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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인공지능로봇 프네우마 - 하랑의 이름으로 7. 무장(武裝)
게시물ID : freeboard_20051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5번지
추천 : 1
조회수 : 6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3/04/02 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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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이거슨 나름 연재소설입니다ㅎ


오늘도 늘 읽어주시고 계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올립니다.

 

아이의 입원으로 평소와는 다른 시간에 글을 올려봅니다.

 

최소 5일은 입원해야 한다는데ㅎ 아이는 회복중이라 걱정이 안되지만,

5일이란 시간 동안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숨만 죽이고 있을 생각하니 갑갑하네요.

대체 맞벌이 부부들은 어찌 육아를 하신 건지 ㅎㅎㅎ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니라 5일이나 되니 당장 주변에 도움 청할 곳도 막막해지네요.

 

새삼 저출산 대책들 모조리 다 한심해 보이는 일요일 오전입니당.

 

7. 무장(武裝)





인간의 상상력이란 건 참 기묘하다. 어떤 창조적인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하나같이 완벽히 새로운 건 없기 때문이다. 항상 창작자에게 영감을 안겨준 무언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미 현실에서 익히 봤던 사물이나 생물, 현상에서 아이디어 캐치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인간이 새를 봤기 때문에 창조될 수 있었고, 배는 물고기들의 디자인을 차용했으며, 자동차는 바퀴달린 수레의 변형이다. 

 

그렇다는 건 나 역시도 원형이 되는 모델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난 다국적 연합에 의해 탄생했다. 덕분에 제작과정에서 서양인들의 조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부분도 있고, 동양인들의 염원이 녹아들어간 부분도 있다. 그러니까 영화 <스타워즈>의 ‘R2D2’ 로봇을 내 디자인의 원형으로 삼은 건 서양인들의 조크다.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적절히 잘 녹여낸 영화 <스타워즈>는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 사이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발전해 있었다. 단순한 영상 유흥 콘텐츠가 아니라, <스타워즈>라는 키워드로 분석이 가능한 문화현상으로까지 발전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나의 원형을 R2D2에서 따온다는 건 분명 거대한 인류 프로젝트 안에 녹여낸 하나의 소소한 농담이었다. 중대한 일을 어쩜 이렇게 장난스럽게 접근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모델의 원형이었던 R2D2 자체가 이미 실용적으로도 매우 그럴싸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독립적으로 탐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적합한 형태일 것이란 의견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있다. 나의 외형이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 형태였다면, 직립보행이 가능한 두 다리를 선물 받았을 테니 말이다. 제작과정에서 직립보행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급박한 시간과 비용절감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난 최종적으로 직립보행이 가능한 두 다리가 아니라 탱크처럼 롤러로 돌아가는 바퀴를 받았다. 그러니 R2D2와 같은 원형 몸통이라든지, 가분수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납작한 타원형 머리나, 상대적으로 가는 두 팔과 그보다 취약해 보이는 보조 팔 같은 것들은 내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태생부터가 직립보행의 안드로이드 형태가 아닌데 나머지 세부적인 디자인 따위야 알게 뭐람?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래서 내 등 뒤에 동양의 부적처럼 그려진 노란 바탕의 붉은 글씨 같은 것도 난 별로 크게 개의치 않는다. 기왕 작정하고 그렇게 쓸 생각이었다면, 그냥 한자나 한글, 히라가나, 아님 쯔꾸옥응으 같은 동양권 언어로 써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영어로 ‘Pray’라고 큼지막하게 날려서 쓴 건 지나친 퓨전 양식이 아닌가 하는 작은 의문만 있을 뿐이다. 


국적불명의 사이비 부적이라지만, 그걸 몸에 새기고 있었던 탓인지, 어쨌든 나의 기도가 먹혔다. 헛소리를 길게 늘어놓는 동안 해가 저물었다. 낮 동안 만찬을 즐기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전원을 올리고 동굴 밖으로 나갈까 했지만, 멈추기로 했다. 완전히 바뀐 지구 환경이다. 주변에 어떤 야행성 생명체가 있을지 모르고, 어떻게 빛에 반응을 해올지도 예측이 힘들다. 어스름이 옅어지는 새벽이 오면 움직이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 배터리는 충분하니까. 

