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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느릿하게 가도 괜찮아..
게시물ID : freeboard_1759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상처이겨내기
추천 : 4
조회수 : 1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18 10:16:05
KakaoTalk_20180618_092356710.jpg
 
너랑 산지 16년, 네 나이는 17살
내 나이 18살. 취업나왔던 회사 부장이 "강아지 키울래?" 하는 말에
생각한번 해보지 않고 "네!"라고 대답했고 너는 그 다음날 바로 내게왔지..

보자마자 내 다리밑에 와서 숨는 널 보고 부장이 그랬어
샵에서 분양시기를 놓쳐 여기저기 다니다 왔다고, 애가 좀 사나워서
어제 내가 좀 때렸어 라고..

그래서 처음보는 나에게 와서 숨었구나,
처음보는 내 무릎에 앉아서 그렇게 슬프게 날 쳐다보고 있었구나 했어

한살이 다 된 너였는데 얼마나 못먹었던건지..어디서 얼마나 혼이나고 눈치를 봐았는지
첫 날 너를 집으로 데려왔을때 사실 나 많이 조마조마 했었어
엄마가 절대로 강아지는 안된다고 했었거든..
방문열고 들어온 엄마가 너랑 눈이 마주치자 마자 아무소리 안하고 "너가 다 책임져"라고 말하곤
나가셨지..정말 안예뻐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는데
지금 엄마는 네가 제대로 먹는지,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지
새벽에도 몇번씩 깨서 네 상태를 확인하고 있어.

늘 말은 차갑게 하는 엄마지만, 어쩌면 나보다도 더 널 걱정하고 있는게 맞는거 같아.

너랑 살아온 17년동안 사실 단 한번도 네가 없을거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어
언제나 있었으니 당연하게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제부턴가 약해지고 나이들어가는 네 모습을 보니까
내가 정말 너에게 해준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런 지식도 없이 어린 나이에 너를 데려와서
뭐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모르고 너랑 살아왔는데
병원에서도 그러더라 "그래도 오래 살았다" 라고..
사람먹는거 주면 안된다, 아니..뭐 이렇게 주지말라는게 많냐면서 불평을 했는데
정말 너는 딱한번 아팠던거 빼곤 건강하게 살아와줬어.
딱 한번 아팠을 때에도 수술하고 입원실에 있는 네가 걱정이 되서
퇴원할때까지 저녁마다 병원가서 너 보고 돌아서는 나랑 엄마는
입원실에 있는 네가 안타까워 마음이 참 안좋았었어.

2년전부터 갑자기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네가 혹시 괴로운건 아닐까,
너무 아픈데 너무 힘든데 내가 모르고 있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내가 먼저 의사한테 "너무 힘들어 하는거 아니냐, 너무 아파하는거 아니냐, 혹시 안락사를 해야하는거냐" 라고 물었을때
의사가 되려 나한테 화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고 했지..내가 정말 무지했다는걸 깨닫는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어. 너는 2년동안, 점점 안들리던 귀가 아예 닫혀버렸고, 눈도 안보이게 되고..
그래도 나 나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걸 바로 알진 못해도 걷는 진동느낌에 여기저기 부딪히면서도
반겨주는 너를 보니까, 그동안 잘해주지못한거에 대한 죄책감만 더 커지더라..

의사도 이젠 준비를 하라고 얘기하니까
보내줘야할때 편하게 보내줘야 네가 편하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눈물은 나더라..
먹던 약도 소용이 없다며, 수액이랑 호흡기치료 하면서
네가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게 해주자는 의사말에 알겠다고 얘기하고

오랜만에 걸어서 병원까지 갔었지..
왜 이제 데리고 나왔을까...네가 자꾸 쓰러진다고 언제부턴가 바깥구경도
많이 못하던 너였는데
애기처럼 유모차에 앉혀서 나오니 보이지도 않으면서 두리번두리번..
햇볕에 눈까지 찡그리는 너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앞으로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 모르겠어..
준비를 하라는데....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네가 없는 날을 여태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말야..
그러니까...조금만 더 천천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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