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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걸렸던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5750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romstar
추천 : 5
조회수 : 6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18 23: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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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1.JPG



음.. 내일 출근인 직장인이 심심해서 써봅니다.

제목 그대로 위암에 걸렸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서른네살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작년엔 서른세살이었겠네요. 그러니까 한국 나이 서른셋이 막바지로 가고 있던 12월 16일.

저는 미루고 미루던 그해의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매년 받으라고 하는 바로 그 검진이죠.


하루 휴가를 쓰고 아침에 일찍 선릉의 모처로 가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남들은 위 내시경을 2년에 한번씩 한다는데.. 저는 매년했었습니다.

그날도 마지막은 수면내시경으로 장식했죠.

수면주사 맞고 한숨자는 기분이 은근 좋더라구요...ㅋ 우유주사 왜 맞는지 이해가 되더라는..


끝나고 나니 검사하신 선생님이 조직검사 한 군데 했다고, 추가 결재하고 귀가하셔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1주일 동안 자극적인 음식과 술을 피하라는 말과 함께...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26일 월요일 아침.

그해의 휴가가 이틀 남아 있던 저는 26일 월요일과 27일 화요일까지 휴가를 내어놓은 상태였습니다.

팡팡 자고 있었습니다.

팡팡팡 아주 그냥... 푹자고 있는데 9시에 전화가 옵니다.

네 자느라 안받음.

11시에 일어나보니 검진 병원에서 조직검사 결과 관련해서 연락바란다는 문자가 와 있습니다.

전화해보니 내일 오전 신분증하고 현금 3만원 챙겨서 오랍니다.

지금가면 안되냐고 하니, 담당 의사가 오늘은 오전밖에 없어서 내일 오랍니다.

알았다고 하고 끊습니다.


이제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왜? 조직검사 결과를 왜.. 와서 들으라고 하나?

신분증은 왜 가져오라고 하나??

3만원은 뭐지????

싱숭생숭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검진병원을 향합니다.

신분증을 보여주니, 제가 내시경을 했던 방으로 안내를 해주더군요.

들어가니 그날 내시경을 했던 선생님이 앉아 있습니다.

첫 마디는 '조직검사를 했던 곳이 좀 안좋게 나와서 큰 병원을 가보셔야 할거 같다' 였습니다.

말을 좀 돌리시는 거 같아서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아니, 뭐가 어떻게 안좋은거냐?' 라고 여쭤보니,

말을 좀 더듬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인환세포암이라고 좀 예후가 안좋은 걸로 나왔다. 빨리 가보셔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요즘 의술이 많이 좋아졌으니, 치료 잘 받으시면 괜찮으실겁니다. 밖에서 서류 받으시고 상급 병원 가보시면 됩니다'

라는 말로 저의 암선고는 끝났습니다.

정말 저게 다였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카운터로 가보니, 조직검사 슬라이드와 진료의뢰서 등을 챙겨주더군요.

3만원은 조직검사 슬라이드에 대한 보증금이었습니다.

다시 가져다 주면 돌려준다며...

그리고 병원 예약 힘들면 연락하라고 하더군요. 대부분의 병원과 협력이 되어 있어서 빠른 처리가 가능하다고..


암튼 그렇게 병원을 나서는데, 아직은 정신이 있어, 회사에 전화를 합니다.

연말에 이틀이나 휴가를 써서 삐져있는 파트장에게 전화를 합니다.

왠일로 휴가중에 전화를 다하냐는 파트장에게 폭탄을 떨굽니다.

파트장의 패닉 섞인 반응에 현실이 무엇인가 서서히 느껴집니다.


다음 순서로 어머니에게 전화합니다.

일을 하셔야 하는 분이라 일단 담담하게 전하고, 어머님도 담담히 들으십니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 출발합니다.

어? 근데 집에 가는 방법이 생각이 안납니다.

버스 정류장 하나를 걸으니 집에 가는 방법이 생각이 납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니 '인환세포암'이 뭔지가 궁금해집니다.

폰으로 검색을 하니, 온갖 안좋은 얘기들이 한가득이더군요. 특히 젊은층에서 진행이 빠른 암으로 악명이 높다며..


집에 돌아와 보험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부터 찾아봅니다. 

