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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의 추억 - 미국 비자 받기
게시물ID : freeboard_16242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꽁알아빠
추천 : 0
조회수 : 3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06 15:55:53
J1 비자로 미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격은 방문학자.


주변 모든 사람들이 공부랑은 담쌓은 것으로 생각하는 내가 방문학자 타이틀이라니...


......


나의 이름과 와이프, 아들 둘의 이름이 적힌 DS2019(미국거주자격서류 격) 4장을 들고보니 왠지 감격스럽다.


뭔가 감격스럽지 않아도 감격스럽다 해야할 기분이다.


..

나를 초청하신 백교수님이 조언 겸 겁을 준다.


영어 못하면 비자 인터뷰 통과 못한다고, 실제로 그래서 비자 인터뷰 떨어져서 미국 못 온 교수님이 있었다고......


......


내 인생 목표가 20살까지 부모 밑에서 살고, 30살까지 공부하고, 40살까지 돈 벌어서 그 돈으로 나머지 인생을 한량으로 살고 싶었는데......


일단 공부가 40이 넘도록 끝나질 않았으니, 일단은 인생 목표는 10년씩 밀린 셈이다.


그 와중에 무엇을 했건 내 인생에 후회는 없었는데, 처음으로 영어 공부 안한게 후회로 밀려왔다.


.......


인터뷰 떨어져서 미국 못가면, 그간 설레발 쳐놓은 사람들로부터 잠수 타야 한다. 어디 인적 없는 시골에서 1년간 잠적해야 한다.


수능 볼때도 긴장안했는데, 이게 또 뭐라고 사람 피가 바짝 바짝 마른다.


돈은 개뿔도 없지만, 어쩌다 분양받은 은행 소유의 집을 과감히 팔았다. 다행히 미친듯한 한국의 집값 상승은 은행 빚을 갚고도 어느정도 통장을 통통하게 해주었다.


은행잔고증명서를 뗐다.


증명할게 너무나 많다.


와이프의 재직증명서, 경력증명서, 의료보험 등등


나의 강사경력증명서.. 음 난 이것밖에 없네..


아이들 예방접종증명서... 


각종 증명서란 증명서는 다 뗐다. 


영문 발급이 되지 않는 것은 영문 번역 공증까지 받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대비하여 각종 예상 질문들을 뽑아서, 대답도 적고 외우고 또 외웠다.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2017년 1월 인터뷰날...


떨어지는 것도 문제겠지만, 인터뷰 잡기 위해 낸 돈도 장난아니다. 진짜 미국 대사관은 인터뷰 비용만으로도 장사해도 되겠다.


당일 아침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어났다.


어제부터 챙기고 다시 챙긴 각종 서류들을 가방에서 다시 확인하고 아침부터 부산히 움직여 와이프랑 대사관으로 택시타고 갔다.


인터뷰 예약 시간 10시 30분. 10시쯤에 대사관 앞에 도착하여 숨을 크게 쉬었다.


다행인지 줄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입구로 가서 비자 인터뷰 예약증을 들이밀었다. 입구 담당자가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한마디 한다.


"여권 주세요~"

"예?"

"여권요~"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진다. 아침까지 한번 더 확인한다고 여권 4장을 책상앞에서 열어 보고 그냥 둔 것이 생각났다.


"아~ 여권 있어야 돼요?"

"하하하, 이 사람아~ 총 없이 전쟁터 나갈거야?"


나이 좀 드신 분이셨는데, 부드럽게 꾸짖는다.


안그래도 돌아가지 않는 두뇌는 거의 순두부 수준이 되었다. 아무 생각도 안난다. 옆에 있는 와이프 볼 면목이 없다.


멍하니 있으니, 한마디 하신다.


"혹시 모르니 한번 올라가 보세요."


그렇게 2층 대기실로 올라갔다. 앞에서 서류 받는 여자 두분이 보더니 여권이 있어야 한단다. 당연한 소리.


마침 그날은 오전만 인터뷰 하는 날이었다. 오전 11시 30분까지 오면 인터뷰 가능하다는 말에 잽싸게 다시 내려왔다.


시간은 10시 30분. 집까지 택시타고 빨리 왔다 갔다하면 한시간은 될 듯.


택시를 잡아 탔다. 


하지만 시간은 오전. 광화문과 종로, 남산터널로 이어지는 길이 시골 동네에 쓸데없이 만들어 놓은 고속도로처럼 한가할 일이 없잖는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멀미가 난다. 와이프는 아무 말이 없다. 뭐라고 변명할 것도 없다.


살면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덤벙거리다가 무언가를 까먹는 사람이었는데, 영락없이 내가 딱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난 예약된 날짜에 인터뷰를 못하면 나가리 되는 줄 알았다. 신청 비용 돈 백만원 그냥 날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택시안에서 멀미까지 나며 폰으로 검색한 결과, 3번까지는 연장 가능!!!


해가 쨍쨍하게 떠 있었지만 검었던 하늘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와이프한테 연장 가능하다고 말하니, 신경쓰지 말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 날 위로해준다.


현재의 내 상태가 쌍욕 날릴 필요도 없이 혼이 나가 있는 것을 느꼈나 보다.


그렇게 2일 뒤에 다시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 실제로는 그날이 지나고 대사관에서 인터뷰 불참으로 분류되고 나서 다시 날짜 지정 가능함 )


집에 와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미국의 백교수님이 계속 카톡이 온다.


