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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불러온 오래전 기억
게시물ID : freeboard_13766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종상
추천 : 0
조회수 : 14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28 11:28:48
원래 한국 뉴스를 자주 들여다보긴 하지만, 이렇게 시시각각 새로운 것들이 터지고, 또 그런 것들을 기다리며 봤던 적이 있는가 싶습니다. 게다가 TV 조선까지 검색한 적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이 지금 터진 사건이 너무 크다보니 그런 것이기도 하고. 문제는 이런 궁금증과 기다림의 끝은 결국 허무함 같은 걸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던건가 하는 그런 허무함.

시국 선언이 이어집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저는 아주 오래 전,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연속된 시국선언 뉴스를 떠올립니다. 1979년 저는 국민학교(초등학교라는 말이 입에 안 붙는군요) 5학년이었습니다. 10월 27일 학교에 등교했을 때 우리는 '대통령 유고'라는 말이 뭔가를 궁금해 했었습니다. 거리엔 이른바 '호외'가 뿌려졌고, 그 장면은 우리에게 참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줏어서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날 오후 또 호외가 뿌려졌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집에 갈 때도 그걸 줏어 들고 갔고, 어머니께서 읽어 주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국선언'의 소리들. 세상이 바뀐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벌써 그 때 "전서리가 내린다"고 말들을 하곤 했습니다. "엄마, 전서리가 뭐야? 전두환이 전서리라던데? 서리처럼 내린다고?" 아마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했던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직책을 붙여 말한 거겠지만,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 큰일나."  그리고 서리가 내린 어느날 아침,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고 80년 광주의 비극은 그렇게 잉태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굳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싸운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싸웠습니다. 그리고 80년의 비극이 지나간 7년 후, 국민들은 결국 승리를 쟁취해 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한 욕심은 민주정부 10년을 거친 이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10년 가까운 세월, 어렵게 이뤄낸 민주주의가 이렇게 빨리 무너지고 망가질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생생히 목격해야 했습니다. 역사의 반동이 우리의 참담한 탄식을 자아내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역시 순리가 아닌 것들은 참 이상한 곳에서부터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유신 체제가 그렇게 뜻밖에 무너졌던 것처럼. 정운호의 거액도박으로 시작된 수사가 이상하게 점점 권력의 가운데로 들어가더니 결국 여기까지 온 겁니다. 도박사건의 수사가, 최순실이라는 한 이상한 괴무녀가 대통령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국정을 조종해 왔던 사건으로까지 번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역사에서 없었던 기회 하나를 맞고 있습니다. 다시 시국선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때, 새로운 청소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지금 국민들이 조금 더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합니다. 이 청소를 제대로 못한다면 우린 다시 새로운 전두환을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나서는 민주주의의 길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할 겁니다. 

몇십년 전 봤던 어떤 것들이 자꾸 이렇게 눈앞에 밟히듯 보이는 것은, 제 기억에 그게 참 깊게 박혀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리고 그때 일어난 일들을 다시 보지 않고 싶어서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새 나라를 만들어내고 나면, 우리는 참 알고 싶은 것들이 많을 것이고, 그것들을 알 수도 있을 거니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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