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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8
게시물ID : databox_732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nHere
추천 : 0
조회수 : 12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8/10/19 15:17:10
* 분노 포르노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이 가지는 맥락은 전반적으로 삶 전체에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특히 살인 사건이나 여타 강간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중의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은 별 거 아니지만, 또 별 거다'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 나가고 있고, 난도질을 당하고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가해자의 행위에 정신과 몸이 다 찢겨 나가는데 같은 시간에 다른 누군가는 평범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인 것을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또 이번 강서구 살인 사건을 떠올리면 그 살인자 두 명이 PC방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피해자는 평범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인 누군가였는데 그들 때문에 한순간에 삶이 찢겨 나가 버린 거니 또 별 거 같다.
나는 쎄한 느낌이 드는 사람을 지나치듯이, 몇 번의 위험한 순간들을 마주한 적은 있었지만 찢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살인과 맞닿아 있는 경험은 없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항상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고통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행위, 범죄 행위들에 대해 접하게 되면 화가 정말 많이 나고, 슬픈 감정도 북받쳐 올라 온다. 14년도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이유 모를 감정이입에 뜬 눈으로 밤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되게 많이 슬프고 충격적인 마음이 커서 다음 날 학교 가야 하는데 불구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샜었는데, 그때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그거 붙잡고 있냐 한심하다 정말'이란 말을 엄마한테 들으면서까지 그랬던 이유는 뭘까. 
이후에 '안타깝다'던 엄마의 말을 기억하는데, 전에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그런지 안타깝다는 말에 괜시리 괴리감이 느껴졌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래, 그거 붙잡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거 없고 학교 지각하는 게 더 큰일이고, 학교 가서 정규 수업 빼 먹는 게 더 별 거인 거다. 
다른 누군가의 일에 감정이입?한다는 건, 과잉된 감정에 심취?하는 건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닐 수밖에 없는데 별 거라고 오버 떠는 것이다.
이번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CCTV를 보면서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 이입을 해봤다.
한 사람은 내 몸을 잡고, 한 사람은 칼을 휘두르는데, 그걸 막아보려는 내 손은 갈기갈기 찢기고, 얼굴이 찢겨 나가고, 찢겨 나가는 와중에 보게 되는 살인자의 얼굴, 표정, 날아오는 칼, 그 칼이 몸에 들어왔을 때의 고통, 흐르는 자신의 피, 칼이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을 듣고 보고 느끼는 와중에 또 칼이 내 몸으로 들어올 때, 어떤 느낌일까.
결국에 내가 감정이입하는 건 그 사람이 받을 고통을 상상해보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걸 굳이 상상해보려 하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불행이나 불운에 나보다 더 과잉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과잉되어 보이는 그 감정의 '과잉됨'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 굉장히 격분하고 있는 와중, 이 말을 듣고 나니 내 감정이입이 내 감정에 내가 속는, 허위의식처럼 보인다.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말이나 행동이 그렇다지만, 감정이입만큼은 누군가를 속이지 않는다고. 과잉된 감정이 아닌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입은 '나'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이 결국 '타인'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속은 느낌이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나도 피해자에 이입은 불가능하고 그 피해자가 받을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내 경험에 빗대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상황, 관계 속에서 느꼈던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로 상상해보는 것이 전부이니 내 감정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맞다, 나에게 별 거인 게 나 이상으로 너에게 별 거일 수는 없는 거다. 분노라는 감정은 쾌감이고 연대되는 것은 보편적인 자기만족감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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