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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아크의 문제점. (50랩 후기)
게시물ID : gametalk_3557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oung.K
추천 : 9/13
조회수 : 3728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8/11/26 20:29:35

로스트 아크의 문제점.


1. 시나리오.

로스트 아크는 기본적으로 '대사 없는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포탈이나 둠 시리즈 및 초기 아케이드 게임 등 스토리에 따른 역할놀이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게임들이 주로 이런 방법을 사용했죠.

'대사 없는 주인공' 시점의 장점은 배경이 허용하는 한 플레이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몇몇 전제조건이 있긴 하지만)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을 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그 게임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을 플레이하고, 또 이야기하게 되죠.

하지만 로스트 아크의 실수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대사 없는 주인공' 시점의 특징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기본적으로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멋대로 감탄합니다.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멋대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쫄래쫄래 따라가다 보면 어째선지 영웅이 되어 있네요?

이 게임은 NPC의 대사와 강제 이벤트가 주인공을 정의합니다.
그런데 그 대사가 깊은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우 사무적입니다.
플레이어가 한 일이라고는 열심히 몬스터 때려잡고, 심부름 다닌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사라도 있어서 다른 NPC들, 혹은 세계관과 상호작용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평가받고, 떠받들어집니다.

주인공은 아무 말도 안 하고, NPC는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이 게임은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토리와의 상호작용을 거의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대사가 있던가,
아니면 NPC들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수행한 직접적인 행동(강요된 역할이 아닌)만 가지고 평가했어야 했습니다.
둠가이 보고 NPC들이 잔뜩 겁먹어 쫄듯이 말이죠.



2. 얄팍한 배경 및 캐릭터 설정.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다 보면 온갖 근본없는 내용들을 두서 없이 짜집기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형지물의 배치는 뜬금없고, 왜 거기 있는지 알 수가 없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의아할 따름입니다.
쓸데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언덕과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밧줄, 사다리, 다리와 같은 이동장치.
건물들이 왜 저기에, 저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성은 이중성벽이나 해자는 커녕 투석구조차 없습니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공성병기만은 크고 화려합니다. 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 알 수 없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말이죠.

NPC들의 캐릭터성도 얄팍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거기 있는지'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은 눈 앞에 있는 배경에 맞춰 적당한 대사를 읊으며 주인공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그마저도 심부름이 끝나면 대부분 대화도 안 되는 배경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건 메인 캐릭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행동원리나 미처 드러나지 않은 뒷 사정 같은 건 없고,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대사만을 충실하게 읊을 뿐입니다.
NPC의 행동과 캐릭터성의 근간이 되는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게임 내 다른 NPC와의 대화나 잡다한 읽을거리 등이 있어야 할 텐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다수의 NPC들은 자기 일(퀘스트)이 끝나면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고, 퀘스트 관련 말고는 읽을 거리도 없습니다.

이 게임은 자기 세계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퀘스트 마커를 따라가면 모든게 끝나죠.
그러니 이야기는 표면적인 수준에서 멈추고, 씹고 뜯고 맛보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쓱 핥고 버려질 뿐입니다.

이건 치킨 양념이 발라진 플라스틱 닭다리랑 똑같습니다.



3. 잘못된 퀘스트 동선.

로스트 아크의 퀘스트 동선은 기본적으로 돼지꼬리 방식입니다.
해당 지역을 빙글빙글 돌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음 지역으로 건너가는 방식이죠.
툼레이더 등의 게임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고, 또 유용합니다.

단, 이게 어드벤쳐 게임이었다면 말이죠.
RPG는 돼지꼬리 방식이 아닌 별 형 진행 방식을 따르는 것이 정석입니다.
RPG에서는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지역'과 'NPC'를 중심으로 별 모양의 동선을 그리며 해당 지역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롤을 수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RPG의 무대가 온라인으로 넘어가며 기존의 스토리 중심의 롤은 레벨링 중심의 롤로 바뀌게 되었지만 별 형 진행 동선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죠.

플레이어는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을 오가며 자신의 캐릭터와 세계와의 관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고, 다양한 지역과의 관계를 충분히 구축하면 이번에는 지역과 지역과의 관계를 구축하게 되죠.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플레이어를 그냥 쭈-욱 앞으로 밀어냅니다.
이건 플레이어의 문제 해결과 임무 수행을 중심으로 한 어드벤쳐식 구성인데, 이러면 플레이의 중심이 플레이어 자신에게 집중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플레이어의 능동적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도에 퀘스트 마크를 박고 고삐 채워 끌고 갈 뿐입니다.

"대체 뭘 한 거지?"

플레이 중심이 아닌 플레이 중심의 구조라는 모순.
결과적으로 퀘스트들을 수행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4. 컨텐츠 낭비.

