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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맛은 결코 씁쓸하지만은 않다
게시물ID : freeboard_20214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5번지
추천 : 4
조회수 : 743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4/02/22 11:40:28

인간은 자신의 이해 범주 안에 세상만사가 놓여있길 바라죠.

그래서 뭐든 직관적으로 판가름하길 좋아합니다.

 

우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단 암울한 톤으로 그 이미지를 규정해둔 상태로 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늘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세상은 둥근만큼 많은 것을 끌어안고 있죠.

우울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초콜릿 제조과정에 소금이 들어가야 단맛이 더 확 살아나듯이..

 

지난 12월에 당뇨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줄곧 식단 나름 관리하고 운동도 해서 살이 많이 빠졌습니다.

그게 1월말까지였고, 약을 먹은 상태로 혈당도 잘 유지되었죠.

 

그러다 2월이 되고, 설날도 맞이하고, 아부지 팔순도 치르고 ㅡ 

하면서 식단관리가 깨지고, 운동 패턴이 흐트러졌습니다.

당연히 약을 먹은 상태로도 수치가 들쭉날쭉하고, 정상치보단 높게 나오네요.

 

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달고 살아야할 병이고, 이벤트 치르는 와중에 이 정도면 잘 선방하고 있으니

담달을 맞이하면, 또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죠.

 

무엇보다 제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있고, 

또 아이의 동생도 아내 뱃속에서 집을 짓는 중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가장, 남자의 무게감 따위야 얼마든지 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혈당 따위 자연스런 일상의 흐름 속에서 다시 낮출 수 있다고.

그러다 마음이 크게 흔들린 게 어제 저녁이었네요.

 

아내가 요즘 화끈하고 칼칼한 게 계속 당긴다고 하더라고요.

임산부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란 건 해가 반쪽이 나더라도 구해다줘야 하는 법이죠.

그런데 그게 만만한 떡볶이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 아내가 저를 생각해서 참겠다고 하는 겁니다.

거기서 제가 1차로 빡이 돌았죠.

 

"괜찮아!"

 

떡볶이를 배달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당연히 혈당이 치솟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쉬는 날이라 점심도 함께 먹었네요. 점심에는 무려 짬뽕밥이었습니다.

당뇨인에겐 두 음식 모두 다 쥐약이죠.

 

"괜찮아! 운동하면 괜찮아!"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뜀박질은 못하고 집구석 고정식 자건거에 앉아 페달을 밟았습니다.

2월 한 달 꾸준하지 못했던 탓인지 페달을 쉽게 굴리지 못했습니다.

아.. 저질 체력. 줄어든 허벅지..

그쯤에서 또 제가 2차로 빡이 돌았습니다. 자괴감이란 거 쉽지 않죠...

 

운동도 했고... 식후 3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침습을 해봅니다.

역시나 여전히 혈당이 높습니다.

당연합니다.

아내가 미안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완전히 돌아버렸습니다.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옵니다. 

아내는 앞으로도 떡볶이가 먹고 싶을 겁니다. 임신 전에도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리는 날에는 늘 떡볶이를 찾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지금처럼 말을 삼키려들겠죠. 내색하지 않으려 할테고,

제가 없는 자리에서 떡볶이를 먹겠죠.

별 거 아닌 음식 하나이지만,

아내와, 아이와, 웃으며 함께해 오던 순간 하나가 박살이 난 것만 같단 느낌이 들어서

들끓어 오르는 감성이 주체가 되질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복잡한 마음과 감성을 아내는 물론 다 모릅니다.

그래도 제가 감성이 격하게 흔들렸다 정도는 눈치로 알 수가 있죠.

아내가 저를 안아주었고, 

이제 3살이 된 아이는 눈치없이 우리 둘에게 다가와 끼어듭니다.

 

따뜻한 위로입니다.

 

그런데 따뜻해서 더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평소 건강 관리를 게을리한 저의 잘못입니다. 

하...

 

 

출처 해야할 일은 안하고 사무실 키판을 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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