보험 좀 많이 들어놓을걸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 상황과 비용이 감당이 될지 그게 가장 먼저 걱정이 되더군요.

아버지는 집에서 쉬시고, 어머니 수입과, 제 수입으로 아버지 사업 빚을 갚고 있는 집의 상황으로서는..

보험금이 충분치 않으면 답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이런 저런 걱정이 들어도 일단 병원 예약을 해야했습니다.

길건너가 서울삼성병원인지라 예약을 하는데, 어느 과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기껏 소화기내과 쪽을 알아보니 1주일 뒤를 말하더군요.

검진 병원에서 예약을 도와주겠다던 말이 생각나 전화를 해봅니다.

서울삼성병원 예약 좀 도와달라고..

바로 다음 날 일정으로 오전 8시 30분 암센터 진료를 잡아주더군요.

이건 정말 고마웠습니다.

여러분도 암에 걸리면 이런 도움은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 암에 걸리지를 마시고요 왠만하면...


여튼, 암의 기수도 모르고, 전이 여부도 모르고, 얼마나 안좋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그냥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만 알고 있는 상황은

정말 최악입니다. '죽나?' '내가 왜?' 라는 생각이 그냥 머리속을 지배합니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하루였네요.


세벽 두 시까지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겨우 잠들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암센터에서도 무슨 중요 요인이라도 맞이 하듯이 맞아주더군요.

솔직히 스스로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 환자로 와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8시 병원 도착하니, 8시 반부터 전신 마취에 필요한 모든 검사와 위암 확진을 위한 검사를 오전에 모두 진행합니다.

예약 순서를 모두 무시하고 진행된 검사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점심을 먹고 주치의를 만나니, 2주뒤 수술 일정을 잡아주시더군요.

1기로 추정되나, 분화도 낮은 암으로 위의 아래쪽 절반을 잘라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항암 필요 여부는 수술 후 정밀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시구요.


1기라고 하니 막힌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음...

그리고 수술 잘 받고 멀쩡히 회사도 잘 다니고 있죠.

항암도 필요 없어서 안하고 있습니다.

이 후의 이야기들은 사실 별 다른게 없어요.

회사 다니다 휴직하고 병원가서 수술받고 퇴원한게 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진단을 받는 과정에 다 있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이글을 쓴 이유는.

그냥 쓰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1기에 해당하는 조기 위암은 요즘 정말 많이 발견됩니다.

'흔하다'라고 하죠.

근데 잘 모르세요. 진단을 받는 상세한 과정이랄까요.

암 선고를 받는 기분이라던가..

많이들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암에 걸린걸 알았을 때의 기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응?' <- 이거 그 자체죠.

그리고 환자로서 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슬플 겨를과 놀랄 겨를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알리고, 휴직을 하고, 병원을 예약하고, 보험금을 신청하고.

이 모든 일이 하루에 일어납니다. 환자는 바쁩니다.

사실 저 과정을 멘붕상태에서 혼자 감당했던게 가장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외로웠다고나 할까요? 난 미치겠는데, 세상은 절차를 요구하더라 라는거?

생각보다 남들에겐 그저 남일이라는 거. 난 암걸렸는데!! 남들 한테는 그냥 '헐!' 한번 하고 마는 그런일이라는 거.


암튼 그래서 저는 수술을 받고 1주일만에 퇴원을 해서, 휴직기간동안 해외여행도 갔다오고,

식단을 바꿔서 건강해지고, 살도 빠지고(15kg이 빠지더군요..ㄷㄷ) 그랬습니다.

다행히 보험금도 치료비에 맞게 여유가 있어서, 돈 걱정할 필요는 없었구요.


뭐 나름 쉽게(?) 암을 겪어서 제 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암투병하시는 다른 분들에 비해, 뭐 뼈하나 부러진 사람처럼 넘어가서 그저 감사할 뿐이죠.

늦게 발견하지 않도록 도와준 이 세상(?) 이랄까요? 발전된 의학기술이나, 국민건강보험의 의무 검진 등등..에 감사하고,

어떻게 갚아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여러분도 하고 싶은거 하면서 열심히 사세요. 암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은 결국 그거네요.

 
출처 암 진단서는 서울삼성병원이 발급해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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