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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게시물ID : databox_729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워보이
추천 : 0
조회수 : 2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7/17 09:31:50
더 우울한 사람들을 위해 덜 우울한 사람들에게 드리는 부탁
글쓴이 미루 조회 763 댓글 9
2018-07-13 02:43:22
119.65.*.*

중년 우울증에 대해 잡지에 기고할 일이 있어서, 나의 아저씨를 소재로 좀 써봤어.

나저씨에 대해서만 쓰면 훨씬 쉬웠을 텐데, 나저씨를 소재로 다른 주제를 건드리려니 이틀간 엄청 고생했어.

아직 탈고한 건 아닌데, 홍시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앞뒤 일부만 좀 가져와봤어.

그냥 재미로만 읽어봐줘.







Gloomy Gentleman


어떻게 하면 월 5,6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대학후배 아래서. 그 후배가 자기 자르려 한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모른 척.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여기서 제일 지겹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

- 이지안



 0) 프롤로그



아이러니 하게도, 드라마는 현실에 가까워지거나 정교한 설정과 대사로 인해 더 큰 개연성을 갖게 될수록 더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에, 비현실적인 재벌가의 출생 비밀이나 꼬이고 꼬이는 불륜과 우연으로 점철된 드라마는 욕하는 사람은 많을지언정 어떤 설정이나 장면에 대한 해석의 갈림은 없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현실에 가깝거나 설정이 정교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같다. 물론, 현실에 가깝다는 말도 논쟁거리가 될 것임을 잘 안다. 사족을 달자면, 여기서 현실에 가깝다는 말은 진짜 우리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이나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사의 흐름이 개연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거나 그 드라마의 설정 내에서 논리적 비약이 적다는 뜻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겠다. 이 글은 드라마 자체를 분석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을 때 가장 큰 논쟁거리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남녀간의 사랑이냐 아니냐였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다른 논란거리 중 하나는, 주인공인 동훈이 정말 그렇게까지 불쌍하고 우울한 인간이었냐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내에서도 동훈의 큰 형 조차, “얘가 뭐가 불쌍해?”라고 하고, 회사에서는 ‘흠이 없는’ 인간이라고 평가하고, 동네에선 유일한 대기업 부장님이라고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와이프는 법무법인의 변호사고, 아들은 말썽없이 미국에 살고있는 처형댁에서 유학 중이고, 자신은 45세에 월급 5,6백을 받는 대기업 부장으로 20년 근속을 앞두고 있고, 친구가 사장인 단골 술집에는 수십년간 친하게 지낸 형들 동생들 친구들이 가득하고, 주말엔 조기 축구를 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40대 중년 남성의 워너비 삶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사람의 마음, 죽어가고 있었다. 본인에게 가장 큰 가치인 가족. 큰 형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빚에 허덕이며 어머니 댁에 얹혀살고 있다. 딸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훔쳐 새로운 사업을 하려다 와이프에게 들켜 개망신을 당했고, 이혼하자는 요청을 겨우 뿌리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철없는 동생은 연봉500에 20년째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고, 그나마 까칠한 성격 때문에, 영화판에서 쫓겨나고 그 역시 가난한 어머니 댁에 얹혀사는 중이다.



회사에서는,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하기조차 싫은 대학 후배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설계팀의 에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진단 팀으로 쫓아냈고, 눈치 빠른 직속상사는 대표이사의 눈에 들기 위해 매일 본인과 부하직원들을 괴롭힌다. 그것도 모자라 본인을 회사에서 내쫓기 위해 온갖 공작을 하고 있고, 사수(師授)는 이미 그들의 손에 지방 한직으로 밀려났다.



출산하자마자 아이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사시 공부를 시작해 1년만에 통과한 와이프는 매일 저녁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고, 심지어 자기가 그렇게 싫어했던 그놈과 바람이 나버렸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지만, 자신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는 회사에 꼭 붙어있어야 한다.”라며 어머니 장례식이 초라할까 걱정하는 큰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그냥 모든 걸 덮고 스스로를 희생해 자신 주위의 삶들을 굴러가게 해주려 한다.



혹,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건 극중의 동훈도 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친구에게 그 똑같은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그 친구는 “어이구 그럼 지석(동훈의 아들)이도 그렇게 살라 그래. 그 소리엔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텐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텐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이라고 답변한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내가 덜 힘든게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을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중년 남자들은 모두가 스스로가 불쌍하고 우울하다. 내가 처한 상황이 더 나쁘다고 상대의 힘듦에 대해 비교 우위를 가져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너보다 더 힘드니, 넌 조용히 해. 노오력이 부족한거야. 정신력이 부족한거야. 네가 우울증이면 난 이미 죽었어. 니가 배가 안고파 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거야. 니가 전쟁을 겪어 봤어? 너는 그래도 매일 저녁 술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네. 징징대지 마라.’



대한민국에서 사는 중년 남성이라면 한 번 아니 수십 번은 들어 봤을 내용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위로와 적절한 진단과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치료일 텐데,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주위도, 본인도 잘 모른다.











5) 에필로그

 극중 동훈이 나타내는 증상들을 보면, 동훈은 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부 시청자들은 ‘저 정도면 행복한 인생이지. 복에 겨웠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드라마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자유다. 아무리 개연성있다고 해봤자 허구는 허구다. 단순히 연기일 뿐인데 그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거나 슬퍼하는 것을 비웃는 것도 각자의 자유다. 다만 필자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약간의 여유와 공감, 따뜻함이다.



 감동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올린 글에 시니컬하거나 현실적인 댓글로 감동을 파괴한다고 내가 더 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게 아니고, 웃으라고 올린 그림을 진지한 사실에 비추어 해부해서 웃기지 않은 그림으로 만들어 자신의 똑똑함을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성도 없는 법인데, 힘들어 하는 사람의 에피소드를 보며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오버한다’라며 자신이 정신적으로 더 강하다는 것을 자랑하면 더 행복해지는가?



 힘들어 하는 사람이 과민반응 하는 것이 설사 사실일지라도, 공감을 요구한 인간에게 굳이 공감을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더 힘든 상황에서 더 잘 버티고 있다면, 내가 상대방 보다 강한 것인데, 그 강함을 나눠주려 하고 약한 것을 위로해주려고 할 줄 아는 것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특성 아니던가. 내가 나의 과거를 잊고 싶은 만큼 남의 부끄러운 과거를 잊어주려 하는 게, 그게 인간인 것 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우울증을 겪는 중년 남성들은 이런 공감을 받지 못하고 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우울한 중년 남성이 계시다면 한 번 지금 당장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내 보시라. 과연 몇 명의 친구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공감을 받을 것인가. 아니 친구라고 부를 사람이 남아 있기나 하던가?



 그러니, 본인이 먼저 따뜻하게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멋진 중년 남성이 되어보면 어떨까? 아마 내가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의 ‘착하다’라는 칭찬이, 누군가에겐 삶을 지탱해주는 한마디가 될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그 한 마디가 누군가를 우울의 늪에서 끌어올리는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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