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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초인플레를 잡은 가상통화
게시물ID : economy_26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름없는자
추천 : 18
조회수 : 300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2/23 03:41:47
요즘 한참 비트코인 같은 가상통화 또는 암호화폐가 인기고 남미의 베네주엘라가 자국의 석유매장량을 담보로  Petro (1 Petro = 석유 1배럴)라는 새로운 가상통화를 발행하겠다는 수상쩍은 소식이 들리길래 옛날 남미에서 쓰였던 가상통화가 생각나서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세계 최초의 가상통화는 비트코인이 아니다. 가상통화(virtual currency)의 원조는 브라질의 헤알화이다. 아니 지금 헤알화는 브라질에서 현재 통용되는 정식 법정화폐 (fiat money)인데 어째서 가상통화냐고? 브라질의 현재 화폐는 브라질 Real 이다. 브라질 포르투갈어론 '헤알', 스페인어론 '레알'로 부르는데 이름부터 가상 (virtual)의 반대인 진짜라는 Real 인게 좀 수상하지 않은가? 왜 돈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여기에는 엄청난 초인플레에 시달렸던 브라질의 과거의 경제 역사가 들어있다.
 
브라질은 20세기 중반 쯤에는 개도국 중에서는 아주 잘나가는 국가 중의 하나였다. 신이 만든 땅이라는 브라질은 광대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 막대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특히 커피는 전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브라질을 먹여살리는 산업이었다. 지금도 고급커피의 대명사 아라비카는 거의 브라질이 독점하고 있다.
 
이런 경제발전에 고무된 브라질은 수도를 상파울로에서 1960년 브라질리아로 옮기고 계획도시로 설계해 대대적인 건설투자를 하였다. 하지만 수도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느라 발생한 재정적자를 돈을 찍어 메꾸느라 과도한 통화증발이 발생했다. 이건 멕시코 시티로 수도를 옮긴 이웃국가 멕시코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미의 경제상황 악화와 맞물려 60-70년대 부터 남미의 고질적인 인플레가 시작되었다. 매년 100% 물가가 배 이상 오르는 인플레가 30년 이상 계속되었고 당연히 브라질이나 남미의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로 인해 선거나 쿠데타로 정권의 바뀌어서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의례히 인플레를 진정시키기위해 물가연동제나 돈의 단위를 바꾸는 통화호칭단위변경 통칭 통화개혁(denomination) 등 경제교과서에 있는 이런 저런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하지만 인플레는 더욱 심해지기만 하고 물가가 매달 80%나 오르는 그야말로 교과서에나 보던 초인플레가 지속되었다.
 
브라질은 만성적 인플레를 잡기위해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통화개혁을 포함한 몇 차례의 강력한 경제개혁 조치를 실시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1992년에는 브라질의 물가인상률이 1200%, 1993년에는 2400% 라는 살인적인 초인플레(Hyperinflation)가 계속되었다. 아마 여기 좀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80-90년대 브라질의 무시무시한 초인플레에 대해 들어봤을 거다  매일 매일 가격이 오르니까 브라질의 수퍼마켓 점원은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매일 가격표를 갈아붙이는 데에만 쓸 정도였다. 그래서 주부들은 매일 가격표 갈아붙이는 직원을 앞서서 달려가며 어제 가격으로 물건을 사는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1992년, 부통령이었다가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프랑쿠 대통령은 페르난두 카르도주를 재무장관으로 기용한다. 카르도주는 미국 등 선진국들이 브라질 같은 후진국을 착취해서 후진국들이 못산다는 소위 "종속이론"을 주창한 유명한 사회학자 출신이었고 외무장관을 한 정치인이었지만 재정이나 경제 운용에는 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경제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초인플레를 잡으라고 재무장관을 앉힌 것 부터가 보통의 상식적인 경제 조치로는 수 십년간 지속된 인플레를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던 거다.

카르도주 재무장관은 자기는 재정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까 비주류 소장 경제학자들을 동원해서 20여년 이상 계속된 브라질의 만성적인 초인플레를 잡을 소위 "레알플랜"을 입안한다. 이 소장 경제학자들은 브라질의 인플레를 연구해온 경제학과 대학원 동창 4인방들이었다. 이 계획은 일반적 주류 경제학자라면 상상도 하지못할 "가짜 돈으로 진짜 돈을 잡는다"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아마 재무장관이 경제와 재정을 잘아는 전문가였다면 절대로 승인하지 못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엉뚱한 계획이었다.
 
