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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혼자였다 (스압)
게시물ID : gomin_17385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mJiY
추천 : 12
조회수 : 1067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8/01/10 15:38:51
나는 항상 혼자였다.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봤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이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6학년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문제라는 걸 알았다면 달랐을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말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 털어놓는 게 나의 유일한 외침이겠지.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반에 친한 친구가 없었고 다른 반에 고작 둘이었다. 친한 친구는 둘이었지만 남자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고 내 입김도 세게 작용해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가 둘이라는 건 꽤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 있던 두 명의 친구마저 중학생이 되던 시점에 모두 멀어지게 됐다.

중학생이 되기 전, 인터넷에 만연하던 인터넷 소설과 인터넷 얼짱을 보고 흔히 말하는 ‘일진’이 되고 싶었다. 철없던 시절에만 꿈꿀 수 있던 어린 상상이었지만, 입학하고 바로 렌즈를 끼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눈에 튀었고 소위 노는 아이들 무리에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행동을 하는 친구들과 끊임없던 기싸움에 나는 점점 도태되어 갔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떨궈졌다.
 
그때는 정말 운이 좋게 학기 초에 얕게나마 사귀었던 반 친구들과 곧잘 어울릴 수 있게 됐다. 다른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데, 그때의 기억으로 모두 쉽게 여겼던 것 같다. 나에게 그 아이들은 친구였지만, 그 아이들에게 나는 부담이었나 보다. 함께 쌓은 추억이 많다고 생각했고, 함께한 시간도 많았지만 2학년이 되자 나는 또 다시 떨궈졌다. 밥도 같이 먹자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굶기 시작했다.

나에겐 전부였던 그 두 무리의 친구들은 단 한 명도 2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아니 정말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이미 다 친한 상태였고,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속으로는 불안해하면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세웠고, 그렇게 나는 반에서 도태됐다. 성격이 유하지 않아서 무시당하지는 않았지만, 3월부터 9월까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친구가 없었거든.

왜 밥을 안 먹냐며 장난식으로 친구 없냐고 묻는 반 남자 아이의 말에 나도 웃으며 그래 나 친구 없다고 대답하는 그 순간이 너무 비참했다. 지난 1년간 나름 친구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버틸 수 없고 인정하기 힘든 현실이 그제야 와닿았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에서 사람을 사귀기 시작했고, 넷상 인연에 매달리게 되었다. 누구랑 연락하는 거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1학년 때 친구들 이름을 댔다. 친구가 있어 나름 안도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에 난 지금 내 처지를 더 숨길 수밖에 없었다.

6개월간 계속 학교에서는 굶고 집에 와서 매일 라면을 먹는 게 지치기 시작했다. 내 자존심으로 버티고 버텼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줄곧 예민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9월 말, 잘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폭발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내가 단순히 심한 사춘기를 겪는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울었다. 나는 내가 독하고 성숙하고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15살의 나는 그냥 어리고, 여렸다. 위로이자 조언이라고 하던 아빠의 말도 듣기 싫었다. 모든 일에 예민해지는 내가 싫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여전히 나의 스승이고, 존경한다. 그리고 이분을 통해 내 진로 희망은 교사가 되었다. 엄마, 나, 선생님 셋이 상담을 하며 모두 울었다. 이렇게 만든 내가 싫었다. 전에 연락한다던 그 친구들은 뭐냐고 묻던 엄마에게 짜증과 침묵으로밖에 답할 수 없는 내가 증오스러웠다.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3학년이 되기 전까지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들이 생각지도 않던 내 생일을 챙겨 줘서 정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었다.

3학년 반배정이 나왔는데, 그 두 친구와도 떨어지고 전혀 교류가 없던 아이들 뿐이었다. 그때는 자존심 부릴 여유가 없었다. 다시 아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밥 먹어 줄 수 없냐고 매달렸다. 그렇게 부탁하고 매달렸지만 결과는 거절이었다. 그들에게도 나는 부담이었나 보다. 이런 내가 정말 비참했고,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안 나는 이 상황이 싫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매달리던 넷상 인연에서도 잔인하게 버림을 받았다. 이 상처는 더 회복하기 어려웠고, 깊게 남았다.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 죽을 용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이 괴로웠다.

