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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지 마
게시물ID : freeboard_17287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ir
추천 : 5
조회수 : 33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8/03/25 02:11:58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 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웃었을 것이다.

깔깔깔. 그런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의 영혼을 동그란 돌처럼 가지고 논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사랑이 끝나면 너의 손은 흠뻑 젖을 것이다.

방금 태어나 한줌의 영혼도 깃들지 않은 아기의 살결처럼.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 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출처 심보선 /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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