50랩이 될 때까지, 로스트 아크에는 파밍구간이 없습니다.
퀘스트 마크를 쭐래쭐래 따라가다 보면 알아서 랩업되어 있고, 알아서 템 들어와 있고, 플레이어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씹으며 주어지는 컨텐츠를 소모하면 됩니다.
쓸데없는 노가다로 인한 시간낭비, 랩업 스트레스를 줄인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 없이 컨텐츠를 퍼주다 보니 플레이는 지루해지고, 보상은 달지 않습니다.
심지어 위에서 말한 돼지꼬리 진행구조로 인해 한 번 지나간 컨텐츠를 다시 돌아볼 필요조차도 없죠.
주요 컨텐츠를 소모하는 데에는 이틀이면 충분하고, 대사 하나 없이 스토리에서 붕 떠 있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소모한 컨텐츠를 기억하지도 않게 합니다.

로스트 아크는 이래서는 안 됐습니다.
컨텐츠 소모를 늦추고 조금이라도 더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난이도를 아슬아슬한 선까지 높이고, 높은 난이도를 수행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이 파밍할 장소를 마련하고, 높은 난이도도 싫고, 파밍도 싫은 플레이어를 위해 서브 퀘스트를, 높은 난이도도 싫고, 파밍할 시간도, 서브 퀘스트할 시간도 없는 플레이어를 위해 캐쉬템을 준비해야 했었습니다.

특정 지역을 뚫고 다음 지역으로 나아가기 위해 컨트롤 실력을 갖추고, 레벨을 맞추고, 아이템을 맞추고, 그게 다 싫으면 캐쉬템을 두르고 여포짓이라도 할 수 있게 했여야 합니다.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레벨도 알아서 오르고, 템도 알아서 들어오고, 컨텐츠는 쉽게쉽게 소모되고, 버려집니다.
한 번 쓰다 버린 장비는 두 번 다시 볼 필요가 없고, 아이템 옵션도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연출, 퀘스트, 스토리, 아이템 등등 모든 것이 쉽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상황인데, 이래서는 게임 구성요소에 애착을 가지라는 것이 무립니다.



5. 힘빠지는 후반부.

초중반의 거대한 삽질을 지나 후반부로 가게 되면 화려한 연출은 줄고, 스토리가 중심이 되게 됩니다.
근데 우리의 벙어리 주인공에게 아무리 스토리를 떠들어 봤자 감정이입이 될 리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뜬금없을 정도입니다.
빠른 컨텐츠 소모에 익숙해진 플레이어에겐 답답하고, 지루해지는 시점입니다.
닥치고 새로운 연출이나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딱히 그런 것도 없죠.
그리고 갑자기 파밍에 노가다 하는 구간이 생겨나는데 적응이 잘 될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이젠 레벨마저 안 오릅니다.

갑자기 퀘스트에 대한 흥미가 짜게 식습니다.
퀘스트 말고 다른걸 하려고 하니 죄다 노가다입니다.
슬슬 이런저런 아이템으로 인벤토리와 창고가 포화상태가 되니 현질의 압박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현질을 하더라도 딱히 더 흥미로운게 없습니다.

스토리? 망했습니다.
연출? 이제 별 거 안 나오네요.
애착? 돌아갈 거점도 없고, 아끼는 장비도 없고, 좋아하는 NPC도 없습니다.

생활템들 파밍하고, 배타고 템 수집하고, 상하차하며 실링 벌고, 던전에서 템 맞추고, 카드 업그레이드 하고....

게임은 노가다가 됩니다.
그것도 알맹이가 텅텅 빈 노가다죠.
양념 빠진 고무닭다리를 씹으라는 식입니다.

최소한 초과된 경험치를 캐쉬나 다른 양적 컨텐츠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었어야 했습니다.



6. 의미도 쓸데도 없이 숨겨진 모코코 씨앗과 숨겨진 이야기들.

무언가를 숨긴다면 그걸 찾으라고 숨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찾기 위한 힌트가 온전히 게임 내에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그런데 대충 아무렇게나 "이렇게 해두면 못 찾겠지?" 식으로 꼭꼭 숨겨두면 플레이어는 당연히 게임 화면을 내리고 공략 사이트를 뒤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게임 몰입을 심각하게 해치는 방법입니다.
(던전, 몬스터 공략을 포함해) 이미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다 주어진 상태에서 적절한 해석 방법을 모를 때는 공략 사이트를 뒤져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게임을 질적으로 풍족하게 할 수 있죠.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그저 정보만 확보하면 끝인 컨텐츠를 중구난방으로 숨겨두니, 대체 이건 게임을 하라는 건지, 아니면 곱게 차려진 엿을 드시라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숨겨진 이야기의 '내용'에 신경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주인공은 벙어리고, NPC는 대화를 거부하고.

플레이 타임을 늘려보려는 꼼수인 걸까요?
그런데 퀘스트 진행이 돼지꼬리 방식이라서 한 지역에서 수집을 끝내야 하는 수집 컨텐츠와는 또 안 맞아버리네요?

이쯤 되면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지경입니다.



7. 총평.

돈 낭비하는 방법이 참신해서 인상적인 게임이었습니다.
스토리랑 배경설정만 좀 제대로 됐어도 훨씬 나았을 텐데 말이죠.

아무리 좋은 재료를 정성껏 조리하더라도 대충 섞어서 말아버리면 개밥이 된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하다 못해 오그라드는 스토리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혹은 한국어를 모른다면, 한 1주일 정도는 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네요.



- 투자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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