 고된 삶을 살았던 우리 외할머니와 엄마.
지나온 엄마의 고된 과거가 가엽고, 아플 때 엄마가 없는 우리 엄마가 오늘따라 너무 안쓰러웠다.
 

새벽까지 끓인 우족은 제법 뽀얗고 고기국다운 냄새를 풍겼다.
냄비채로 차에 실어서 출근 전 엄마에게 들렀다.
엄마! 이거 내가 처음 끓여봐서 맛이 없을지도 몰라. 놔두고 갈게~’
정신없이 후다닥 넘겨주고 출근길을 재촉한다.
 

외할머니의 기름둥둥 뜬 진한 뼈국물만큼은 안되겠지만, 내가 끓인 서툰 뼈국물이 오늘 하루 엄마의 마음에 외할머니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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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관련 글이라 요게에 써봤어요.
보시다시피 글재주는 없어요.
제 상황이 여의치 않을때 아픈엄마를 보니 미안하고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를 위한 어떤 위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른사람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공개된 공간에 일기쓰듯 주절주절거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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