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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영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게시물ID : drama_537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5
조회수 : 28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4/10 03:07:24
"설마, 그 김영애일라구." 
페북인가 트위터에서인가 뜬 '김영애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누군가의 짧은 글을 보며 잠깐 했던 생각입니다. 아직 나이도 얼마 들지 않았을텐데. 젊잖아, 그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나이가 50을 바라보니 그리 느낄 수도 있었겠지요. 그리고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 흑백화면의 브라운관 안에서부터 그분은 늘 생생한 이미지였으니. 

췌장암이라더군요. 제일 무서운 암. 건드리기 까다롭고 발병을 인지하면 이미 늦은. 국민학교 다니기 전부터 TV화면을 바라보면 나오던 그 얼굴은 참 곱게 나이먹어갔었습니다. 저는 흑백 수상기를 보며 우리 엄마와 막내이모를 섞어 놓은 것처럼 닮아 이쁘다, 라고 느꼈던 게 기억납니다. 

그분의 강렬한 연기를 제대로 본 것은 영화 변호인에서였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제는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는 것이 많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제가 처음 이민 왔었을 때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지요. 처음에 영화제에 출품됐던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1990)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서 차차 한국 영화는 이곳에서도 조금조금씩 시차를 두고 상영되는가 했더니, 심형래 감독의 대 망작 '디 워'가 센 마케팅,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평론가들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의 힘으로 꽤 오래(1주일은 넘게) 우리 동네 극장에 걸려 있는 걸 봤고, 실제로 그걸 보러 가기까지 했었습니다. 

영화 '변호인'이 이곳의 상영관에 걸렸을 때, 처음으로 저는 영화를 보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을 봤습니다. 대부분 당연히 낯익은 얼굴들이었고, 심지어는 개봉날엔 이곳 한인 방송국의 TV 카메라까지 현장에 출동해 관람객들의 감상평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때 영화 안에서 보여준 김영애씨의 놀라운 연기. 부림사건에 연루되어 잡혀가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보여주는 그 모성애. 그 투혼이 이미 췌장암 발병 이후에 보여진 것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김영애 씨가 1971년에 스무 살의 나이로 MBC 공채 탤런트로서 그녀의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냥 아름답고 서구적인 마스크를 가진 배우가 아니라 깊은 내면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는 사실을 제가 나이먹고 나서 실감하게 된 것이 SBS 드라마로 열풍을 일으켰던 '모래시계'에서 주인공 박태수의 어머니로 분한 그녀의 연기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 전에도 많은 작품에 나와 연기를 펼쳤겠지만, 제대로 몰두해서 봤던 것이 그 드라마가 처음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최근엔 영화 '판도라'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서도 원전에 대해 맹신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그 지역의 보수층을 연기해 낸 것, 그것조차도 그녀가 보여준 투혼의 산물이었다니, 한 인간이 고통을 이기고 만들어낼 수 있는 무엇인가의 정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람을 한 이미지로만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만, 김영애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저는 그 곱디 고운, 그러면서도 추상같았던 모래시계의 태수 어머니의 이미지, 그리고 변호인에서 돌아온 탕자(?) 송변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아들 진우를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돼지국밥집 주인 순애의 모습으로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그 화려한 다른 수많은 캐릭터 속의 인물들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가 아닌, 정말 오랜 시대를 관통해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던 배우, 고 김영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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