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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사람들..(스압)
게시물ID : freeboard_7514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부담됨
추천 : 0
조회수 : 2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11 17:07:29
 아직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9월 쯔음...

날도 선선해지고 기분전환 겸 해서 집청소를 감행했었다.

늘 거의 창고처럼 쓰다시피 하는 옷방엔 고장난 가전이나 폐품들이 몇개 널브러져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치우나 생각만 하다가 

퇴근하고 오는길에 눈에 들어온 동네 고물상을 보고는 마음이 굳혀졌지 싶다..

 
 다음날 점심 즈음...집에서 걸어서 1분남짓 걸리는 고물상을 찾아가 리어카를 빌려왔다.

고장난 선풍기..모니터...컴퓨터케이스...큰 액자...

버릴게 몇개 없는 줄 알고 그냥 구루마나 한개 빌려달라 해야지..생각 했었는데

'구루마는 없고 리어카나 하나 가져가봐라'...하는 고물상 주인의 말에 약간 주저했지만

이내 나는 불편하고 무거운 구루마를 서툰 실력으로 이리저리 끌어가며 좁은 골목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정말 만약 구루마가 있어서 빌려왔다면 고생깨나 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건

생각외로 리어카가 작았고 내 짐들은 꽤 부피들이 커서 이미 리어카를 꽉 채운 후 였다.


 항상 출퇴근 하거나 편의점 가기 위해 지나는 동네 골목을 

한짐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건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나서 왜 이런 행색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불필요한 해명을 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하는

약간의 걱정이 들게끔 했다..

역시나 서툰 실력인지라 그냥 걸어서 1분거리를 이리저리 장애물을 피해가며 어렵사리 고물상에 거의 다 다다랐을때

내 앞엔 그간 살아온 세월을 고스란히 짊어진 양 구부정한 허리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노파 한분이 있었다.

한손엔 역시 고물상에 갖다 팔 요량인지 박스떼기 몇장이 들려있었고

그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내 앞길을 막고 있었다.

내가 딱히 눈치를 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내 노파는 길 한편으로 비껴나 내 길을 터 주었고

나는 감사하단 인사 대신 재빨리 그 할머니를 지나쳐 주었다.


 3500원...

그날 내가 판 고물의 가격이었다.

리어카 채로 계근대 위에 올려놓으니 고물상 사무실 창문 위에 계기판에 무게가 표시되었고

고물상 사장은 빠른 계산으로 무게에 따라서 (때로는 종류에 따라서) 값을 쳐 주었다.

딱히 돈을 벌려고 판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굴러다니는 애물단지 몇개 빨리 치웠으면 좋겠다 는 생각 뿐이었는데

돈까지 받으니 왠일인가..싶기도 했다.

이윽고 아까 길에서 만난 노파가 박스떼기와 함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고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고물상 정리하는 아저씨가 할머니를 보자 반가웠는지 인사대신 큰소리로 외쳤다.

"할매 이거 팔아봐야 1원도 안돼 1원도...허허허"

할머니는 뭐라뭐라 알아듣지 못할 말로 응수 하고는 고물상 사무실앞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힘이 들었는지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뱉는 입가엔 옅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띄며

고물쟁이 아저씨와 연신 툭탁툭탁 대화를 하셨다.

그때 내가 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례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할머니에게 선뜻 3500원을 내밀었다.

역시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고 

신경쓰지 말고 그냥 가도 된다..라는 고물상 사장의 눈치에 머쓱해져서 그냥 집으로 향했다.

깨끗해진 옷방을 보니 다시 마음이 개운해졌고 

3500원은 어디다 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달전

4월 쯤 이었나?....

봄 이라고 하지만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 그시간의 골목은 약간 쌀쌀했다.

난 집에서 하릴없이 맥주를 마시고...영화나 드라마 를 보다가...화장실도 갔다가...게임도 했다가...

문득 집 현관 안쪽에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가 넘쳐나는걸 보고 충동적으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빈병들, 패트병들, 피자박스 등등을 커다란 마트봉지에 쑤셔넣고 대문을 열어 골목으로 나오니

저어쪽 골목 어귀에 동네 쓰레기 모아놓는 곳에 조그만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이제 겨우 초등학교 3~4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와 그 동생으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있었고 

둘은 조그만 손수레에 몇장 되지도않는 신문, 박스 조각을 실고 있었다.


"너네 뭐하냐?"

"재활용품 모아요.."

보통 이시간이면 집에서 잠을 자던가 닌텐도나 스마트폰 하면서 뭉개고 있을 법 한 아이들이

폐지를 모으고 있다는게 약간 의야했던 나에게 아이는 보면 모르겠냐..라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너네가 이걸 왜 하고있어?"

"할아버지가 시켰어요..할아버지 아프다고.."

그러자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도 거들었다.

"네 이거 안해가면 혼나요.."

두 아이의 표정이나 눈빛은 10살 남짓 한 아이의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만큼

지쳐있었고 어두웠다.

난 별말 없이 내가 들고나온 폐품을 아이들의 손수레에 실어주었다.

그런데 그 손수레는 흔히 장 보러 갈때 쓰는  짐 싣는 바구니가 없었고 너무 불안했다.

아이는 노끈을 꺼내서 이걸로 고정을 해서 간다고 했다.

난 노끈으로 폐품을 수레에 고정하는걸 도와줬고

아이들은 예의 그 힘없는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는

골목 저편으로 걸어갔다.

듬성듬성 가로등 아래를 지날때 마다 보이는 두 아이의 그림자와 실루엣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때까지 나는 그자리에 멍 하니 서있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그때 그 할머니의 옅은 웃음이나 아이들의 힘없는 표정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지만 한번씩 그때 일들을 생각하면 마치 내가 무게를 달려 값이 매겨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날 이후로 그 할머니나 아이들을 다시 보진못했다.

아마 내가 안보는것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모르는새 골목 어귀에서 조용히 폐지를 모으는

그들의 삶의 무게는 오늘도 계근대에 달려지고 있을듯 싶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얼마나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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