 

절전모드 상태를 유지한 채 몸만 일으켜 동굴 밖을 바라보고 섰다. 달빛이 입구를 비추는 풍경이 낯설다. 지구를 떠나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연구소는 인공구조물이었고, 달빛이 반사되는 암벽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투명한 유리창과 신소재로 만들어졌던 하얀 벽은 지금과 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없었다. 

 

낯설고 특이한 풍경을 디스플레이창을 통해 담으면서 잠시 지금의 처지를 돌아봤다. 우주를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당장 지구부터 다시 개척해야할 몸이 되었다.

하랑의 말처럼 지구에서 생을 이어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모순인가 보다.


어쨌든 지금까지 숱한 돌발 상황이 있었고, 많은 알람이 한꺼번에 울렸지만, 난 침착하게 단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냈다. 이쯤에서 혹자들은 로봇이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딴죽을 걸 수도 있겠지만, 뭐, 괜찮다. 내가 한 짓들에 대해 과장없이 단순 나열만 했다면, 그들은 여기까지 읽어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런 게 로봇의 센스다. 늙은 인간의 속옷처럼 닳을 대로 닳아서 허점투성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목적대로 기능은 한다는 거다. 


라노 에스타카도로 직접 찾아가 보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가설을 검증하지 못하고서는 하랑을 찾을 방법도 없으니까. 그저 그곳까지 어떻게 해서 닿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뿐이다.

 

내가 현재 몸을 숨기고 있는 이곳을 대략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어디쯤이라고 봤을 때, 고속도로가 뚫렸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가정을 해도 대략 1천5백 마일. 그러니까 2천4백에서 2천5백 킬로미터쯤 되는 거리가 된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쉬지 않고 꾸준히 달린다 해도 꼬박 하루가 걸린단 소리다. 그런데 지금은 튼튼한 자동차 엔진은커녕 아스팔트 한 점 구경할 수 없는 상태고, 지형도 변해 있으니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정을 따라서 또 배고픈 공룡들과 개념 없는 거대 곤충들이 동행하려고 할 테니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소요되리라. 


아무리 경우의 수를 따져도 더 나은 답은 없어 보였다. 결국 살아남기 위한 전투는 피할 수가 없다. 나보다 몇 배나 큰 덩치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대책이 가장 먼저다. 언제까지 여기에서 머리만 굴리며 웅크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럴 땐 우주선에서 미처 챙겨 나오지 못했던 장비들이 그저 아까울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발전기와 고압전류 울타리만 챙겼어도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받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장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난 인간이 아닌 로봇이다. 사실 후회 같은 건 감정을 가진 인간의 고유 영역이지 않은가? 당장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흉내를 내봤을 뿐이다. 


우선은 스스로 배터리 관리에 좀 더 신중해야겠다. 태양열 충전방식이라 반영구적이라고는 해도 지금처럼 낮에 대외활동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배터리 관리가 힘들어질 수 있다. 내가 새벽에 활동하려는 것도 배터리 충전 문제를 고려해서다. 배터리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이제 정말 호신의 문제가 남는다. 난 앞으로도 모험을 해야만 한다. 모험을 해야만 자료를 수집할 수 있고, 자료를 확보해야만 하랑의 위치와 생존을 유추할 수 있다. 그때마다 숨거나 회피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공룡을 비롯한 예측불가의 생명체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도 무장을 해야만 한다.


이쯤에서 난 나를 만든 서양인들의 염원과 동양인들의 조크에 관해서 말해볼까 한다. 서양인들은 웃으면서 나의 외형을 R2D2에서 따왔지만, 정작 내게 고출력 레이저 절단기를 부착시킬 땐 엄숙한 얼굴로 기도를 올렸었다.


