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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싶었던 것.
게시물ID : freeboard_5213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건내꺼야
추천 : 1
조회수 : 39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7/15 20:14:43
열두살, 열세살로 넘어가기 직전의 겨울. 처음으로 기타를 잡아봤어. 설익은 왼손과 자꾸 엇나가서 손톱이 아닌 손가락을 때리게되는 오른손을 감싸쥐며 아야야 하던 내 모습과 어느 음계 하나에 안착하지 못하고 공기를 모호하게 맴도는 기타줄의 공명이 나와 기타의 첫 만남이었지.

147의 단신이었던 나에게 포크기타는 너무 크게 느껴졌어. 지금의 내 명치께에 올랑말랑한 꼬맹이가 코드를 잡으려 작달막한 손으로 허우적대며 기타를 치는 모습은 어땠을까. 아마도 좀 웃기지 않았을까 생각돼.

낡은 건물 3층에 있던 기타교습소는 석유난로의 비릿한 기름냄새가 옅게 감돌던 작은 교습소였는데, 선생님의 현란한 연주에 넋이 나가서는 선생님 저도 그런거 칠수 있나요 물어봤었어. 선생님이 뭐라 하셨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때 약간의 희망을 얻고 근성으로 연습한걸 보면 아마 긍정적인 대답이었을거라 생각해.

80년대 흘러간 포크송에서 간단한 클래식 연주곡,로망스, 부레, 김광석의 일어나와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를 듣고 악보를 구하려 온 동네 서점을 뒤지고 다녔어. 그 시절 멋모르던 귀에도 김광석의 노래는 좋았던지 계속 연주하게 되더군. 

시간이 흘러 열네살. 선생님은 내가 예전부터 쭉 연주하고 싶어하던 곡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어. 캐논 변주곡. 조지 윈스턴이 편곡한 피아노곡을 손본 악보였는데, 한 마디를 연주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기타를 잡고 놓질 않았지.

하지만 입시다 뭐다 공부 단디해라 등등의 압박으로 기타를 잠시 놓을수밖에 없었어. 잠깐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잠깐이 11년이 되어버렸네.

 

근데 내가 정말 연주하고싶었던건 피아노였거든.

 

피아노가 내는 다양하고도 청명한 소리가 꽤 인상깊었어. 저렇게 많은 건반과 화음을 합쳐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내는 악기와 그 연주자가 매력적으로 보였거든.

근데 전문적으로 연주할것도 아닌데 피아노를 사달라고 하기엔 좀 그렇더라고. 얘기라도 해볼까 하다가도 날이 갈수록 피로와 주름이 늘어가는 부모님 얼굴을 보면 그 소리가 쑥 들어갔지. 그리고 피아노는 잊혀졌어. 내 병약한 10대와 함께. 지금도 정말 배우고 싶은데 말이야.

 

지금도.

 

나중에, 언제가 될지는 알수 없지만, 내가 하는 일에 책임을 내려놓아도 좋을 시간이 오면, 아직 만나지 않은 내 아내와 아들 딸들,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 후일 어떤 모습이건간에, 내 미약한 재주로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그림도, 피아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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