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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대 설치담
게시물ID : freeboard_12735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_Kei_AN
추천 : 0
조회수 : 3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2/20 23:32:37

신축빌라 치고는 빨래건조대 하나 존재 하지 않았다.

거실에는 러그가 있고 그 옆에서 빨래들이 나란히 창의 볕을 무럭무럭 받으며

썬탠하듯이 누워있는 모습은 손님이 오지 않았을 때의 일상적인 집의 풍경이었다.

물론 러그를 깔아둔 것은 인테리어와 방한의 목적도 존재하지만 사실 가장 큰 목적은

강이(고양이) 털을 빨아들이라고 깔아둔 것이기 때문에,

그 옆에 있는 빨래들도 마찬가지로 복슬거리는 털투성이로 변모하기 마련이었다.


저번에 고료가 들어온 김에, 주변 시공업체에 전화를 걸어 건조대 가격을 물어보니 15만원을 달라 한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 가격이면 차라리 내가 직접 달고 말지' 하면서 부들거리며 생각했다.

유통과정이란게 이쪽에서 오래 일하면서 깨우친 바.

룰루 궁쓰듯이 '커져라-!'하며 뻠핑되는게 문제기도 하지만,

것도 쿨타임 없이 중간에 총판 도매 소매로 2,3회 스택이 박힌달까.

건조대 값 자체는 그리 비싸지 않다. 1.5M짜리 스텐 4열이 2.8만이었으므로.

헌데 2.8만짜리 직판 물건이 중간 과정을 통해서 진격의 거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소비자는 그 날 깨달았다. 유통에 묶인 굴욕을.

협상을 할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가격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을 넣으며 구입절차를 완료했다.

인터넷은 참 빠르다. 쿡 누르는 순간이면 다음날에 스윽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NPAPI와 ActiveX가 나를 방해하긴 한다지만,

아무도 나를 막을 순 없으셈 ㅋ!


 처음, 설치할 위치를 제대로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가로 1.1미터, 세로 2.4미터의 세탁실에서 세탁기와 보일러가 차지하는 공간이

0.8미터 정도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1.1x1.6.

툭 튀어나온 정 가온데의 LED등의 폭이 24cm였고 외벽쪽으로 10cm정도 더 가까히

위치하기 때문에 정 가온데에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 해서 좌나 우로 12cm를 이동시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누가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꽤나 번거로운 구조인데,

심즈처럼 꾹 클릭해서 꾹 옆으로 옮기는 것 따위의 편의성은 심몰레온이 없는 이상 불가능 하겠지.


위치를 잡는것 자체는 사실 크게 어려울게 없다.

머리를 써서 구석에 3M양면접착제를 바른 기준대를 하나 세우고,

길이에 맞는 실에 수성싸인펜을 껴서 호를 하나 긋고,

다른쪽에서 하나 긋고 하면서 접점을 찾아 X표시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굉장히 쉬운 편이다. 천장을 90도 이상으로 올려다 보느라 목이 좀 아픈건 빼고 말이지.


큰 산은 단연 앵커를 박을 구멍을 타공하는 것인데,

갖고 있는 타공용 공구래봤자 마끼다 10.8v 해머드릴과,

싸구려 스킬OEM 500w 해머드릴뿐인데,

앙카의 길이는 7cm정도 되는데 파고들 수 있는 한계점이 5cm정도 되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전 집은 500w급으로도 세탁실과 화장실 선반을 박고 이곳저곳 구멍을 내는데 잘 쓰였는데,

생각해보면 그 집... 약해 빠진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약 3시간을 분진을 마시며 구멍을 뚫고 난리를 부렸지만 마의 2cm를 더 뚫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었다.

10.8v 배터리는 금세 소모되었고, 500w 해머드릴의 모터는 스파크를 뿜어대는 통에 더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근처 철물점에서 빌려온 800w 해머드릴과 콘크리트용 비트조차 마의 2cm를 뚫지 못했다.

뭐 이건 일본 방송중에 신소재기업과 드릴기업의 경쟁방송...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아, 당사자로써는 모스크바를 바로 앞두고 회군하는 나폴레옹의 기분.

그랜라간이야 뭐 노오오오오오력과 그으으으으은성과 나아아아아아암자로 그런걸 극복 한다지만,

한낱 조잡한 PVC와 철따위로 이뤄진 내 드릴들은 그런 염원따인 아웃오브안중이다.

사실, 그걸 바라는 자체가 헬조선틱한 거지. 결국 나는 GG를 치고 메세지로 이전에 연락했던 업체에 문자를 보냈다.


'건조대는 있는데 설치만 가능한가열. 위치는 다 찍어두었슴.'

'4만원 콜?'

'... 콜'


1cm당 2만원 꼴인가.

남은 2cm를 마저 못뚫어서 4만원을 들이는게 원통하긴 했지만, 할 수 있는게 뭐 있나. 돈 쓰는 것 밖에 없지.

체면이고 체통이고 뭐고 사실 그런건 이걸 시작하기 전부터 없던 것이긴 했으므로,

나는 지갑이라도 열어 나의 자존심과 만족감을 채우는게 더 시급했다.


다음 날 오전. 인부 한분이 도착했다.

짧은 사다리 하나와 해머드릴 하나를 갖고 왔는데 포스가 영 심상치 않다.

그는 가츠와도 같았다. 왁스로 세운 머리 한 끝 한 끝은 그 하나로도 구멍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오랜 세월 작업으로 단련된 알찬 근육들이 그를 감싸는 분진이 묻어 탁해진 검은 작업복 밖으로도 윤곽을 드러나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푸르고 길고 윤기나는 보쉬 GBH2-26DFR로터리 해머드릴은...

그것은 해머드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사실 가츠같다는 덕내나는 생각을 하게 된건, 그의 음성이 굉장히 낮고 말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세탁실로 들어가서 구멍을 보더니,

그의 해머드릴로 사정없이 2cm를 더 넘게 뚫어버렸다.

그 순간은 한 구멍당 2초도 안되었을까.

위잉 하는 순간 2cm의 공간은 숨도 쉬지 못하고 함락되어 버렸고,

500w, 800w해머드릴도 몇 십분 난리를 부려도 뚫지 못하는 그것을, 보쉬는 가능했다.

승리의 보쉬 로터리 해머! 진리의 보쉬 로터리 해머!

나는 겸허히 그 결과에 승복하고 그의 통장에 4만원을 입금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와, 그의 드릴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였다.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무뚝뚝하게 문을 나서며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며 나지막히 말하였다.

역시, 말하는 투도 가츠 용병시절 같다니까.


그리고 깨달았다.





'그래. 보쉬 GBH2-26DFR을 사자.'

...

나란 공구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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