그당시 브라질의 통화는 1940년대 부터 사용되던 "크루제이루"(브라질 축구팀 이름과 같다) 였는데 초인플레로 작년에 100 크루제이루이던 달걀 1판 값이 올해에는 1,000 크루제이루가 되는 식이라 이미 몇 번이나 통화개혁을 겪은 터였다. 레알 플랜은 이 크루제이루를 폐지하고 또 다른 새로운 신 크루제이루로 바꾸는 일반적인 통화개혁 대신 (그건 그동안 이미 몇 번이나 해봤고 다 실패했다) 기존의 크루제이루를 계속 통화로 쓰면서 URV 라는 새로운 통화를 도입하였다. 이 URV 는 안정된 통화인 미국 달러와 연동을 시켜서 1 URV = 1 USD 달러에 peg 시키는 고정환률제로 가격의 변동이 거의 없게했다. URV 는 Unidade Real de Valor(포르투갈어)의 약자로 영어로는  Real Unit of Value(진짜 가치 단위) 라는 뜻. 그리고 매일 크루제이루와 달러 환률을 고려해 URV 와 크루제이루 간의 교환비율을 공시하였다. 예를 들어 오늘 1 URV  = 100 크루제이루 였다면 내일은 크루제이루 가치가 10% 가 떨어지면 1 URV = 110 크루제이루가 되는거다.
 
그런데 URV 는 실제로 1 URV 지폐나 동전이 발행된 게 아니고 순수하게 표시만 하는 가상통화였다. 그래서 물건의 가격이나 월급이나 세금 등 모든 지불액수의 표시는 URV 로 하지만 실제로 돈을 지불을 할 때는 URV 화폐가 아닌 기존의 크루제이루 지폐와 동전으로 URV 교환비율로 환산해서 지불하도록 했다. 그러니 URV는 실제로 발행되거나 통용되는 화폐가 아닌 순수한 가상통화였고 그러니 과도하게 발행되어 통화량이 늘어나는 통화증발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크루제이루는 인플레로 매일 가치가 떨어지지만 URV 로 표시되는 가격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수퍼마켓 점원 들도 이제 매일 가격표를 갈아치울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조치는 강제적 조치가 아니고 정부의 권장사항이었지만 이미 수 십 년간 지속적인 인플레에 지친 브라질 국민들은 순순히 따라주어서 이 URV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크루제이루는 여전히 가치하락이 심했지만 URV 로는 물가가 아주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거다.
 
그렇게 URV 물가가 완전히 잡히고 인플레가 안정화 되자 1994년 7월달에 전격적으로 크루제이루와 URV 를 폐지하고 1 URV 를 1 헤알로 바꾸는 통화개혁을 실시하였다. 통용중인 크루제이루 화폐는 그 당시의 교환 비율에 맞춰 2750 크루제이루 = 1헤알의 교환비율로 바꾸어 주었다. 그 때 등장한 새로운 화폐가 바로 현재의 브라질 화폐인 브라질 헤알 또는 레알이다. 이름은 URV 의 중간 단어 Real을 딴 거다. 2018년 현재는 1 USD 달러 = 3.2 헤알 정도의 환률을 유지하고 있고 인플레율은 연간 3% 정도로 안정적이다.
 
그후에 브라질 경제는 안정된 헤알화 덕에 악성 인플레가 완전히 사라지고  안정된 물가를 유지하였고 경제도 정상화되어 경제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 이런 놀라운 경제적 성과 때문에 이 정책을 성공시킨 카르도주 재무장관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서 당시 프랑쿠 대통령 다음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95년 부터 2003 년까지 8년간 브라질의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브라질은 불과 20여년 전에는 초인플레에 시달리고 경제가 엉망인 전형적 남미의 후진국이었지만 2000년 무렵부터는 경제발전이 매우 빠른 모범적 개발도상국 5개국을 의미하는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첫머리 멤버가 되었다.
 
수 십년간 만성적인 초인플레에 시달리던 브라질에서 단기간에 기적같이 초인플레를 잡고 안정적이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는 기적을  만든 것이 바로 브라질의 URV라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발행도 되지않은 가상화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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