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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게시물ID : databox_727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워보이
추천 : 0
조회수 : 27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5/02 00:09:44

방영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남녀 주인공 간의 나이차가 문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지안과 박동훈의 나이 차이는 스물네 살. 아, 이게 논란이 될 수 있겠구나, 

그때 문득 생각했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과거의 편린들이 지지직대며 신호가 잡히는 흑백텔레비전처럼 떠올랐다. 

이십 대 초반, 옆에서 지켜보았던 친구의 연애. 그 친구는 애인과 스물두 살 차이가 났었다. 

그리고 연애는 아니지만, 나의 썸 아닌 썸 또한 떠올랐다. 

나보다 스물네 살인가 다섯 살이 많던 그분. 

내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호기심과 묘한 끌림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옅게 존재했던 관계의 흐름을 지켜보고픈 것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않아 어느 순간 훅 들어오려는 그분의 시도가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다소 놀라 보자기로 채 비우지 못한 그릇들을 우당탕탕 싸 올리듯 관계를 묶어 내던졌었고. 


하지만 인연이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이유는 타이밍과 기타 다른 사항들 때문이었지, 

오히려 나이는 가장 뒷전의 문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분보다야 훨씬 어렸지만 나는 어엿한 성인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관계(남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를 형성하는데 나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들 때문일까. '나의 아저씨'의 나이차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나는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럴만한 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크게 관심 갖지는 않았다. 

아이유나 이선균의 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감정선, 특히 남녀의 감정선에 치중하는 한국 드라마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미드 '왕좌의 게임'과 '굿 비헤이비어'나 빨리 방영해줬으면, 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채널을 돌리던 중 어쩌다 마주친 '나의 아저씨'. 


특유의 영상미와 각도,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절절한 ost, 그리고 두 주인공뿐 아니라 출연 배우마다 보여주는 진솔한 연기에 나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국 드라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어언 2년쯤 전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보고픈 작품을 만난 것이다

(얼마 뒤 어머니의 추천으로 '밥 사주는 예쁜 누나'가 추가되었지만). 


 그런데 본방을 사수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논란이 일었다.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페미니즘에 반하는 장면으로 이지안이 이광일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상황이 문제적이라고 지적받은 것이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또 생각했었다. 

물론 조금 놀라긴 했다. tvN이 민영 케이블 방송사이긴 해도 영화가 아닌데 저런 파격적인 장면이라니. 

하지만 드라마 속 맥락상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필연성의 문제를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광일이의 캐릭터를 다층적으로 표현하는데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다고 나는 느꼈다. 

괜한 눈요깃거리로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을 끼워 넣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걸 보면서 힛, 여자 때리는 거 괜찮은 일이구나 생각할 남자가 있다면 그건 그 남자의 개인적인 문제요 

그 남자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까지 그간 내버려둔 우리 사회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잠잠해졌다 싶더니, 

얼마 전 또 하나의 논란 -이전의 두 개 보단 파장이 작았지만(아마 드라마를 줄곧 봐오던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이슈거리로 

작은 씨알 하나를 뻥튀기하려는 언론에 넘어가지 않아서인지도)- 이 일었다. 

이번에는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날 좋아하지 않으면 때려달라고, 

당신 말대로 정신 번쩍 들게 때려달라고 악을 쓰며 울부짖다 

정말 박동훈이 꽤 강하게 이지안을 때리듯 밀어 넘어뜨리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충격적일 수 있는 장면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동훈 같은 캐릭터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다니.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조차 보기 싫은데, 

동훈마저 그러면 대체 이 드라마는 막 가자는 건가 뭔가, 사람에 따라선 이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뉴스인사이드


 하지만 한 뼘만 떨어뜨려 놓고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써(원래 드라마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의 아저씨'는 그리 분류해도 될 것 같다) 보자면, 전혀 놀랍지 않다. 지극히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어려서부터 내내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지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지켜야 하는데, 그녀와 은밀한 거래를 한 도준영이 의심하지 않도록 겹겹이 포장을 해서 지켜야 한다. 

가장 이지안답게, 자신의 마음이 드러나는 동시에 박동훈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게. 

그러자면 박동훈의 심리적 상태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극으로 치닫도록 해야 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폭력이 폭력을 낳도록 하는 것일 테다. 


다시 말해, 이지안이 먼저 박동훈에게 심리적, 언어적 폭력을 가한 셈이다. 

이지안의 행동을 고백이라는 맥락에서 보는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분명 박동훈을 몰아친 것은 이지안이었다. 

세상에 부끄러운 짓이라곤 단 한 개도 못하는 박동훈이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으로 말이다.


 이쯤 되면 논란이 이는 이유는 관점의 차이라고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술이고 뭐고, 작품의 완성도고 뭐고, 캐릭터의 성격창조고 뭐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잣대가 가장 중요하며 

그중에서 여성인권과 관련된 부분은 극도로 조심해주어야 마땅하다, 라는 관점이면 

앞서 언급한 폭력 장면들이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본 드라마상 리얼리티를 위해 나오는 다양한 폭력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전체적 설득력을 위해 위 장면들이 존재한다고 본다면 그에 대한 약간의 논란 혹은 고찰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작품을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폭력적인 장면들과 나이차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나의 아저씨'가 기존 드라마들과 달리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굉장히 다각적인 접근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크게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남자의 보호를 받거나 방해를 하는, 

더 나아가 흔히 민폐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여성 인물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말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지안부터 그렇다. 