중3 초반, 반 아이들에게 아는 척도 해 보고 친한 척도 해 봤다. 그때도 자존심은 버리고 같이 밥 먹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애들이 싫은 티를 내도 버티고 같이 먹었지만, 그렇게 잠시라도 환상이 생겼지만, 다음 날 4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를 두고 도망치듯 밥을 먹으러 갔다. 그게 내 위치의 현실이었지만, 인정하면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아서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그렇게 2주정도 혼자 방황했지만 끝까지 자존심 버리고 노력해서 중학교 3학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중3 9월 말에 이사를 갔다. 같은 구였기도 했지만 힘들게 얻은 친구들을 또 잃기 싫어서 전학을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았다. 이사 간 직후에 고등학교 원서를 접수했고, 나는 우리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선배들이 주로 지원하고 진학한 여고 두 곳을 썼다. 운명의 장난이 정말 있다면 왜 유독 나에게만 일어나는 걸까? 우리 중학교에서 단 한 명도 진학하지 않고 나도 지원하지 않은 같은 구의 다른 학교로 혼자 튕겼다. 덕분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나 혼자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말을 혼자 수십 번을 되새겼다. 예비소집일 날, 내가 진학한 학교는 이 동네에 학교가 우리 학교를 포함해 단 두 곳 뿐이라 나처럼 다른 동네에서 온 게 아니면 다 아는 사이였다. 반배치고사를 보고 쉬는 시간에도 나는 혼자였고, 앞으로의 고등학생 생활도 이럴 것만 같아 두려웠다. 오늘마저 점심을 굶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점심 시간에 모르는 아이 어깨를 붙잡고 부탁했다. 처음은 거절이었고, 그 다음으로 부탁한 아이에게는 허락을 구했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었다.

본 반배정이 나왔다. 밥 먹으며 사귄 친구는 단 한 명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고. 우리 반은 특히 같은 중학교 출신이 몰려있었다. 원래 낯을 심하게 가려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여기서 내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나는 또 혼자가 될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모르는 아이한테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기고, 친구가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측은했던 건지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 아이들이 늘었고, 그렇게 우리 반은 다같이 친해졌다.

그 중에서도 같이 다니는 무리가 생겼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일이 행복했다. 하지만 다른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조바심도 났다. 여름 방학 보충이 끝날 때까지 함께 급식을 먹고 평소와 같이 잘 지냈다. 보충이 끝나고, 일주일 후 2학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내 지옥이 다시 열렸다. 무슨 일인지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나를 쌩까기 시작했다. 고작 일주일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어이가 없었고,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일주일을 참았다. 엄마한테 울면서 전학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이번엔 숨기거나 참지 않고 바로 말했다. 그동안 전전긍긍하며 매달린 인간관계에 드디어 지친 거일 수도 있다. 집에서 아빠와 엄마에게 얘기하면서 너무 답답해서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다. 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금 반복된 비슷한 상황에 엄마와 아빠는 내 성격을 문제로 삼고,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주소를 옮기게 엄마에게 한 달이라도 아빠와 이혼을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정도로 힘들었고, 간절했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꺼내는 것부터가 죄니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친구들에게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 나는 또 부담이구나. 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인가 보다. 매일을 울면서 보냈다. 나를 쌩까던 친구들의 다른 반 친구들까지 나를 안 좋게 봤다. 그때부터 다시 혼자였다. 점심을 먹을 친구가 없어 매일 엎드려 자는 척했다. 내가 자는 줄 알고 조별 수업 조를 짜던 반의 다른 여자 아이들이 내 얘기를 했다. 쟤는 지금 어딜 가도 안 된다는 말이 비수가 되어 파고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살고 싶다. 이동 수업도 혼자 가고, 강당에 가도 혼자 앉고, 밥도 안 먹고, 매일 아픈 척만 하는 게 비참했다.

갑자기 독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기죽어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영문을 몰랐기에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아, 나는 아직 어리구나. 독해지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안 됐다. 선생님들이 예전에 왕따였던 아이들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지금 내 처지와 비슷해서 그때마다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누가 들어도 나는 그 처지와 비슷했고, 부정할 수 없이 나는 왕따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살고 의지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루 종일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집에 와서 할아버지와 얘기 나누던 시간이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는데, 할아버지가 떠났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전화를 받고 바로 내려 길거리에서 미친 것처럼 소리도 지르고 악을 쓰고 울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제 나는 어디에 기대야 할까.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

지금은 겨울 방학 보충 기간이다. 여전히 나는 혼자다. 현실이 괴롭고, 믿고 싶지 않다. 몇 달을, 그리고 더 긴 시간을 혼자 보냈으면 적응할 법도 한데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혼자일 때 조금이나마 무뎌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매일 자다가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고, 아침마다 학교 갈 생각을 하는 게 지옥 같지만 이제는 남 시선을 의식하고 고통 받는 면에서는 무뎌지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혼자인 게 싫다.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글쓰는 것도 좋아한다. 남들에게 관심 받기도 좋아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고 싶다. 새로운 2학년을 다짐한다. 다 건너건너 아는 아이들이라 내 2학년도 녹록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항상 새로운 각오를 한다. 이제 조금 달라지면 좋겠다, 제발. 내 18살은 빛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다시 마주한 현실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더 강해지고 독해지고 싶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신이 있다면 제발 잠시라도 빛을 주세요. 신을 믿지 않아 벌받는 거라면 앞으로는 열심히 믿고 기도할게요. 신을 믿지 않아서 내 외침이 들리지 않는 거라면 열심히 믿을 테니까 제발...

나는 위로가 받고 싶다. 친구가 없어 듣지 못했던 고생했다는 그 말이 간절하게 듣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여러 사이트에 올린다.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한테 위로를 받고 싶다. 누구라도 고생했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 이 상황이 주작이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길고 아픈 꿈이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이 힘든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다, 이젠.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깨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나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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