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기독교와의 참으로 질긴 인연의 시간들
게시물ID : freeboard_8870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단군의후예
추천 : 1
조회수 : 49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6/03 04:15:37

처음 교회를 갔었던 것이 인천의 구월동이라는 곳에 있는 그래도 제법 큰 교회였죠.

그냥 과자를 준다기에 갔다가 신발을 누가 신고 가버려서

맨발로 집에 갔던 조금은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뭐 우리땐 국민학교라고 했지요.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몇집 건너 단독주택에 개척교회같은게 생겼죠.

친구들이 다 가니, 그냥 심심해서 놀러갔었던 어느 날.

예배가 끝나고 한쪽 구석에 있던 풍금이 문득 쳐보고 싶어서...

당시 할줄 아는거라곤 흑건을 눌러서 아리랑을 치는거밖에 없어서

몇 번 건반을 눌렀는데...

그 곳 목사가 와서 뺨을 때리더군요.

어린 마음에 너무 억울해서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했더니

아버지 그 교회를 동네에서 몰아내셨던 기억도 있네요.

 

고등학교 때.

나만 보면 교회가자고 조르던 친구가 부평의 큰 교회에 가자고 해서

하도 귀찮게 하길래..토요일 교회를 따라갔었지요.

그 날이 선교의 날이라고 하더군요.

길가면서 사람들에게 교회를 나오라고 전도하는 날.

 

친구와 저는 부평시장에서 지나가는 여학생(흑심 있었습니다 )들에게 교회를 나오라고 했죠.

나도 첨 간 주제에...

몇몇 여학생들에게 교회 온다는 약속을 받고 다음날 전 집에서 디비 잤답니다.

 

저희 집은 종가집입니다.

4대의 제사를 지내야하는 집.

저희 집은 남자만 절을 하는 집안이라..여자분들은 거실에 부엌에 계시고

막내인 저는 국과 밥그릇을 교체하는 쟁반을 들고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부엌에서 무릎꿇고 하나님 아버지 죄를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도를 듣고는

그 다음날, 쥐뿔도 모르는 고딩이 저보다 15살이나 많았던 형수에게 이런말을 했었답니다.

형수..옛날 조상들이 제사라는 걸 귀신을 섬기는게 아니었을거에요. 양반집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조상도 기억하고 제사음식을 머슴들과 이웃들에게 나눠주는...어쩌면 동네 잔치같은 개념이지 않았을까요? 너무 그렇게 제사지내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별반 달라질게 없었죠.

 

그 형수는 교회 권사인가를 했었죠. 권사가 뭔지 집사가 뭔지는 모르지만 아마 열성신자였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형수가 형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 바람을 피다 걸렸죠.

형은 자기몸하나 못가누는데..형수는 바람을 피고 있었단....

십계명에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했다는데....네 이웃의 남자를 탐하는건 되었나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니 제가 무슨 안티 기독같네요.

 

12년을 연애를 했습니다. 한창 힘들 때 만났던 사회복지사 하는 그녀.

그녀의 동생은 재작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집에 인사를 갔을 때, 아버님은 안계셔서 어머님과 처남될 사람과 처제될 사람과

식당에서 만났을 때, 익히 짐작은 했지만, 교회 이야기를 꺼내시더군요.

어머님, 전 종가집 사람이고, 다른건 다 뭐라 말하셔도 되지만, 교회만은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이 말을 했었네요.

아마 보통의 기독교 집이면 당장 헤어지라고 하셨겠지만,

제 장모님 되실분은 그냥 웃으시더군요.

 

어머님 소원이 사위 손 잡고 교회 가는게 꿈이라고 하셨는데,

두어번 교회를 같이 다녔을 때 기뻐하시던 어머님의 모습....

근데 구파발 뉴타운이 들어설 때 그 교회에서 제 명함에 대표이사로 되어있음을 보고

시도때도 없이 헌금을 강요하는 전화가 오더군요.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돈을 밝히는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는 바보짓은 하기 싫어서

집안 핑계를 대고 안나가기 시작했지요.

 

내년에 결혼할 그 녀석에게

참 많이 몹쓸짓을 했네요.

교회 이야기만 하면 버럭 소리도 질르고,

헌금내는 것에 대해 바보짓이라고도 하고

결혼하면 아이에게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데리고 간다길래

아이에게 종교 강요하는 행동하지 말라고..

 

아이가 커서 결정할때까지 절이건 천주교건, 이슬람이건 교회건 다 경험하게 해준다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한동안 힘듬속에서도 그녀가 옆에서 저를 믿고 바라보는 모습에서

사기를 당해 길거리에 나앉았을때도

장모님은 저를 보고 독거총각 반찬해다줘라라고 하셨다고도 하고

처남될 이는 매일 교회에서 제가 잘되길 기도한다고도 하고..

나중에 전 처갓집 말뚝보고 절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런가 지난 4월에 일본과 좋은 계약을 맺고

매출액의 15%라는 좋은 배당과 30년이라는 계약기간을 가졌네요.

아마 그녀와 그녀집안의 기도와 배려덕이겠지요.

그 계약을 하고나서 12년만에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해서 미안했다고....

제대로 청혼해달라고 하길래...

아직 구상중입니다.

 

오유에서 커플이야기가 나오니....게다가 기독교 별로 안좋게 보는 글엔 닥반이 올라오는데

뭐 이글에도 닥반이 붙겠지요?

그런건 상관안해요.

 

제 오유닉이 단군의 후예 아닙니까?

인간을 널리 복되게 하라고 하신 단군할아버지의 말씀.

단군할아버지가 환웅의 자손이라

어찌보면 하늘님이지만,

단군할아버지라고 하는건....저는 어쩌면 종교보다 더 큰 의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를 별로 안좋아하는 남자와

매주 토요일 교회가서 성가대 반주하고 일요일에 교회에서 사는 여자와

주말에 한번도 데이트해보지 못한 12년의 시간...

 

그렇게 다름을 인정하고 그렇게 같은 방향을 보게 되네요.

 

또 이글 보고 야훼한테 기도해서 일이 잘된거라고 하지는 마세요.

저희 돌아가신 어머니...

제 대입날 아침에 정안수 떠놓고 기도하셨던 분입니다. 쿨럭

 

어찌 마무리를 하지?

아무튼... 참 교회와 기독교와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참 질긴 인연....

출처 반백년 다와가는 시간동안의 일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