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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게시물ID : freeboard_20024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뚜기순후추
추천 : 5
조회수 : 64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3/01/30 19:01:56

가난은 젖는 게 아니라 스며든다. 

가난한 아이는 선택할 수 없다. 물건을 고르는 의미가 없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나는 아직도 사지 않을 물건을 보지 않는다. 
의미 없는 아이쇼핑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선택할 장난감이 없고, 선택할 옷이 없고, 주어진 것을 아껴 쓰고 필요한 것을 구할 뿐이다. 
떼를 쓸 필요도 없다. 
떼를 쓰는 건 가능성을 보는 건데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렇게 20대가 되고, 혼자 살림을 차릴 때 제일 저렴한 것 가질 수 있는 것만 선택했다. 
쇼핑이 아니라 필수품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휴가 때 여유가 생겨 에버랜드에 갔다. 
가서 실컷 걷고 놀다가 마지막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는데 
기린을 좋아하는 나는 기린 피규어를 한참 보다 만지다. 
가격을 보고 놀라 내려놨지만 미련이 조금 남아 만지작거렸다. 
아마 만 육 천 원이었나… 점심때 먹은 맛없는 점심이 칠천 원이었다. 

같이 간 신랑이 선뜻 사라고 권했으나, 가격 땜에 마다하니 
“머 어때? 기념이잖아?’ 하는 말에 과감히 하나 샀다.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다. 
날 위해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을 산건…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 일상생활에 아무 소용 없는 얘를 산 건데? 괜찮은 거야?’ ‘심지어 입지도 먹지도 못해?!’라고 생각했지만 기린의 촉감이 좋다. 

그렇게 점점 살림이 좀 나아지고, 스타벅스에서 컵을 하나 샀다. 
그때 불현듯
아 나는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컵이나 그릇을 싫어하는구나! 
나는 자기로 된 식기와 컵을 좋아하는 취향이구나! 
나는 각진 것보다 둥근 것을 좋아하는구나. 
쨍하게 진한 색보단 파스텔톤이 편하구나. 

처음 살림을 살 때 저렴한 국자나 주걱 등은 
참…화가 날 정도로 망가지지 않는다. 
멀쩡한 물건을 바꿀 수가 없어서 아직도 시뻘건 플라스틱 주걱이 하나 있다. 이 일이천 원짜리 물건은 참…나보다 오래 살 거 같아. 

그때 나는 취향을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좀 더 여유 있게 보고 다문 오천 원이라도 더 썼음 나았을까… 지금처럼 맘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천천히 둘러보고 맘에 안 들면 선택을 미룰 수 있는 것이 

나는 감동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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