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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단편 창작 동화] 돼지 왕자 웨이크
게시물ID : freeboard_20027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5번지
추천 : 1
조회수 : 5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2/07 10: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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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제가 아이를 위해 직접 쓴 짧은 이야기들입니다. 아래 출처로 이동하시면 더 많은 원고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돼지 왕자 웨이크

 

 

가을장마가 참 지루하구나. 시원해야 할 날씨는 습한 기운에 눌려 불쾌감이 치솟았고, 마르지 않기 시작한 빨래에서는 쉰 냄새가 배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어. 여름에도 머물지 않았던 장마 전선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탓에 사람들의 기분도 우울하게 처지기 시작했지.

 

제대로 어두컴컴한 하늘이어서, 제대로 우중충한 마음들이 늘어난 거야.

 

아빠는 예전부터 이런 날에는 성룡 아저씨의 영화를 봤었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전설의 성룡 아저씨! 성룡 아저씨는 문자 그대로 맨손 액션의 선구자이셔. 스턴트맨 없이, 와이어 없이, 컴퓨터 그래픽도 없이 오직 맨몸으로 직접 위험한 장면들을 촬영하는 대담한 배우야. 그가 직접 헬기에 매달리거나 버스에 매달린 채 도심을 가르면서 찍은 장면들은 여전히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니까.

 

게다가 그의 액션에는 능글스러운 표정에서 나오는 코믹함과 애환이 녹아 있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저절로 강하게 감정이입이 되곤 해.

 

성룡, 정말 동경했었던 멋진 남자!

 

이제는 늙어버린 탓에, 와이어도 쓰고, 컴퓨터 그래픽도 쓰고, 스턴트맨도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아빠에게 최고의 액션배우야. 젊은 시절, 그가 보여줬었던 날렵한 펀치와 발차기가 뇌리에 강하게 박힌 탓도 있겠지만, 사실 아빠가 그에게 반해 버린 부분은 그의 강인한 육체보단 강직한 성품에 있거든.

 

놀라지 마. 역대 액션배우 중 누구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여전히 인기스타 반열에 있는 그이지만, 그는 한때 까막눈이었단다. 글자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이었단 소리지. 믿기 힘들겠지만, 글자를 전혀 읽지도 못하면서 미국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한 동양인 연기자였던 거야.

 

글자를 몰라 대본을 읽을 수 없었던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영화 대본을 통째로 외웠던 거야.

 

어때? 굉장하지 않아? 아빠는 처음에 이 이야길 전혀 믿지 못했단다. 어떻게 글도 모르는 사람이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될 수 있단 거야? 그런데 그런 의심을 지우게 해준 멋진 존재가 또 하나 있었어. 바로 빌리네 농장의 웨이크라는 돼지였지.

 

웨이크는 다른 돼지들과는 혈통부터 다른 굉장한 돼지였어. 겨드랑이에서는 아기 냄새가 날 정도로 고귀한 품종이었지. 스스로 고귀하다는 인식이 있어서였는지 진흙탕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녀석이었어.

 

그렇다고 웨이크가 겉만 번지르르하다거나 어정쩡한 귀족 녀석들처럼 거만함에 똘똘 뭉쳐 있었던 녀석도 아니었지. 웨이크는 다른 돼지들과 함께 사료를 나눠 먹었고, 동료 돼지들의 불만에 늘 귀를 기울여주는 멋진 리더였어.

 

어때, 굉장하지 않아? 무리를 이끄는 로열패밀리 돼지, 아니, 겨드랑이에서 풋풋한 아기 냄새가 나는 돼지라니 말이야!

 

빌리 아저씨도 그런 웨이크를 눈여겨봤단다. 한눈에 웨이크가 다른 녀석들과 격이 다르다는 걸 꿰고 있었어. 그래서 일부러 빌리 아저씨는 웨이크를 험하게 다룰 때도 있었고, 때로는 더욱 귀하게 다루기도 했었단다. 웨이크를 따르는 무리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웨이크의 지위를 활용하고 있었던 거야.

 

웨이크는 어렴풋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걸 논리정연하게 말로 풀어내지는 못했어. 일단 아무리 격이 다른 로열패밀리라지만, 웨이크는 결국 돼지였으니까 말이야.

 

우리 인간들의 언어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인간처럼 사고하지도 못했으니까. 그저 웨이크는 빌리 아저씨를 향해 점잖게 언짢은 기분을 내색하는 게 전부였어.

 

꿀꿀꿀.

 

물론, 빌리 아저씨는 웨이크의 어필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결국 성룡이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린 것처럼, 웨이크도 인간의 행동을 본 것 그대로 따라 해보기 시작했어.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들을 향해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서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웨이크는 오래지 않아 빌리 아저씨가 반복적으로 보여줬던 행동 중 일부를 따라 할 수 있었어.

 

꿀꿀꿀.

 

, 돼지 왕자님! 굉장해요! 인간에게 똑같이 대꾸해 주시다니!”

 

웨이크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어. 글은커녕 인간의 말조차 흉해 내지 못하는 돼지면서 얼마나 관찰하고 노력했으면, 동료들에게 인간만큼 훌륭하다고 칭찬까지 받게 되었으니 말이야.

 

놀란 빌리 아저씨 덕에, 아빠도 그런 웨이크의 모습을 눈여겨보게 되었던 거야. 성룡처럼 자신이 목표한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돼지 왕자라니, 그냥 상상만 해도 멋지잖아?

 

꿀꿀꿀 꿀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웨이크는 어떤 결심을 했던 것인지, 울타리를 넘어 농장을 벗어났어. 그리고는 제일 먼저 눈에 띈 사람을 향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고개를 깊숙하게 숙이고 인사하는 척을 했어.

 

덕분에 옆 농장 스턴 씨는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어. 그렇지만 웨이크는 멈추지 않았지. 그대로 스턴 씨의 농장 한가운데로 달려갔고, 스턴 씨의 부인을 만났어. 그리고 이번에는 부인을 향해 윙크를 날리며, 모자를 벗어 인사를 보냈지. 부인은 기겁하며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어.

 

꿀꿀꿀꿀꿀!

 

이러니 아빠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어? 고작 돼지 주제에 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게다가 사람보다 더 사람처럼 느긋하게 행동하는 여유까지 보이다니!

 

물론, 그렇다고 빌리 아저씨가 아빠만큼 웨이크에게 호의적인 건 아니었어. 잠시 저승 문턱을 보고 돌아온 스턴 씨도 마찬가지였지. 돼지 왕자 웨이크를 틈이 날 때마다 괴롭히기 시작했던 거야.

 

아빠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나서 웨이크에게 직접 질문했어.

 

굳이 꼭 인간들을 놀라게 하면서까지 인간들의 흉내를 내야 하는 건가요?”

 

꿀꿀 꿀꿀 꿀!

 

웨이크는 나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뒤돌아 사라졌어. 그때의 능글스러운 표정이 꼭 장난기 가득한 성룡 아저씨 특유의 표정 같아 보였어. 아빠는 눈앞에서 멀어지는 웨이크의 뒷모습을 보며 웨이크가 남겼던 말을 다시 곰곰이 곱씹어 봤지.

 

꿀꿀

꿀꿀

!

 

그래, 맞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리는 건 옳지 않은 거야. 적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그만둬도 괜찮지 않겠어?’

출처 https://m.roseandfox.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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