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직장 내에서 부서가 바뀌었습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팀은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팩토리 담당 부서입니다.

어떻든 저는 ERP, MES, S&OP(+SCM), BI(+EIS), CRM

, PLM 등 기업용 시스템을 죄다 설계하고 구축해 봤고,

프로그래밍과 컨설팅을 경험했고, 최적화, 시뮬레이션, 빅 데이터 분석 등을 공부하고 실제로 해 봤거든요.

회사에서는 저를 두고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 팩토리 담당하기에 딱 적당하다면서, 통채로 숙제를 맡겨버렸습니다.

  

그 후, 하는 업무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를 중심으로 로보틱스, RPA, 블록 체인, D&A(Data Analytics) 컨설팅 비즈니스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주요 업무를 SF 라고 기재하게 되었죠 - Smart Factory 입니다. Science Fiction은 아니지만 SF이죠.

  

어찌어찌 돌고 돌아서, 꿈에 그리던 로봇과 SF를 진짜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로봇의 경우에도 진짜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물리적인 산업용 로봇 도입 컨설팅 프로젝트에서부터,

RPA라고 Robot Automation Process 를 통해 Backoffice 업무(행정/총무 업무)의 자동화도 담당합니다.

  

저는 요즘 로봇을 도입하여 사람이 하던 업무를 자동화가 가능하게 하는 컨설팅 과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품 포장 라인에 100 명이 교대로 일하고 있을 경우,

그 라인에 산업용 로봇을 40대 정도 넣으면 주야 24시간 균일하게 조업이 가능합니다.

어떤 로봇을 도입하면 되는지 로보틱스를 평생 해 온 분들과 함께 협의하여 라인 시스템을 구성하고,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로봇을 운영할 경우 로봇 시설투자 대금을 모두 뽑아낼 수 있는 ROI를 계산합니다.

통상적으로 2~3년이면 충분히 뽑습니다.

다시 말해 로봇이 들어가면 3년 안에 투자한 돈 모두 회수하고, 이후부터는 남습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로보틱스를 서둘러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을 컨설팅 프로젝트로 만들어서 경영진을 만나고 다니면서 설득하고 있는 것이죠.

  

좋기는 좋은데.... 무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지금 제가 수행하는 컨설팅 프로젝트는 사람이 하는 일자리를 날려 버리는 일입니다.

구조조정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사람의 일을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냅니다.

이 일을 죽도록 파다보니 어떻게 하면 회사를 자동화할 수 있는 지, ROI는 언제가 될지 겐또가 나옵니다.

이를 경영진에게 설명하고, 화려한 PPT 장표를 만들고 투자비용대비 효과를 들이밀면... 안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국가에서는 스마트 팩토리,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뒤쳐질 수 있기 때문에,

무려 나랏 돈을 쏟아부어 가면서 생산현장 자동화에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스마트 팩토리 추진단을 만들어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데, 상당부분 산업용 로봇 도입에 쓰입니다.

중소기업들은 해당 자금을 받아서 로봇을 도입하고, 임직원 고용을 줄이고 자동화를 달성합니다.

다시 말해 나랏 돈을 풀어가면서 사람 고용을 줄이고 로봇을 늘리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 웃기는 일은....

한국은 제대로 된 산업용 로봇을 사실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츠비시, 도시바, 혼다, 나치 가와사키 등 일본 제품이 한국의 산업용 로봇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4차 산업혁명 하겠다고 스마트 팩토리 자금을 중소기업에 살포하고 있는데,

그 대금을 받아서 중소기업들은 일본 로봇을 사다가 라인에 깔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이 낸 세금을 고스란히 일본의 산업용 로봇 메이커에 갖다 바치고 있고,

그 결과 공장 자동화를 달성하면 생산 라인의 임직원들은 직장을 떠나고 생산성이 향상됩니다.

  

STEP 1) 한국 국민이 세금을 내면

STEP 2) 한국 정부는 한국 중소기업에 4차 산업혁명에 뒤쳐지지 말라고 돈을 지원하고

STEP 3) 한국 중소기업은 스마트 팩토리를 달성하기 위해 (안하면 경쟁에 밀려 죽으니) 로보틱스 도입하고

STEP 4) 일본의 로봇 메이커가 그 돈을 고스란히 싹 쓸어담고 있으며,

STEP 5) 한국 중소기업은 임직원 고용을 줄이고, 한국 국민은 일자리를 잃고 집에 가게 되더라...

대략 이런 모습으로 요약이 되겠습니다.

    

그럼 임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동화를 안하면 어찌되느냐...

- 잘라말해서 그 회사는 망합니다.

해외 경쟁 업체들은 앞다투어 자동화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저도 4차 산업혁명 담당자가 되고 해당 업무를 쫓하다니면서 파악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 한국 기업들의 IT 수준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 해외에 비해 빠르지도 않고, IT 인력도 부족해요.

세계 IT 시장의 베타 테스트 경연장이라는 명성은 대략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먼 과거 이야기이고,

대략 9 년 동안 나랏 돈을 토목 공사에 돈 쏟아 붓고 뭔지 모를 창조경제한다고 헤매는 바람에...

IT 업계의 기반이 상당 부분 고사했고, 창의적인 기술 하나 한국에서 나오는 게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로보틱스, RPA 모두 한국은 상당히 뒤쳐지고 있습니다.

제조업 서비스업 할 것 없이 경쟁력 기반이 한꺼번에 허물어지는 심각한 상황이죠.

미국이든 영국이든 일본이든 독일이든 중국이든 한국 기업보다 못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작금의 한국은 IT 기술을 선도하는 게 아니라, 해외를 겨우겨우 뒤따라가기도 벅찬 형편이죠.

   

다시 말해,

한국이 자동화를 안하면, 한국 기업이 더 이상 계속 머뭇거리면 당연히 망합니다.

그것은 명확관화한 일입니다 - 해외 기업보다 품질도 생산성도 원가도 모두 뒤쳐지니까요.

하지만 자동화를 수행한다고 해서, 그 결과 국민들이 행복해질 가능성도 별로 없습니다.

기업은 생존할 수 있지만, 고용은 계속 줄이고 있거든요. 일본 로봇 회사만 부자가 됩니다.

   

제 자신만 생각해 본다면...

로봇과 SF를 컨설팅이 주 업무가 되었으니, "꿈은★이루어진다"일 수도 있습니다.

오랜 꿈이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꿈이 이루어졌고, SF를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한국 사회가 4차 산업혁명이 가속 페달을 밟을 수록, 제 컨설팅 비즈니스도 더 잘 이루어지겠죠.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벌이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직급도 더 올라갈 수 있고, 더 오래 일할 수 있을런지 모릅니다.

표면적으로 생각해 보면 상당히 즐거운 일입니다 -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데, 그게 세상이 원하는 바라고 하니...

   

하지만... 아마도 제 자녀들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일자리 자체가 지극히 고급 인력이 아니면 별로 필요 없게 되어가고 있거든요.

제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스산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