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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빛나지 않는 달은 꿈을 꾸는가
게시물ID : dungeon_6713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1
조회수 : 3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8/04/17 16: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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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사내는 적당히 몸을 덥힐 수 있을 정도로만 간단히 씻은 뒤 곧장 쓰러지듯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드러눕자마자 묵직한 피로감이 빠르게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사지도, 눈꺼풀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져 모든 생각이 무의식의 저편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빛나지 않는 달이 떠올랐다. 몇 번째 뜨는 달이었던가. 이곳에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달이 뜨고 졌다. 빛이 내리지 않는 땅에는 죽은 이들뿐이었다. 그 땅 위에 오롯이 서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죽었는가. 육신이 죽어 응당 가야 할 지옥에 떨어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득하게 흐르는 것이 피와 같았다. 따스한 것이 빠르게 식어가는 그 느낌은 섬뜩하게 다가오면서도 지극히 익숙한 것이었다. 달에서부터 죽은 자가 떨어졌다.
 벌써 발목까지 차오른 진득한 것을 헤쳐 어딘가로 나아갔다. 발치에 엉겨 붙는 그 느낌은 마치 사람의 손길과도 같았다. 익숙하게 그 손들을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멈춰선 곳은 달에서부터 떨어진 것이 있는 곳이었다.
 어째서. 그것의 열린 입에서 새는 듯한 소리가 빠져나왔다. "임무였으니까." 질척함이 다리를 붙드는 것이 느껴졌다. 죽고 싶지 않았어. 마치 흐느끼는 듯한 소리였으나 이곳에 우는 것은 없었다. 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임무였다." 질척거림은 점차 내 몸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 미동조차 하지 않는 입에서 간절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임무였을 뿐이다." 이내 전신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할 말은 그것뿐이냐. 명백히 원망하는 목소리. 짓누르는 힘은 점점 강해졌고, 곧 나는 질척함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엇을 더 원하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질척거림은 그저 할 말은 그것뿐이냐 묻기만 할 뿐이었다.
 달각거리는 뼈가 나를 붙들었다. 질척이는 살점들이 나를 붙들었다. 진득하게 흐르는 피가 나를 짓눌렀다. 달에서 떨어진 것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딘가 모를 익숙함에 그제야 이것이 꿈임을 깨달았다. 몇 번이고 꾸었던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벌써 이 진득한 붉은 늪은 내 몸을 거의 집어삼킨 상태였다.
 할 말은 그것뿐이냐. 원망의 소리가 온 사방에서 울렸다. "…그것뿐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것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추모의 말을 바라는가. 사과의 말을 바라는가.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갖길 바라는가. 하다못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합리화라도 하길 바라는가. 그런 인간적인 감정은 진즉 마모되어 사라졌거늘, 이런 일개 부품과도 같은 것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이곳은 대체 어디인가. 이 바닥 없는 늪은 무엇인가.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알량한 죄책감의 늪인가. 그럴 리는 없었다. 빠르게 식어가는 온도와 진득하게 엉겨 붙는 피는 나의 일상이거늘, 어떻게 인간적인 마음이 여태 남아있겠는가. 이곳은 그 무엇도 아닌, 지옥이다.
 내가 응당 죽어서 가야 할 곳. 용도를 다한 부품이 죽어 가야 할 곳. 내 손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원망을 들으며 영원히 짓눌리는 그런 지옥. 늦든 빠르든 언젠간 도달할 그곳에서 몇 번이고 가라앉는다.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더이상 칼도 총도 쥘 수 없을 때까지. 나만을 위한 이 지옥에서.
 그렇게 빛나지 않는 달은 바닥 없는 피 웅덩이 속으로 그저 한없이 가라앉았다.


 사내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불 속에 파묻혀 채 제대로 쉬지 못한 숨을 들이켜며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었다. 얼마나 눈을 붙였던가. 시계를 찾아보려 몸을 기울이던 그는 다시 침대 위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할 말은 그것뿐이냐. 사내는 꿈속에서 들었던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언젠간."
 그는 머릿속으로 미처 하지 못했던, 형식적일 뿐인, 스러진 목표에 대한 추모를 읊은 뒤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에 몸을 맡기면서.


안녕하세요. 흔한 아라드의 글쟁이입니다.
오늘의 아라드 팬픽은 레퀴엠의 이야기
일개 부품과도 같은 암살자 역시 죄책감을 가지는가

부디 즐겁게 읽으셨길 빌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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