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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 4] 사보이는 영원하리 (1)
게시물ID : gametalk_3436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차근이
추천 : 3
조회수 : 5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6/28 23:58:46

1416년 신성로마 황제 지기스문트는 아마데오 8세 사보이 백작에게 공작 작위를 수여한다

사보이 공국은 모리엔,발레다오스타,피에몬테를 포함하며 해안으로는 니스, 대륙으로는 보와 발레를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통지자였던 아메데오 8세는 몬페라토 공국을 공격하여 속국화시키고 피에몬테 대공국을 수립하며 이탈리아에서의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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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끝내가고 있었고 헝가리는 오스만과 전쟁하여 왕을 잃었고 동로마 제국은 신흥강자 오스만에 의해 멸망해가고 있다

강한 국가들은 다른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중세에서 루도비코 공작은 어떻게 사보이를 지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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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공작은 스위스의 두개 주를 통치하면서 몬페라토 공국을 속국으로 두고 있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의 소속이면서 바로 옆에 강력한 국가인 프랑스와 부르고뉴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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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보자면 사보이와 인접한 부르고뉴와 프로방스,스위스는 사보이를 적대시 하고 있었다

부르고뉴는 사보이의 비옥한 영지를, 프로방스는 니스를 점령하여 이탈리아 해안선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했을테고

스위스는 사보이가 점령하고 있는 보,발레 두 주를 되찾고 싶어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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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공작은 겁쟁이여서 전투를 두려워 했으며 자신의 상비군을 믿지 않았다

용병에 의존하고자 했던 그는 타고난 협상실력으로 용병들을 값싸게 부려먹으려 했다

또한 그렇게 뛰어난 통치자는 아니었지만 모자람 역시 없었기에 행정/외교/군사적으로 사보이를 발전시키기에 부족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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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스위스의 남은 주 마저 점령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노리는 망국인 프로방스를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현재로써 부르고뉴와 척지는게 좋은 판단은 아닐꺼라 생각한 공작은 이탈리아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밀라노 공국을 노리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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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보이의 상인은 프랑스의 상파뉴, 제노아에서 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공작 역시 이를 지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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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공작의 전임자 였던 아메데오 8세는 대립교황을 지낸적이 있었기에 

공작은 교황과의 관계를 진척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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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작은 나라를 위해 유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국가인 신롬황제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동맹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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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는 전임자의 영향덕에 주변국과의 수월한 관계개선, 그리고 더 많은 외교적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주변국과 친하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받지 않거나 동맹을 맺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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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공작은 추가로 베네치아와 제노아 두 상업공화국가 추가로 동맹을 맺는다

물론 언젠가 밀라노의 영향력이 줄어든 뒤엔 베네치아는 섬에서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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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탈이아 해안선의 영향력을 높히고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공작은 프로방스를 먼저 공략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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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년 2월 13일

이탈리아내의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은 붕괴하고 있었다

중세부터 이탈리아의 영향력을 높히려 했던 제국의 노력은 베네치아와 교황이 이탈리아의 영향력을 얻고서 부터 무의미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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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년 8월 1일

사보이 공작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 왕실결혼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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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사별했던 루도비코 공작은 새로 마리아 카롤리나 본 합스부르크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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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4월

한편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슬슬 마무리 하고 있었다 영국이 메인 주 반환을 거부하면서 다시 전쟁이 재개되었다

여전사 잔 다르크의 활약 아래 이미 영국은 프랑스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있었기에 결과는 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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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영토에 대한 클레임을 조작했던 사보이 공작은 이제 스위스를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해 다시 클레임을 조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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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의 속국인 바벤트가 무역금지를 선포한다

부르고뉴가 사보이를 적대시 하기에 동군연합국인 바벤트는 국가 상인들에게 사보이의 상인들을 모함하거나 괴롭혔다

사보이 입장에서는 부르고뉴를 적대시 하지 않았기에 굳이 비용을 들여 부르고뉴 상인들을 막을 필요가 없었다

대신 공작은 스위스, 프로방스, 밀라노의 상인들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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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6월 19일

한 잔혹한 집행인을 처형한다

이로써 공작의 위신이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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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 1월 4일

공작은 커지는 도시를 개선하기 위해 상인들을 지원한다 이로써 보 주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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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는 베른, 발스태트에 문서 조작을 가하며 스위스가 사보이 영향력 안에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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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년 6월 6일 

스위스 점령 전쟁이 재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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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위해 사보이는 용병을 고용하고 새로 장군을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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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이기고 있었지만 스위스군은 요새 뒤에 숨어 전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이에 사보이의 육군 기술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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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전투 끝에 새로 뽑혔던 루도비코 장군은 강인해져 갔으며 행군, 공성 등으로 아군이 쓸데없이 희생당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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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군이 집결하고 있는 동안 사보이 군은 병력을 나눠 각 주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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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군은 집결시킨 병력으로 사보이 군을 격퇴시키지만 뒤이어 지원온 원군에게 패하여 다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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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작은 용병의 소모가 많아 그들을 재편하고 다시 모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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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했던 추가 비용으로 공작은 전쟁세를 걷고 돈을 빌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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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년 5월 16

사보이 공국은 부르고뉴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프랑스와 왕실결혼을 맺는다

애초에 프랑스의 침략역시 두려운 위협이기에 왕실결혼을 맺어 사보이를 침략하기 어렵게 만들려고도 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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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의 기술이 발전해 나가며 거대한 시장을 구축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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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는 불리한 조건속에도 공성전을 이뤄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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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수가 많아서 이겼지만 더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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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전투에 나갈 젊은이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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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스위스 역시 잃어버린 인력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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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년 11월 8일

그라우붼덴의 요새가 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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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집결하지 못한 스위스 군은 포위당해 전멸하거나 흩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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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적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사보이 군은 남은 주들 마저 점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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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건 베른 주의 요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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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4월 23일

계속된 패배에 지친 평의원 니콜라우스는 결국 베른과 발스태드 주를 넘겨주고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한다



1448년 6월 6일 ~ 1450년 4월 23일

약 2년간의 전쟁으로 사보이 공작 루도비코는 스위스의 두 주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사보이 공국은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사보이는 영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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