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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노자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상 1
게시물ID : emigration_33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안마마
추천 : 4
조회수 : 213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10/06 17:34:35
요새 시간이 남아서 시리즈로 올릴 생각입니다. ^^

제가 나름 외국 생활하면서 느낌점을 쓴거예요. 별 내용은 없지만 심심풀이로 보세요.

들어가며

하지 않게 일을 그만두고 하는 일이 없을 놀고 있는 나에게 서유럽에서 자그마한 케쥬얼 카페 레스토랑을 하는 동생이 와서 자기 일이나 도와주라고 하여 강제 외국인 생활을 했던 지난 6개월 간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쓴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계속 관리직 일을 하던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영업과 같은 자그마한 카페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고 모아놓은 돈도 떨어져가고 일도 쉽게 구하고 있던 때에 외국에서 잡은 동생의 제안에 당장에 가보자라는 마음이 들어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 언어적 문제가 맘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어떠냐. 나름 공부 해본 혓바닥이라 금방 적응하리라 라는 마음가짐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리멸렬한 비자와 절차는 인터넷에 많이 나와있고 사람마다 케밬케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마디 하자면 하면서 오래걸리고 하면서 일이 진행되는 사람 사는 지극한 인간적인 행정을 보여주더라 정도다.

 

적응기

 

회사일이든 카페일이든 일이란 맥이 있기 마련이고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틀렸다. 오만했다. 솔직히 나름 규모있는 회사에 온갖 관리기법과 툴을 사용하고 사회 내부, 외부 업체들과의 미팅에 다름 길들여졌던 나는 내가 일을 조금은 하은 편이라고 자만하고 있었기에 조그마한 카페 레스토랑 일이 어렵겠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느꼈다. 정작 걱정하던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입이 똥입이고 센스가 똥센스였다. 나름 커피를 많이 마셔봤지만 원두의 종류가 그리 많으며 식자재의 다양함과 위생 관리 절차는 그리 귀찮게 복잡한지 물류관리기법이라도 다시 공부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정도다. 근데 무엇보다 어렵게 했던 것은 손님을 접객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눈치와 센스가 똥망이 사람이었다는 알게 되었다.

 

홀을 관리한다라는 개념이 단순 그릇을 치우고 오더를 받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개념, 작은 곳이라고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까운 거리에 고객과 내가 있기에 눈치 빠르게 등을 긁어 있어야 함을 배웠다. 부분은 아직도 내가 모자란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눈치가 매출 뿐만 아니라 팁으로도 이어지기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예로 처음 어리 버리 오더를 받는 것과 음료나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치우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그것만 하기 바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오더를 다른 테이블에 배달하는 실수를 하면 당황하고 그럼 실수하고 악순환이었다. 물론 고객과 대화는 꿈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적응 되고 훌륭한 고객들의 가르침 덕분에 실수의 빈도가 적어지고 실수를 하더라도 통밥을 굴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기응변을 이제 조금 시작하기 시작했다. 

 

물론 외국놈이 와서 일을하고 있기에 진상 손놈들이 없는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생각하는 그런 노골적 차별과 무시는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한국에서 간혹 제조업체 미팅을 위해 현장을 방문을 하면서 보았던 외노자 같은 대접은 받아 않았다. 물론 칭크라던지 내가 간혹 알아 들었을 자기말 알아들었다고 짜증내는 년놈들이 있지만 그럴때면 옆에서 저런 똥들도 있다고 위로해 주는 분들도 계셨다.

 

현지분들과 현지 손놈들

 

내가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이 도움이 되었고 긍정적 오지라퍼들이 알려주는 깨알같은 팁들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나이대가 나와 비슷한 현지 오지라퍼는 나의 현지 친구가 되었다. 이쪽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현지분들이 있다. 어김없이 오후 3시즘 되면 나타나는 중절모를 할아버지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격일로 찾아오는 할아버지는 손엔 신문을 들도 나타나 에스프레소와 물을 주문하고 앉아 신문을 정확히 1시간 10 가량 보고 일어선다. 말은 별로 없으나 날이 좋으면 좋다 나쁘면 나쁘다 정도의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다. 간혹 기분이 좋으실 조각케잌을 주문하시는데 그때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테이블 손님들고 주고 받는다. 여기 할아버지들도 주로 자기 젊을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진 신사같은 정장차림에 예의바른 말투로 말하기에 나로썬 아주 반가우면서 먼가 터줏대감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손님으론 아주 아름다운 여자인데 나름 나와 대화도 하고 살갑게 인사도 한다. 그리고 나름 나도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작업을 걸고 싶었다. 보며 자기는 케이팝을 좋아한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름의 현지화 전략으로 친해지면 인사로 뽀뽀도 하는 사이가 되어봐야지하는 목표를 주었던 여자다. 금발에 키는 170정도 되어 보이고 날씬하다.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는지 간혹 운동복 차림으로 오는데 레깅스를 입고 때면 저절로 눈이간다. 근데 이분은 유부녀였다. 그것도 남자애 둘이나 있는 유부녀. 한번은 가족이 같이 적이 있는데 내가 쫄리더라. 남편은 어찌 그리 생겼는지 크고 생기고 애들은 인형들이고. , 여기서 느끼는 것이 있다. 애들이 얌전하다. 한국에서 자주 보던 애새끼들이 뛰어다니고 물건 건들이고 그걸 방관하는 엄마들이 내겐 흔한 풍경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런 모습을 본적이 없다. 간혹있는게 아니라 6개월 동안 많은 아이들이 왔었으나 한국 애들 같은 아이를 본적이 없다. 어떻게 하는거지?? 집에서 애를 잡나?? 아무튼 뛰어다는 아이들은 없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는 아이들이 있긴 한데. 그럴 땐 나의 한국적인 인내력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괜찮다고 하면서 빵이라도 하나 주면 지역주민의 대인배가 되어가는 했다. 여기에서 목격한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바로 부모들이 나서서 아이에게 구도로 경고하고 공공장소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아이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곤 바로 목줄을 채우고 데리고 나간다. 진짜다 여기 아이들한테 목줄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 혹은 사춘기 걸린 쓰레기들은 감당이 안된다. 특히나 여기 손놈들 반이 넘는 비율로 대가리에 피도 마른 것들이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격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적으로도 활발하다. 번은 고딩으로 보이는 남학생 놈들이 와서 괜히 시비를 걸었다. 눈을 뜨라는 말은 알아 듣냐는 나도 성격 하기 때문에 그런말 하지 말고 시킬꺼면 시키고 아니면 나가라고 하는데 사춘기에 있는 녀석들이 쉽게 말을 듣겠는가?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던 중에 오지라퍼 친구가 녀석들에게 뭐라고 신경질을 내고 평안의 장소를 망치지 말라며 말그대로 안아 들어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 같은 남자지만 멋지더라. 참고로 오지라퍼 친구는 치는 190 정도에 덩치는 끼니마다 소를 잡아 드시는지 덩치가 소만하다. 말은 조금 느린 편이지만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하지만 내가 친근함을 느끼는 부분은 여기 현지인들과는 다르게 한국인의 머리 크기를 가지고 있어 대갈장군 느낌이 있다. 서양인 처럼 생간 한국사람의 느낌? 벽돌공을 하면서 트레이너도 겸한다고 한다. 그래서 잘생긴 마동석 느낌이다. 친구는 희한하게도 내가 곤경에 빠질만한 상황일 주위에 있어서 도와준다. 고마우면서 부담스러운 존재다. , 서양인 치고는 꽁짜 음식을 엄청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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