"비자 통과 되었어요?"


뭐라고 답을 할 수가 없다. 여권 빠뜨리고 가서 빠꾸 먹었다고 당당히 말할 자신이 없다.


그냥 다른 이유를 핑계대고 인터뷰 날짜를 미뤘다고 말했다.



....


다시 인터뷰 날!!




여권부터 챙겨들고, 준비한 서류들을 확인하고 대사관에 갔다.


2층까지는 무사 통과. 서류 확인 후 대기자들 자리에 앉았다.


..


인터뷰 대기자들은 앞을 보고 있으라는데, 사람이 그게 쉽나.


두리번 거리면서 각 창구에서 심사를 받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비자받으려는 목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 어떤 창구는 쉽게 나가는 반면, 어떤 창구는 시간도 길고 심사관의 표정도 안좋고, 탈락되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긴장하지 않은 척, 센 척하며 앞에 앉아 있는 애기랑 농담도 하였지만 오금이 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르바이트생인지 대기를 돕는 사람이 우리 번호를 부른다. 다음을 위해 대기하란다.


그렇게 서서 잠깐 있었나보다. 창구가 비었으니 창구로 가라는 안내를 듣고 앞으로 나갔다.


우리 기준으로 제일 앞쪽에 창구 두개가 비어 있었다. 오른쪽 창구는 좀 전에 까다롭게 심사받던 창구였다. 난 왼쪽 창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그러다가 오른쪽 창구를 지나갈때 슬쩍 창구에 있는 심사관을 보았다.


순간 놀랐다.


좀 전에 심사하던 분이 교대 되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여자 심사관의 미모가 얼척없이 미인이었던 것이었다.


난 나도 모르게 와이프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서서 오른쪽 창구로 쑥들어갔다. 


뭐, 이건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본능이었으리라.......


그렇게 창구 앞에 섰다.


사람들 조언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쫄지 않은 듯 인사를 했다.


"Hello~"


심사관이 우리를 보고 웃는다. DS2019를 들이밀었다.


서류를 본 심사관이 "퍼펙트"라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미국 애들은 뭐 주면 무조건 퍼펙트란다. 보지도 않고 퍼펙트부터 외치는 듯...


그 흔한 '미국 왜 가냐'라는 질문도 없이 혼자서 퍼펙! 퍼펙! 굳! 굳! 이러면서 서류를 넘긴다.


그러다가 갑자기 와이프 보고 묻는다. 


일 그만뒀어?

뭐?

일 그만뒀냐고?

아~ 아니 휴직했다. ( 원 이어 베이케이션.. 뭐 이딴 대답 했는 듯 )

그럼 사바티칼로 가냐?

뭐?


...

진짜 아오 저 사바티칼... 저게 당시 들리지도 않았지만... 뭐? 한마디 했다고 ....


그랬다고....


심사관이 갑자기 뒤에 있는 여자분을 부른다.


통역관이다. 


쫄았다. 미국에 연구하러 간다는 놈이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것이 이미 뽀록났다. 


...


통역관이 퉁명스럽다. 그냥 퉁명스러운게 아니라 기본적인 영어도 못하는 놈이 미국은 왜가? 하는 듯한 경멸감이 포함되어 있어 보였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와이프도 그렇게 느꼈으니....


좀 화가 난다. 내가 영어 못하는 거랑 당신이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표정까지 지을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나의 얼굴은 최대한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연구년으로 가시는거에요?"

"아~ 아니에요. 전 교수가 아니고, 강삽니다. 1년간 연구하러 갑니다."

"네. 알았어요."


그러고는 심사관과 통역관이 뭐라뭐라 얘기한다. 이제는 심사관이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통역관이랑만 얘기한다.


불안한 마음에 기다리고 있던 찰나......


제니퍼 로페즈 닮은 정말 섹시하고 이쁘게 생긴 그 심사관이 한마디 한다.


"Good!"


그러고는 여권은 빼고 서류만 다시 내준다.


뭔 상황인지 멍하게 있었더니, 여전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통역관이 한마디 한다.


"네, 통과되셨고요, 여권은 나중에 우편으로 갈거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난 심사관을 봤다. 그녀도 나에게 눈을 마주쳤다.


안되는 영어지만, 너 진짜 아름답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괜한 심사관 추행으로 미국 영구 금지 당할까봐.... 화끈하게 한마디만 하고 돌아섰다.


"Thank you!!"


..


집으로 오는 길은 상쾌했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온 세상에 울려퍼지는 듯 했다. 


와이프도 그 심사관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인정했다.


"후후후.. 역시 미녀가 미남을 알아보는군. 아마 나한테 반해서 통과 시킨 걸꺼야~"

"에유~~ 이제 살만하냐?"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끙끙대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얼굴이 풀린 나를 보고 마누라가 핀잔을 준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준비해둔 각종 서류들은 가방에서 꺼낼 기회조차 없이, 그냥 DS2019외 필수 서류만 가지고 통과 되었다.


다행히 트럼트가 대통령이 되기전이라서 그런가?? ~!~ ㅎㅎㅎㅎ


며칠 지나니 생겼던 위염도 나았다.


술병난거 외엔 아픈적이 없던 위가 놀라자빠졌던.... 비자 받기!!!




이제 우리 네 가족은....


미국으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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