악착같이 사는 여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악착같이 사는 여성 캐릭터들은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 대부분의 경우 신데렐라 시나리오를 통과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잡초처럼, 오뚝이처럼, 울지 않는 캔디처럼 굴어도 회를 거듭할수록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에게 그녀들은 일방적인 도움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지안은 다르다. 

실질적으로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심리적인 위로가 되어준 상황이 더 많은 반면, 

이지안은 현실적으로 박동훈을 도와준다. 누가 시키거나 강요하거나 가르쳐서가 아니라, 

이지안이 독립적인 존재로써 본인의 판단하에 박동훈이 입을만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내가 봤을 때 드라마 속 성별 역할 차원에서 완전한 발상의 전환이다.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데에 여성의 역할이 치중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이지안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 저런 나쁜 여자가 있다니!라고 생각하게 만들던 강윤희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 지독하게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강윤희가 얼핏 보면 독하고 이기적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 록 드러나듯이, 그녀는 충분히 가정을 위해서도 노력한 여자이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들 만큼 끈끈한 박동훈과 그의 가족을 위해 물심양면, 특히 물질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박동훈은 답답하게 착한 만큼 본의 아니게 자기 여자에게는 굉장히 보수적인 역할을 강요하게 되는 남자이다. 

항상 어머니와 형제들이 최우선인, 어찌 보면 성인으로서 완전한 독립에 실패한 남자이니, 

시댁이 내 진짜 가족이려니 참고 살던 우리 어머니 세대 이상의 여자들이나 감당할 법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 남자를 강윤희처럼 독립적인 여자가 사랑만으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그러니 그녀의 바람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녀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바람 자체보다 바람의 대상 때문이겠는데, 

이에 대해서도 그녀는 최대한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 


당신 때문에 바람을 핀 거라고 끝까지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잠시 흔들린 후에 지극히 이성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망가진 관계여도 마무리만은 잘 짓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박동훈을 돕기 위해 고민한다. 


박동훈을 좋아하는 이지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정도로. 

개인적으로 상당히 흐뭇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언제나 감정에 목매는 역할로 나오던 여성들의 편협적인 캐릭터 창조 대신 이성과 논리로 대처할 줄 아는 모습, 


박수 치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그 외에도 오나라 씨가 열연을 펼쳐주시는 정희. 

인상 깊다. 

그나마 극 중에서 가장 사랑에 '목을 매는' 여성인물인데,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과 달리 행동은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사랑에 의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가진 사랑을 지키려는 여자인 것이다. 


그리고 막내를 좋아하는 최유라는 젊은 인물답게 신선하다. 

피해자로서 머물지 않고, 가해자라고 생각한 막내에게 끝까지 찾아가 존엄성을 되찾으려 하는 끈질긴 시도라던가, 

서로 정이 드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흔들리지는 않는 모습

(결국 막내가 마음 깊숙한 곳의 치부를 드러낸 후에야 그녀도 그녀의 마음을 연 것이지, 

막내가 섣부르게 '사랑해'라고 고백했을 때는 쿨하게 넘겼다), 


마음을 서로 확인한 후에 막내에게 어깨를 기대려 하면서도 결혼은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쿨함, 

너무 좋다.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다가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면 꺄아, 하고 휩쓸리듯 따라가는 여성 캐릭터들이 

그동안 얼마나, 신물 나게 많았던가. 

마치 사랑'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정리하자면, '나의 아저씨' 속 여성 캐릭터들은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사랑을 줄 줄 아는 존재들이다. 


자연히 남성 캐릭터들은 사랑을 주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고,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다. 

결정적인 건, 이 과정에서 남녀에 따른 순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고로 규정되고 답습된 역할도 최소한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본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서로 평등하게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안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러한 접근이 극 중 인물들을 보다 다차원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더 설득력이 생기는 것이고, 극의 깊이가 생기는 것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언론 속 여성주의는 폭력장면과 나이차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지탄을 가하면서 

보다 여성주의적 방향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일까. 

본래 여성주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성평등을 실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았나. 


몇 해 전 내게 여성주의의 개념에 대한 냉혹한 정의를 내려주었던 어떤 분이 떠오른다. 

여성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당당히 여성주의를 논할 수 있냐고 했던 그분. 


나는 '전문적'으로 여성주의를 하는 이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수많은 여성들이 동참하기 어려운 여성주의는 그 존재의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긍정적인 여성주의적 변화와 발현들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조용하게 여성주의를 실현시켜 나가는 이들은 어디서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냐고. 

분노할만한 지점에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여성주의는 아니지 않느냐고. 


 보잘것없는 일반인의 블로그이지만, 나는 그래서 선물과 같은 '나의 아저씨'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출처: 텐아시아


출처:https://brunch.co.kr/@yoonsol34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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