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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7
게시물ID : databox_732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nHere
추천 : 0
조회수 : 11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10/27 00:27:14

사망한 환자의 비밀보장에 관하여

(미리 말씀드리면, 불편한 언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료인은 업무상 취득한 환자의 정보에 관해 비밀보장의 의무(duty of confidentiality)를 지고 있습니다. 일전 김종대 의원님의 발언과 관련하여 이국종 교수님의 환자 정보 공개는 다른 더 중요한 의무(안보)가 우선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공개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이 건의 경우 다른 예를 들어보면 될 것 같아요.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이 감염 질환에 걸렸습니다. 독감은 어차피 숨길 수 없으니 성병이면 어떨까요(수업에서 예시로 들었던 사례이기도 합니다). 학생은 무심코 불편감을 주소로 검진을 받았고 학교 보건 센터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 이 학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학생의 감염 사실을 숨겨야 할까요, 아니면 주변 학생의 건강 보호를 위해 학생과 가까이 지내는 이성(물론 학생의 성적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에게 관련한 사실을 언급해 두는 게 좋을까요.

정답은 없겠죠. 그렇지만 위 내용이 잠깐이라도 멈칫하게 만든다면, 이 사안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사회의 경우에는 사안을 일부 공개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하여 기숙사 관리 교원을 통한 관리 감독이나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한 전달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학교에서 감염이 급속도로 전파된 사례가 있었다면, 학교 당국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그렇게 문제로 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성적으로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겠지요.

이번에 문제가 된 강서구 사건은 위의 사례와는 다릅니다. 앞선 논의는 (살아있는) 환자의 비밀보장이기 때문에 비밀보장을 해야 한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하지만 환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어떨까요. 여전히 그는 살아있는 환자와 같은 법적, 윤리적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의 사망으로 법적, 윤리적 책무는 사라지게 될까요.

이런 내용을 논의한 블로그 글[1]을 참조할게요. 글은 AIDS로 사망한 환자의 사례를 듭니다. 환자는 가족에게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사망했고, 이후 환자의 부모가 찾아와서 환자가 왜 사망했는지 묻습니다. 이 경우, 비밀보장의 의무는 환자 사망 이후에도 이어질까요?

외국의 경우, 의무기록(medical record)의 비밀보장에 대해 법은 꽤 확고한 견해를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HIPAA 법이 보호하는 대상(covered entity)인 의학적 상태, 보험 및 지불 정보는 사망 이후에도 비밀보장의 범위 안에 들어갑니다.[2] 영국의 경우는 정보공개가 가능한 경우와 금지되는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고, 공공의 보호, 공중 보건, 부모가 자녀의 사망 원인을 묻는 경우, 정직의 의무에 의해 필요한 경우 등에서 사망한 환자의 정보공개를 허용하고 있어요.[3] 참, 국내의 경우, 의료법상 사망한 자의 비밀도 보호되는가에 관한 대법원판결에서 의사가 피해자의 수술 이력, 관련 사진 등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한 사례에 관해 의료법 제19조 "의료인[은] (중략)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에서 "다른 사람"에 사망한 사람도 포함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4]

하지만 의무기록이 아니거나 그 구분이 모호한 경우(이번 사례의 경우 환자가 입은 피해를 묘사한 것은 의무기록일까요?) 비밀보장에 관한 견해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비밀보장의 의무는 환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 그가 죽은 이후에도 이어진다고 주장하는 쪽은 환자-의사 관계의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의무이기에 비밀보장은 그 기한을 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비밀보장은 인격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환자 사망 이후에 이 의무는 계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편도 있어요. 물론 환자가 사망하면 아무 정보나 다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비밀보장의 의무가 지닌 강력함은 환자 사망 이후 힘을 잃으며 정보를 요청하거나 공개하는 사람의 의도나 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따분할 수 있는 논의를 길게 설명해 드렸어요. 이유는 권복규 교수님께서 다른 맥락에서 언급하셨지만, 의료윤리가 어떤 확정된 답을 가지고 있어서 소환하면 판결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남궁인선생님의 묘사가 과한 부분은 있어요. 그러나 그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닐 테니, "아니 의료윤리도 모르나?"라는 식의 반응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정지우 평론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공적 글쓰기와 사적 글쓰기의 문제로 살피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겠지요.

어제 귀가하던 길에 가해자의 엄벌에 대한 청와대 청원에 10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가 특정 사건에 대해 보이는 감정적 반응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Ttalgi Koo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피해자에게만 눈을 주고 가해자는 분노를 풀어놓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요. 무엇보다, 관련하여 "우리는 어디까지 (생존한, 사망한) 환자의 정보를 보호할 것인가? 그 보호의 의무가 끝나는 곳은 어디인가? 공적, 사적 글쓰기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발언의 자유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더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참고자료

[1] Does patient confidentiality end with death? Depends on definition of person. Relias Media. Sep 1, 2007. <https://www.reliasmedia.com/…/106005-does-patient-confident…>
[2] Orlando J. Disclosure of deceased person's medical records. Olr Research Report. Feb 13, 2013. <https://www.cga.ct.gov/2013/rpt/2013-R-0124.htm>
[3] General Medical Council. Managing and protecting personal information. General Medical Council. <https://www.gmc-uk.org/…/managing-and-protecting-personal-i…>
[4] 의사의 과실 존부와 의료법상 사망한 자의 비밀도 보호되는지 여부에 관한 사건 [대법원 2018. 5. 11.선고 중요판결]. 대한민국 법원. 2018년 5월 15일. <https://www.scourt.go.kr/portal/news/NewsViewAction.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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