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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서술 내 인생 1탄.
게시물ID : freeboard_18274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연애시대
추천 : 0
조회수 : 3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1/15 01:52:43
얼마전에 아는 형이랑 전화통화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회사 상황이 안좋아서 몇 달뒤 많은 인원을 정리해고 하는데 이 기회에
실업급여 받으면서 국비지원으로 이것저것 배우며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이 기회에 너 자신을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게 어떻겠냐 하길래 
책에서 봤던 자신을 인생을 3인칭으로 써보라는 내용이 생각나서 해봤습니다
어제 오늘 잠들기전에 조금씩 써보려고 하는데 별거 아닌 삶이 뭐 이렇게 쓰고 읽고 지우고를 반복했네요
허접합니다. 그냥 이런 놈도 있구나 하고 봐주세요

그는 경기도 성남의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 부터 눈치가 좀 있는 아이였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이런 사람일 거 같다"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게되면 열에 여덜아홉은 정말로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물론 그것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안맞는 경우가 더 많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사귄 친구가 특공무술체육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 처럼 부모님에게 부탁해서 거길 다니게 되었다. 그 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특공무술체육관에 다니게 되는 것이 그의 학창시절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될 줄이야 말이다.

그곳의 관장님은 교육에 있어서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말투를 군대처럼 "다" or "까" 처럼 사용하도록 했고

욕설은 절대적으로 금지이며 "새끼"라는 말조차 사용하면 아주 호되게 혼을 내셨다. 그렇지만 관장님은 꽉막히고 융통성없는 분은 아니었다.

재밌을 땐 재밌게하면서도 지킬건 확실하게 지키는 그런 모습은 관원생과 사범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예의범절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도 그런 모습을 매일매일 보았고 11살부터 다녔던 특공무술체육관을 20살 10월까지 다니게 되었으며

이 10년가까이 되는 삶은 그의 인성부분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빨리 성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건 IMF이후 힘들어진 집안살림 때문이었는데 학비와 급식비같은 걸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다녔고 

중학생때도 많은 친구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도 고1 때 반에서 제일 늦게 구입하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삼시세끼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매일 밤 돈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는 부모님들의 소리로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는 살면서 몇 안되는 정말 후회하는 기억과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가 고1 때 인데, 

반에서 학생들 전화번호기록부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는 아직 핸드폰이 없었고 다 적고 난 뒤 봤던 기록부에는 유일하게 그의 이름 옆에만 새하얀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그는 평소에 생각도 안하고 있던 핸드폰에 관한 욕구가 생겨났고, 그 당시에 최신 폰이며 정말 비쌌던 숫자패드를 터치하면 아름다운 색이 빛나는

비싼 핸드폰을 갖고 싶어졌다. 부모님도 "엄마, 우리반에서 나만 핸드폰이 없어"라는 아들의 말에 정말 가슴이 아프셨을텐데 처음 소유욕와 허영을 느꼈던 그는,

그걸 구분해서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그 핸드폰이 갖고 싶다 말했고 엄마는 아빠와 상의후에 "일단 매장가서 살펴보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기대했던 그 날은 핸드폰 가게에서 생의 첫 핸드폰 구입은 커녕 잔소리만 듣고 집에 오게 되었다

굳게 닫힌 방 밖에서 엄마는 그에게 잔소리를 쏘아붙였고 그는 "옳지, 엄마가 먼저 싸움건거야"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마찬가지로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의 철없는 반항이라고 말하며 "그럴수도 있는 나이"라고 넘길수도 있는 일인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거기서 하필 "엄마는 누나가 그렇게 좋냐"면서 쏘아붙였고 그것은 정말 하면 안되는 큰 잘못이었다. 

그는 3살 위의 누나가 한 명 있는데 누나는 사실 중학생때 핸드폰을 사줬었고 아무렇지않게 밤늦게까지 통화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부모님에게 혼쭐이 났지만 결국에 요금폭탄을 몇 번 맞고 핸드폰을 금지당했었다

누나는 부모님에게 있어서 굉장히 아픈 손가락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지다. 그는 부모에게 있어서 항상 "아픈 손가락"인 누나가 밉고 안타깝기도 하며 한심하다라고 생각을 했다.

이미 누나는 중학생 때 한 번 핸드폰을 사줬었고 잘못도 해서 혼도 나고 그래도 안되서 금지까지 당했던 사람인데, 내가 처음 사게되는 그 핸드폰 가게에 누나도 같이 데려가고

이 기회에 하나 사주려고 했던 엄마의 모습이 그렇게 까지 섭섭하고 서운했던 모양이다. 

 "누나는 왜 데려갔냐", "누나가 그렇게 나보다 좋으냐"라는 말에 문 밖의 높은 언성은 한 순간에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었으며,

그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은 그는 실제로 명치에 통증을 느꼈고, "사람이 정말 마음이 아프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라고 했던 학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의 울었던 얼굴을 몇번 보긴 했었지만 자녀앞에서 실제로 우는 건 처음이었고 그 때 정말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빠에게 엄청나게 꾸중과 훈계를 들었고 원했던 고가 모델의 핸드폰은 갖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다른 생애 첫 핸드폰을 만질 수 있었다.

그 경험은 그가 돈을 벌어서 소비를 할 때 가성비와 효율을 1순위로 생각하며 따지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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