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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게시물ID : freeboard_3235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암리타
추천 : 3
조회수 : 23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12/14 16:23:08
       님의 침묵(沈墨) 

      글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같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뜨리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 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 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뜨리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정수리)에 들어부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 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 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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