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게시물ID : databox_715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상연
추천 : 0
조회수 : 1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11/24 14:07:20

 목이 마르다. 더워서 속이 탄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버스비 1100원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 밤 웅천해수욕장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갈 차비였다. 그런 돈을 쥐고서 가게 앞에 섰다. 서리가 낀 냉동고가 보인다. 하드각 종류별로 잔뜩 있었다. 하드가 먹고 싶어졌다. 

 하드를 사먹어버리면 집까지 40분을 걸어야했다. 그리고 집에선 할머니가 애타게 기다린다. 그 생각에 나도 애가 탔다. 이 애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차가운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드를 사먹었다. 세 번 비어먹으니 하드가 사라졌다. 이성은 게으르고 욕망은 부지런하다. 나는 왜 또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버스도 못타는 거지가 되버렸네. 

 웅천에서 여서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확장고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는 길은 하나 뿐이었다. 그 길의 가로등도 백열등으로 새롭게 교체되었다. 새 가로등은 창백한 흰 외눈으로 자신의 외발을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를 이어주는 외길을 따라 쭉 걸었다.

 앗! 내가 좋아하는 교복이다! 저 멀리 두 여고생의 뒷태가 보였다. 음? 그런데 어째 등빨과 종아리가 장난 아니었다. 힘을 조금만 줘도 교복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뒷모습만 보고 판단컨데 자신이 없다.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다. 한 사람만으로도 거의 꽉차는 도보에 두 사람이 함께 걷고 있었다. 

 쌔카만 산둥선 너머로 도시의 창백한 보랏빛이 보인다. 그 빛을 보고 집까지 거리를 가늠했다. 집까지 약 30분 저도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가늠하며 걷고 있는데 어느 새 두 여고생과 애매한 거리가 되버렸다. 두 여고생은 걸음이 느렸다. 일정하게 것만으로도 추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뒷따라가는 것 같아서 불편했는데 이대로 걸어서 추월해야지.
 
 열걸음 정도 차이를 좁혔을 쯤에 한 여고생이 뒤를 돌아봤다. 돌아보는 시선에 따라 다른 여고생도 고개를 돌렸다. 나를 훑어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두 여고생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두 사람은 처음에만 속도를 냈지 결국 거리가 다시 좁혀졌다. 이대로는 추월하기 보다는 뒤따라다니는 형국이었다. 추월하고 싶었다. 아니면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가줬으면 했다.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고 제일 느린 걸음으로 걷더라도 두 여고생과 거리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답답했다. 

 한 여고생이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게 굉장히 열받았다. 가까워진 것을 깨달았는지 둘이서 또 뛰기 시작했다. 뒷뚱뒷뚱거리는 뒷모습이 더 열받았다. 약올랐다. 두 여고생은 쪼금 달리다가 뒤를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여고생이 또 다시 뒤를 돌아본다. 이게 괭장힣 불편했다. 얄미웠다. 그만좀 봐라. 고등학생이면 나랑 동갑이거나 한 두살 많을 것이다. 덩치도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큰 것들이 왜 저러는 건가? 가로등 위에 설치되어 있는 CCTV, 매순간 앞 뒤로 다섯대씩 지나가는 차량들. 이런 것들이 있음에도 또 뛰기 시작했다. 짜증과 분노가 솟구쳐 정수리에 구멍을 뚫어버릴 것 같았다. 뛸거면 끝까지 뛸 것이지. 내가 추월만 하면 저딴 꼬라지 처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아파트 아래에 있는 정류장까지 걷다가 달리다 뒤돌아봤다가 다시 걷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냥 일정한 속도로 걸었을 뿐이었다. 두 여고생은 아파트 앞 정류장에 섰다. 드디어 추월했다. 가면서 두 여고생과 시선을 마주쳤다.

 빗물에 녹아 흐르는 연탄물처럼 눈가에 칠했던 검은 화장이 땀과 함께 꾸질꾸질하게 흘렀다. 안 그래도 열받았는데 얼굴을 보니 더 열받았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 둘을 노려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