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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게이머들의 잘못이었을까.
게시물ID : gametalk_2134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연.
추천 : 12
조회수 : 588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4/10/06 01:15:41
사실 이번의 저건 게임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지겹게 들어왔을 얘기의 변주에 불과합니다.

불법복제 때문에 패키지가 망했다.
단순 노가다 밖에 모르는 유저들 때문에 리니지 양산형이 쏟아진다.
익숙한 것만 찾는 유저들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까놓고 말해서, 저 말 자체는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90년대에 번성했던 출판만화가 90년대 말 ~ 00년대 초쯤에 컴퓨터의 보급이나 대여점의 증가 등에 의해 판매부수가 급감하면서 퀄리티도 따라서 급감했던 일, 멀쩡한 드라마를 만들려고 애써봐야 막장드라마의 시청률을 넘길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드라마 작가, 별 같지도 않은 조폭영화가 범람했던 현상, 똑같은 아이돌 똑같은 사랑노래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그게 잘나가는 현실.

다 같은 맥락에 있는거죠. 결국 팔려야 계속 할 수 있는겁니다. 근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그렇게 얘기하는건 그냥 시대에 뒤쳐진겁니다. 저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나보니 그게 아니었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크랙판 만드는 사람중에 한국인이 몇이나 되죠? 한국인이 추출해서 퍼뜨리는 토렌트 시드가 있긴 한가요? 아니 애초에, 그 토렌트 자체의 주역이 대체 어느 문화권 사람들일까요? 답은 이미 모두 알고 있겠죠. 서구권 애들입니다. 사실 걔들이 우리보다 더해요. 우리는 그냥 불법다운은 범죄라고 몰아붙이고 돈내기 싫다고 땡깡쓰면서 티격태격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걔들은 공유 자체에 대한 사상까지 정립되있어요. 국내에서 가끔 이슈되는 멍청이들 같은 개똥철학이 아니라,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 공유에 대한 사상이 말이죠. (궁금하면 해적당 또는 Pirate Party 검색해보세요)

즉 한국인들이 이상해서 한국 시장이 무너진게 아니라는 거예요. 디지털 시대의 충격은 충분한 IT망을 지닌 사회라면 어디에나 들이닥쳤습니다. 굉장히 탄탄해 보이는 일본만화도 실상은 원나블 같은 인기작조차 예전의 인기작들의 판매부수와 비교하면 초라할 뿐이며, 다들 찬양하는 북미 게임시장은 수차례의 혼돈 끝에 대대적인 유통구조의 혁신과 DLC을 통해 살아남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있어요. 걔들은 시장의 불안을 얘기하는 수준이지만, 우리는 시장의 멸망을 얘기하죠. 그리고 전 그 이유의 근본적인 차이는 시장 자체의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잠재적 소비자가 수천만~수억에 달하는 시장과 몇백만에 불과한 시장의 차이라는 거예요. 한국인은 복잡하고 머리쓰는 게임을 싫어해서 문명같은 한국 게임이 못나오고, 서구권 애들은 그런걸 좋아해서 문명같은게 아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을까요?
아니예요. 둘다 전체 게이머 지분에서는 소수인데, 그 소수를 믿었다간 회사가 망할 정도로 작은시장과 그 소수만으로도 잘나갈 수 있는 거대시장의 차이죠.

거기에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저 거대시장 쪽에서 이쪽의 작은시장에 접근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적은 반면, 그 반대는 많다는 거죠. 접근하기도 쉽고. 결국 그런 독특한 것을 즐길 게이머들은 이미 북미나 일본시장의 게임들을 알아서 즐기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 유저들이 독창적인 게임을 안사주니 어쩌니 하는 건 착각에 불과해요. 그런것에 관심없는게 아니라, 독창적인 서구권/일본산 게임과 저울질당해서 독창적인 한국 게임들이 진거죠. 사실 가격도 그쪽이 더 싸고, 접근성도 이젠 그쪽이 더 나은데 이제와서 한국 게임에 집착할 이유도 없고요. 뭔가 확 사람들의 마음을 끌 정도로 재밌는 부분이 있는게 아니고서야...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그런 게이머들이 모조리 한국 시장으로 복귀한다 한들 그게 시장을 유지시키긴 어려울거예요. 소위 인디게임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요즘 게임의 개발비는... 말이 필요가 없죠.


결론은 간단해요.
예. 게이머들이 소비하지 않았고, 그래서 시장이 비틀렸다는 말 자체는 사실이예요.
하지만, 그게 한국시장이 이상해서 그렇다는 건 그냥 시대에 뒤떨어진 착각에 불과해요.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현상인데, 한국시장은 그걸 견뎌낼 만큼의 규모가 없었기 때문에 다양성을 잃어야만 했던 것 뿐이죠.
(같은 맥락에서, 한국 게임회사가 부분유료화의 선구자가 된 것은 필연이었어요. 소비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시장자체가 뒤흔들리는 상황에, 심지어 멋도 모르고 계속해서 뛰어들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후발주자들까지...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내는 건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을 뿐이죠.)

그러니 이제와서 게이머들이 어쨌네 개발사가 어쨌네 하는 건 무의미해요. 처음부터 이 시장은 작았고, 이미 양산형 게임만으로도 이 시장은 포화상태라는 현실만이 남아있을 뿐이죠. 근데 그렇다고 독창적이니 어쩌니 게임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꿈꿨을 그런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건 아니예요. 스팀은 한국인들에게도 그 마수를 강하게 뻗치고 있죠. 외국산 모바일게임들은 꾸준히 번역되어서 한국시장으로도 유입되고요. 아니, 사실 걔들은 일정규모 이상이면 발매 할때부터 다개국어를 지원하는게 기본이예요. 근데 그 반대는 안될까요?

까놓고 말해서, 시장구조만 놓고 보면 지금은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좋은 호재예요. 이 지긋지긋한 한국시장을 벗어나서 세계 각국의 앱스토어와 스팀을 두드릴 수 있는 엄청난 시대죠. 근데 대체 왜 아직까지도 사주네 안사주네 그런 얘기나 하고 있나 싶을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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