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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썰
게시물ID : freeboard_1999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국밥에샷추가
추천 : 3
조회수 : 92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12/07 15:29:21
제 또래는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2002년 월드컵 때 군대에 있었습니다. 

 

휴가도 직전에 써버렸고 외박도 명분이 없어서 군대에서 짤없이 월드컵을 봐야했죠.

 

기억에 남는 상황이 몇 개 있는데...

 

 

보안병이었던 저는 포르투갈 전 때 저는 비밀문서 합동보관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대대 행정과 사무실에 비문보관소가 있었고 저는 그냥 과장실에서 혼자 TV로 보고 있었죠. 

 

월드컵이란 게 그렇지만, 혼자 보면 별로 기분이 안 납니다. 

 

박지성이 골 넣었을 때도 혼자 소소하게 좋아하고 말았는데...

 

갑자기 창 밖에서 "우와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소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어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문을 열면 위병소가 보이는데요.

 

라디오로 축구 듣고 있던 위병조장이 골 소식이 들리자마자 위병소를 뛰쳐나와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중대 고참이었죠.

 

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를 즐기는 고참을 보자마자 저도 창문 앞에서 "우와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했습니다. 

 

위병조장도 저를 보고 같이 "우와아아아아아아아ㅏ아ㅏ아아아앙" 했고 우리는 서로 그렇게 "우와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 했습니다. 

 

 

월드컵에 맞춰 휴가를 다녀온 CP병 후임이 있었습니다. 

 

얘가 고향도 서울이고, 누가 봐도 서울놈처럼 생긴...잘 생긴 녀석이었는데요. 

 

휴가 때 거리 응원 갔다가 여자 꼬신 썰을 들려주는데 그때부터 뭔가 부러워지더군요. 

 

그러나 그와 별개로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군대에서의 6월은 다들 아시다시피 유격 시즌입니다. 

 

저희도 마침 유격을 떠났는데요. 

 

첫날 훈련을 마치고 유격장 연병장에서 교관이 "올빼미, 박수 다섯번" 하는데

 

저희는 누구 하나 의심없이 "짝!짝!짝!짝!짝!" 쳤습니다. 

 

갑자기 교관이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키더군요.

 

그리고 조교를 부릅니다. 조교가 "유격자신"하면서 올라오더니 박수 다섯번의 시범을 보여주네요.

 

"짝짝! 짝짝짝!"

 

그리고 교관이 한마디 합니다.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내일 훈련 강도가 달라질 거다. 오늘 지면 올빼미들의 응원이 부족했던 걸로 간주하고 내일 빡세게 굴려주겠다. 

 

그날은 16강 이탈리아전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그것도 유격장(산 속)에서 TV를 어떻게 보나 싶죠?

 

군대에서는 뭐든지 가능합니다. 

 

우선 시설과에서 여분의 TV와 안테나선을 챙깁니다. 

 

그리고 안테나선을 어깨에 맨 시설병들이 나무를 타죠. 

 

나무 꼭대기에 안테나선을 설치하고 발전기에 TV를 연결하면 됩니다. 

 

화질도 구진 흑백 브라운관 TV였지만, 어쨌든 축구는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안테나선이라는게 놓으면 안 나오고 들어야 나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인원이 많아서 TV 3대를 설치했는데 그 중 1대가 딱 그랬죠. 

 

이거는 어떡하느냐? 막내가 안테나선을 들고 있어야 합니다. 걔는 TV 옆에서 그거 들고 고개 빼꼼 돌려서 봤죠. 

 

한 두어번 손에 힘 빠져서 안테나선 내려오길래 갈구다가 막내의 동기끼리 교대해서 들었죠.

 

어쨌든 산 속에서 축구를 즐긴 저희는 이겼다는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훈련도 개빡셌습니다. 

 

 

군대에서 전 경기를 다 봤습니다만 생각 나는 건 이 정도네요. 낮에 했던 미국전은 전 중대원이 내무반에 모여서 봤는데...별로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그땐 저도 일병 나부랭이라서...

 

아무튼 저는...2002년 월드컵 세대인데도 거리응원을 못해봤습니다. 

 

나중에 제대하고 복학해서 2006년 월드컵 때 거리 나가봤는데 느낌이 안 살더군요.

 

 

2002 월드컵...즐거웠겠죠?...즐거웠을거야...부럽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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