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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세대가 응답하라1988을 보고.
게시물ID : drama_33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용사니케
추천 : 4
조회수 : 131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2/30 14:14:13
1. 드라마에서 교련복을 너무 안입는다. 우리 때에는 교복이 없어서 사복을 입었는데 사실상 교련복을 교복으로 입는 편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입었던 것 같다. 교련 시간에 굳이 갈아 입으려 하지 않아 편했다. 89년 전교조가 생기가 우리 학교에서도 6명의 해직교사가 나왔다. 우리는 전교조 탄압과 교사 해직에 반대하며 공동행동을 하기로 했는데 그건 교련복 입기였다. 학교에 몰래 대자보를 붙이고 유인물을 뿌렸다. 다음 날 교련복을 입고 등교해 학교에 항의하자는 것이었다. 다음 날 거의 모든 전교생이 교련복을 하의를 입고 학교에 나왔다. 감동이었다.
 

2. 약속을 지켜주는 쪽지가 없다. 당시에는 삐삐도 없으니 누군가 만나기로 하고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30분 정도 지나면 만나기로 한 장소 옆에 쪽지를 붙였다. “00아 기다리다 000로 간다. 1230일 오전 1015이런 식으로 붙였다. 주로 대학교 앞에서 약속을 많이 잡았는데 전봇대에는 쪽지붙일 장소가 없을 정도였다.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에는 아예 게시판이 있었다. 정봉과 장만옥이 서로 엇갈려 못만났는데 그 시절에는 쪽지를 붙였을 것 같다.
 

3. 만화방의 비중이 너무 적다. 당시 만화방은 단순히 만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접선 장소였고 식당이었고 때론 숙소이기도 했다. 하루 입장료 3천원인가를 내면 하루종일 만화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외대 앞의 오뚜기라는 만화방을 갔었는데 그 라면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내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라면은 만화가게에서 먹던 것이었다. 비결은 라면 끓이는 그릇을 설거지를 안하는 것이었다. 1인분, 2인분, 3인분의 물 양이 찌든 수프 자국으로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그런 그릇이었다.
 

4. 대학로가 안나온다. 당시 대학로는 진짜 젊은이의 공간이었다. 주말에는 차가 안다녀서 차도에서 술을 많이 먹었다. 막걸리와 소주를 사서 둥그럽게 앉아 술을 먹고 노래를 불렀다. 돈이 없으면 대학생으로 보이는 누나들에게 가서 술을 사달라고 했다. “입시 때문에 너무 힘들어 술을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다가 주로 우리의 수단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누나들은 술을 아주 잘 사줬다.
 

5. 어쨌든 드라마를 보면서 옛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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