‘부디 이거 하나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길!’


고심 끝에 미지의 외계생명체를 향한 긍정과 낙관에 기대기로 했지만,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주로 떠나고 나서는 어떤 돌발 상황이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호신용품 하나쯤은 내게도 있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적절한 무기를 장착시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러려니 내 신체 무게가 또 늘어나게 되고 다방면으로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게 하랑을 비롯한 다수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심 끝에 최초에 설계되었던 레이저 절단기의 성능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설물이나 장애물을 자르고 용접하는 용도 외에도 여차하면 나의 최종병기로 활용될 수 있게끔.

고출력 레이저 절단기는 인간들이 고심했던 만큼 정말 훌륭한 물건이다. 확실하고 강력한 성능이다. 다만, 그만큼 배터리 소모도 극심할 뿐. 그렇다는 건 레이저 절단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거다. 지금까지 애써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사용 이후 다음 충전까지의 딜레이가 걱정되어서다. 


서양인들이 이런 문제점들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레이저 절단기를 내게 달았을 때, 동양인들은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여튼, 너네는 무기에 대한 인식에 한계가 있다니까! 왜 살상무기를 총이나 미사일, 레이저 같은 형태로만 상상하는 거야? 우리가 프네우마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해주겠어!’


덕분에 나는 우주로 향할 로켓에 오르기 전에 많은 걸 단시간에 흡수해야 했다. 이소룡의 영화, 저서 전체와 사무라이와 관련된 애니메이션들, 한국 조폭 액션영화 전편을 내 하드디스크 한쪽에 다운로드했다. 직립보행도 할 수 없고, 인간처럼 호흡도 할 수 없는 고철에게 절권도의 1인치 펀치 같은 게 무슨 소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라이와 조폭들의 정보는 제법 유용했다. 그들은 날붙이를 이용해서 어떻게 상대를 유린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으니까. 


인간들은 보통 이럴 때 운명이란 단어를 사용했던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흉내를 내본다. 나의 태생이 탐색로봇인 건 정말 기가 막힌 운명이다. 

 

인간들은 나를 위해 방대한 시나리오를 미리 구상해뒀었다. 태양계를 벗어나 비행을 지속할 경우, 결국엔 우주선의 연료부족으로 미확인 행성에 불시착하게 될 것이란 예측. 그런 경우 행성에 적응하며 탐색하여 그곳의 자원을 수집할 수 있도록 내게 필요한 모든 기능을 미리 설정하고 준비시켜뒀다. 


덕분에 나의 디스플레이창은 언제든지 광물 등의 자원분포 상태를 분석하고 채굴할 수 있게끔 안내를 해준다. 지금도 고개를 돌려보기만 했는데, 황철석이 보인다. 철 함유량은 25% 미만의 저품(低品)이지만, 내게는 기본적으로 빈광처리법이 탑재되어 있다. 이 정도 매립이면, 충분히 내 팔보다 조금 짧은 길이 정도의 칼을 두 자루 이상 만들 수가 있다. 게다가 난 분석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로봇이다. 내가 사무라이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다지만, 칼을 내게 맞지도 않는 일본도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신속의 발도술처럼 만화 같은 검술을 펼치려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 건 어차피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들의 판타지 중 하나니까. 난 내 팔 힘으로 낼 수 있는 가속도를 감안하여 과거 몽골제국이나 오스만제국의 병사들이 즐겨 쓰던 시미터(Scimitar, 新月刀) 형태로 제작할 생각이다. 충분히 곡선이 들어간 검은 나의 뻑뻑한 로봇 팔로 휘둘러도 그 파괴력이 충분하리라.


레이저 절단기를 꺼내들어 출력을 조절했다. 황철석들을 잘라내고 팔과 보조 팔로 채굴된 자원을 분류해서 모으기 시작했다. 

 

펼쳐진 운명대로 걷기 시작해서일까? 탐험을 위한 무장의 첫걸음이 제법 가볍다.


출처 https://m.roseandfox.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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