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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databox_732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nHere
추천 : 0
조회수 : 9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8/10/24 23:50:25

- "노력도 재능이다"에 관해서

1. 노력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갖춰져야한다. 이를테면 육체적인 건강은 필수다. 체력이 좋은 사람은 더 쉽게 노력할 수 있다. 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생계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므로 더 쉽게 노력할 수 있다.

2. 이러한 환경적 요소들 중에는 개인이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내가 아는 모 교수님은 생리활동 제외하고 10시간을 넘게 논스톱으로 계산을 할 수 있다. 연령에도 불구하고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 이처럼 노력에 관여하는 환경적 요인 중 변형할 수 있는 요소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작정 노력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잘 노력할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노력하는 것도 고도의 지적활동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머리가 재능이라면 노력도 재능이지 않을까?

4. 반대로 변형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들이 있다. 종종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좋은 결과를 낸 사람들의 기사가 등장한다. 동시에 노력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선전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5. 그런데 이는 대단히 모순적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잘 풀리는 사람의 수가 많다면 애초에 기사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런 기사가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환경에서는 백날 노력해봐야 잘 될 가능성이 낮다는 증거이다.

6. 그래서 노력은 그 사람의 성실함을 측정하는 지표가 아니라 지적 능력과 주변 환경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 공감능력은 지적 능력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복사하여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겪은 상황에 자신이 처했을 경우 언제까지나 자신만의 기준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주관적 경험을 쌓아야 하며, 그 경험이 많은 상황 속에서 많은 감정과 느낌을 느껴본을 내포해야 하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상황과 알맞는 감정을 선택하고, 고착화된 프레임 없이 깊이 파고들지만 생각의 문을 열어놓고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유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쾌감에 기인해 공감을 소비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고 미루고 또 의심해야 한다. 이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보이는 공감을 표하는 듯한 행동 혹은 공감을 하지 못하는 듯한 행동은 믿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경험에만 푹 빠져 '나'의 주관적 경험과 경험 속 감정에 취할 뿐이니까. 결국 공감능력이란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껴본 메타인지가 잘 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 




'공감'이 사람들에게서 행동을 끌어내는데 의외로 매우 무력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설득' 또한 그렇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행동의 원리는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소통이 안 되고 공감과 배려가 안 된다는 것은 게으르고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상투적인 생각, 상투적인 말, 상투적인 관념, 상투적인 사람은 거짓보다 더 싫다. 




사람들은 공감하기 때문에 공감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감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공감행동을 한다. 공감을 '보여주는' 대신 '느껴주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공감"함"이 아니라 공감의 '소비'가 된 측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걸 빌미로 공감을 개 무시하며 냉소팔이 하는 인간들은 그보다 더 멍청한 거지만.



상투적인 생각과 상투적인 말로 이루어진 피상적인 관계의 증상은 수동성을 띠는 의존이다. 



공감이 결과적동조(conformity)를 끌어내기 쉽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조가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공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공감"이나 "공감대"를 운운할 때 대부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동조의 형성이지 공감이라는 감정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요점은 동조하느냐 마느냐이다. 공감은 심리/생리적 자원 소모가 큰 감정이고, 그래서 그런 감정을 매개하지 않고 동조를 끌어낼 수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배경믿음들의 공유, 그 위에서 성립하는 동일한 의도와 공유된 목적, 결과적으로 행위에 있어서의 충분한 협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혹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면, 굳이 타인들의 느낌과 정서에 '감염'될 필요는 없다.




1.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들어요. 좋은 사람 말 듣지"라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의 말도 안 듣는다. '재미 있는' 사람 말을 듣지.

2. 좋은 사람이 '공감'은 얻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공감은 의외로 무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게 훅!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공감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고 심지어 '이해관계'조차 아니다. '재미'만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3. 재미가 없는 자유는 애당초 자유가 아니고, 재미가 없는 행복은 애당초 행복이 아니며, 재미가 없는 사랑은 애당초 사랑이 아니다. 재미가 없는 합리는 합리가 아니라 규범이고, 재미가 없는 의지는 의지가 아니라 강박이다. 재미가 없는 지식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기쁨은 허무하다.

4. 재미없는 신은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어쩌면 재미 없는 존재는 애당초 없느니만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우주는 '재미로' 한 번 생겨나 본 것일 수 있다. 재미에서 모든 게 다 나온다. 재미가 존재론이고 우주론이다. 원천(origin)이고 근원(sour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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